재회 이야기 4.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2부. 사랑과 용기

by 글희

그에게 ‘오래’는 1시간이었다.


2년 만의 조우 다음 날은 친구와 영월에 가기로 했었다. 그와 밤을 함께 보낸 탓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기차에 올랐다. 그 쯤 연락이 왔다.


- 잘 가고 있어?

- 나는 점심 햄버거 먹는중

반가운데 당황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문장이 주는 무게감이 있었다. 만남을 곱씹고, 마음을 확인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을 '오래'에 담은 줄 알았다. 그에 비해 '햄버거'는 너무 가볍지 않나? 느닷없다. 이후에도 대화는 다시 무거워지지 않았다. 카톡으로 나누는 대화는, 어색하면서도 익숙하고,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즐거워서, 영월 여행의 일상과 소감을 예전처럼 공유했다.

그러나 정립되지 않은 관계에서 이어지는 연락은 의중을 알 수 없어 혼란했다. 조금만 연락이 없으면 불안했다.


'이 무의미한 연락을 여기서 끝내려고 하나'

'정리하려는 내용을 장문으로 쓰는 중인가'


여행 동안에도 함께 간 친구의 말은 머릿속에서 겨우 처리되었다. 열심히 웃고 돌아다녔지만, 껍데기와 알맹이가 분리된 것처럼 내 행동거지가 적절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 너 고민해! 내 일상은 안 흔들려. 마음껏 방황해!' 하던 전 날의 자신만만함은 어디로 갔지. 내가 선택한 용기는 또다시 보잘것 없어졌다.

영월에 간 건 별을 보기 위해서였다.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작은 봉고차에 탔다. 영월 시골 산속으로 올라가는 차. 숙소에서 챙겨 나온 담요를 덮고도 너무 추웠다. 전날 옷을 갈아입지 못한 탓이다. 잘 보이고 싶어서 입은 짧은 치마와 얇은 스타킹은 산속 겨울을 버티기 어려웠다.


몸이 바짝 얼어버린 탓에 설명도, 별 보러 가는 길도 들어오지 않았다. 봉고차에 웅크린 채 핸드폰을 쥐어잡았다. 핸드폰을 보지 말라고 했지만 혹시 연락이 오진 않을까 손으로라도 알고 싶었다.

황홀하리라 기대했던 별자리투어. 별은 촘촘히 박혀 쏟아지듯 했다. 그러나 황홀했던 것은 찬란한 별빛이 아닌 무(無)로 상징되는 어둠. 아무 빛도, 소리도 없는 칠흑이었다.


똑같이 소리 없는 공간을 우린 '고요하다' 하기도 하고, '적막하다' 하기도 한다. 고요함은 평온한 소리 없음이라면 적막함은 외로운 소리 없음이다. 적막했다.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여 고요하다도 말하지 못했다.


칠흑을 품고 숙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친구와 소란스레 불안하다 떠벌렸지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깊은 어둠은 마음속에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하늘이 빛을 모두 먹은 것처럼. 나도 불안과 휘둘림을 모두 먹어버리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휘둘림을 편지로 썼다. 숙소에 반년 후 발송하는 느린 우체통이 있었다. 현재 나를 담아 반년 후 나에게 보냈다.


그러곤 카톡 대화창을 나가버렸다. 만나자는 약속 없이 이어지는 카톡은 무의미했다. 내가 말한 '오빠가 연락해'는 이런 연락이 아니었다.

다음날, 전날 연락에 답을 하지 않고, 먼저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도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없던 여행 이튿날에도 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혹여나 연락이 오지 않을까.


연락의 부재는 오히려 무게로 다가왔다. 그래. 사실 이게 맞겠지. 연락이 없는 시간은 그가 고민에 담는 무게야. 그래도, 다음 진심을 기다렸다. 그의 침묵이 무게라면 나의 기다림도 무게다. 그렇게 시간을 버텼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연락이 없다. 이렇게 끝인가. 이럴 거면 대체 어젠 햄버거를 들먹이며 연락은 왜 한 거야! 불안이 짜증으로, 짜증이 거의 포기로 넘어가던 잠들기 직전. 연락이 왔다. 오후 11시 38분. 집에 잘 들어갔냐고. 다음 주 시간 있냐고.



- 다음 주에 우리 한번 더 볼까?



그에겐 단순한 한마디 질문이었을지 모르지만, 이 한마디는 이후 내가 어떤 스토리를 써나가게 될지 단번에 알려줬다.

익숙한 영화의 프롤로그.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보이는 이야기.

예상되는 이야기가 좋아서.

마음에 쏙 들어서.

하루 온종일 겪었던 기다림과 초조함은 어디 가고.

구조되었다.

안전한 배 위에 올라탄 듯 안심했다. 이번엔 약속을 정하는 카톡이 이틀은 이어졌다. 어디서 만날지, 어디 카페는 좋을지. 나를 지키고자 습관적으로 불안함을 한편에 남겨두었지만, 이 어정쩡한 만남의 결론이 무엇일지 이미 알고 있었다.

휘둘려도 괜찮아


감정을 항상 다잡고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서야 할까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고

사는 모습이 다 그렇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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