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좋아하는 노래 듣고 글쓰기

by 글희

겨울빛이 드리워있다. 공기에 얼음 알갱이가 보이는 듯한 어느 날이었다. 나는 몸을 옹송그리며 이어폰을 끼고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흐트러진 마음을 쏟아내도 괜찮아」

한참 아이들에게 감정 수업을 하던 때였다. 동그라미 활동지 안에 내 마음의 색을 자유롭게 칠하라고 했다. 추상적인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난 미리 내 마음을 동그라미에 칠해 갔었다.

그 시기 즈음 나는, 분홍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안개같이 채웠다. 그러곤 짙은 남색 색연필로 그 위를 흐릿하게 덮었다. 형형색색 색연필로 자기 마음을 선으로 구분 지으며 진하게 칠해나가는 아이들과 달리, 내 마음은 온통 모호했다. 옅은 얼음막이 낀 듯 또렷한 풍경 속에서, 난 혼자 이방인이 된 듯 풍경을 스쳐 지나 보내고 있었다. 분명 모든게 평화로웠지만 난 고요함을 누리지 못하고 한발치 뒤에서 지켜보던 중이었다.

「가끔은 넘어질거야. 오늘은 괜찮을거야」

가끔은 넘어지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닐 거라는 안심일까? 나에겐 가끔은 넘어질거고, 그게 오늘이어도 괜찮다고 들렸다.

23년도 겨울은 이별을 겨우내 딛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긴 연애를 끝내고 난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무너지기 싫어 애를 많이 썼다. 빈 시간을 운동으로 채우다가 강박이 생겼다. 준비 안 된 마음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가 또 다른 이별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버려진 마음을 채우려다가 폭식이 생겼다. 그럼에도 무너지긴 싫었다. 건강한 생활에 나를 의탁하며 나를 바로세웠다.

매일매일이 안정적이었으나 나는 버티는 중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면 마음에 크게 나버린 빈 자리를 내가 눈치챌 것 같았다.

「흐린 마음이 남지 않게, 내가 너의 바다가 되어줄게」

흘리지 않고 참아낸 눈물은 하루하루 쌓여 바다가 되었다. 바다는 소란한 마음을 감춰줬다. 바다를 품고서 하루하루 사는게 어른인 줄 알았다.

눈물이 났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아침이지만 내 마음은 밤이구나. 청승 떨기에도 이른 아침 출근길, 가사 하나하나가 귀를 넘어 목울대에 박혔다.

나는 또 다른 바다가 필요했다. 내 눈물 쯤은 모두 품어줄 그런 거대한 바다. 언제든 울어도 되는 사람. 내가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 속에서 무너져도 되는 사람. 그러나 내겐 그런 이가 없었고, 나는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

「지친 맘이 닿는 곳에, 내가 너의 그 밤이 되어줄게. 고마웠어, 내 어린 밤들아」

애썼다. 가사는 나에게 충분히 애썼다고. 꼭 그렇게 말해주는 듯했다. 그 날은 출근해서 아이들에게 노래를 들려줬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칠해보자고.

벌써 2년 전이다. 이제는 최유리의 <밤, 바다>를 자주 듣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을 땐, 난 어김없이 이 노랠 들려준다. 주륵 주륵 흘린 마음에 모든 이유가 다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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