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스피드를 60에 맞춰. 그 말은 이 안에 60분의 1초가 담겨 있다는 뜻이야. 이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근데 사실은 60분의 1초만큼 움직이고 있어. 이렇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거야. “
어느 드라마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시간을 채집하는 일이라고 그랬다.
정말 그랬다. 나는 기억력이 안 좋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그때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 이야기 속에 내가 등장하는 것이 낯설다. 나와는 무관한 줄 알았던 이야기 속에 내가 있을 때는 아주 기묘한 느낌이 든다. 인간 기억이 참 형편없구나 싶으면서도, 나였지만 더 이상 내가 아닌 나가 되어가는 것이 무섭게도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기록하는 일에 건성인적이 없다. 평범한 일상을 활자로도 남기고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남긴다. 아날로그 일기부터 매주 올리는 블로그까지 여러 군데에 내 불안이 담겨있다. 소중했던 생각과 감정, 기억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 말이다.
요즘의 스마트폰 카메라에도 셔터 스피드라는 게 있는진 모르겠다. 가끔 야간모드로 찍을 때 등장하는 노출값이 셔터 스피드와 관련 있는 것일까? 셔터 스피드는 차치하더라도, 아이폰엔 라이브 포토 기능이 있어 60분의 1초보다는 긴 시간을 채집할 수 있다. 난 그 기능을 참 좋아한다. 사진을 꾹 누르고 있으면 멈춰있던 순간의 직전 시간이 재생되는데, 그 속에는 카메라를 들게 된 찰나가 다 담겨 있다.
카메라를 들게 되는 순간이 언제냐면, ‘나중에 이 순간을 그리워하겠다.’ 할 때다. 나는 가족들 속에서 마음껏 퇴행되는 나를 좋아한다. 엄마랑 동생이랑 하잘것없는 얘기로 깍깍깍 웃을 때, 뜬금없이 의미 없는 춤사위를 흐느적거릴 때, 강아지 앞에서 다 큰 인간이 재롱을 부릴 때, 태극권 연습하는 엄마 뒤에서 동생이 엄마를 놀리듯 따라 할 때, 아빠가 못생기게 하품을 하고 엄마가 하품하는 아빠 좀 찍으라고 깔깔거리며 보챌 때, 나는 내가 이 가족 내에서 몸만 큰 어린아이로 존재하는 것이 포근하다. 이 순간을 놓지 않고 영원히 가져가고 싶어서 얼른 카메라를 들이민다.
노을이 예쁠 때, 꽃향기가 마음을 몰랑일 때, 노란 실 달이 꼭 만화 같을 때, 추운 겨울 마시는 카푸치노가 포근할 때도 카메라를 든다. 내가 채집하고 싶은 건 어떤 풍경이나 장면, 사물이 아니라 그것들을 보고 따뜻했을 내 마음이다. 삭막하지 않은 때들을 모아두고 삶은 이토록 괜찮다고 꼭 기억해두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남기고 싶은 사진은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이다. 가장 꾸밈없고 가장 왜곡 없는. 시간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사진. 라이브 포토가 좋은 이유는 카메라를 드는 찰나의 의도와 욕망까지 다 담겨있어서인데, 자연스러운 사진을 좋아한다면서도 잘 찍고 싶어서 커피와 그릇 구도를 매만지고, 역동적인 강아지 사진을 찍으려고 장난감을 그 앞에서 더욱 힘차게 휘두르는 것까지 담긴다. 시간을 편집하고 싶은 욕망까지 채집되는 것이 맘에 든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꽁쳐두고 싶은 마음을 언제 놓을 수 있을까. 한 해가 다 지나고 뚱뚱해져 있는 다이어리를 보면 흡족하고, 블로그 2025 폴더에 벌써 56개 글이 쌓인 것이 뿌듯하다. 올해 마지막 날에는 대용량의 사진과 함께 한해 회고록을 남길 것이고, 가끔씩 지난 글들을 다시 읽고 곱씹기도 할 거다. 인생의 본질은 사진 속이 아니라 사진 밖에 있는데, 나는 어쩐지 본질에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하지만 그게 의미가 없었다면 사진학과나 사진전이나 사진작가 같은 건 없었겠지. 어른들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씀도 안 하셨겠지! 그럼 카메라가 없던 시절은 그럼 무엇이 남았을까? 그러니까 다들 그림이라도 그려서 남긴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드는 나를 변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