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내 안에서 산들거린다

올해의 4월은 조금 늦었다

by 글희

홍콩의 1월은 우리나라 봄과 기온이 비슷하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온 홍콩의 7시는 선선했다. 하지만 그 선선함은 냉기를 향해 하강하는 온도가 아닌, 봄을 향해 상승하는 기온의 어딘가였다. 한국에서는 겹겹이 껴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수면양말을 신고도 벌벌 떨었는데, 홍콩에선 도톰한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 거리를 거닐 수 있었다. 여행을 오긴 왔구나, 싶은 신선함은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과 낯선 글자에서만 오지 않고 피부에 닿아 느껴졌다. 몇 시간 사이에 계절이 바뀐 듯한 공기는 촉각으로 생생히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올해 유독 길었다. 일찍이부터 서늘함을 느끼고, 꽁꽁 얼어붙어있었다. 난 익숙해진 줄도 모르고 추위에 익숙해져 있었다. 샤틴강 위 다리를 건너는데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산들거리며 찾아온 봄은 굳세게 얼어있는 마음을 건드렸다. 우리나라도 몇달 뒤면 봄이겠지. 밀려드는 봄이 무서웠다. 산들거리며 흔들리는 마음이 어색했다. 지난 봄들은 모두 작별의 계절이어서 나는 산들거리다 못해 지나치게 휘둘렸고, 나머지 계절엔 바로서기 위해 단단해져야만 했다. 단단해진 나에 익숙해진 줄도 모르고 이젠 안정적인줄만 알았는데, 살랑이는 바람 한번에 또 흔들릴까. 그게 무서웠던 것 같다.

작년 4월엔 우리집 뚱땡이 강아지 졸리와 작별했다. 작별 딱 일주일 전, 부쩍 따뜻해진 공기에 꽃 향기를 잔뜩 맡으라며 산책을 나왔었다. 활짝 핀 개나리 앞에서 봄나들이 사진을 잔뜩 찍었었다. 동생과 도란도란 산책하며, 졸리 내년 봄꽃 사진은 찍을 수 있을까- 올 가을 단풍사진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같은 대화를 나눴었다. 단풍 사진까지도 찍지 못할 줄은 몰랐다. 온기가 빠지고 축 늘어진 오랜 가족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멍하니 쳐다보다 방 한켠에 뉘여 이불을 덮어뒀다. 가족들이 모두 돌아오고 나서야 작은 몸을 이불에 고이 싸서 화장터로 갔다. 영혼이 빠져나갔는데 왜 무게는 더 무거울까. 영혼이 붙들고 있던 몸무게가 더해진건지. 졸리는 더 무거웠다. 한줌재로 돌아온 친구를 보며 황망히 울다보니 4월이 다 지나갔다.

재작년 4월엔 오랜 연인과 이별했다.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같이 찾아온 이별이었다. 친구들에게 이별 소식을 알렸을 땐 모두 만우절 장난인줄 알고 안 속는다 그랬다. 나도 만우절 장난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무살에 사귄, 20대의 전부였던 연인은 봄바람에 흩날려 날아가버렸다. 실패를 모르고 꺾인 적 없던 나에게 이별은 첫 실패이고, 첫 좌절이었다. 글쎄. 그만치 힘들었던 일이 그간 있었는가 모르겠다. 그 무엇도 내 입맛을 앗아간 적이 없었는데 처음 며칠간은 달달한 모카케이크도 입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 스스로가 우습고 신기했다. 일어나 울고 출근하다 울고. 익숙해졌다 싶으면 그게 잊는 걸까봐 기억을 꺼내어 울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지면 안 될 것 같았다. 기억에서 슬픔이 지워지고, 마침내 내가 괜찮아져버리면 우리는 정말로 끝일 것 같았다. 매듭짓기가 싫어서 계속 꺼내어 울어냈다. 울고 울고 울어 4월을 다보냈다.

따뜻함은 지나가고. 뜨거워지고 선선해지다 서늘해지고 추워지는 계절동안. 나는 무덤덤해졌다. 작별의 대상들과 함께한 사진, 생생하게 움직이는 영상을 꺼내어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애틋하지만 이미 과거가 된 학창시절마냥, 작별의 대상들 또한 과거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날 더이상 흔들지 못했다. 가끔씩 떠오르곤 했지만, 떠오르면 떠오르는대로 곱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내가 단단해진 줄 알았다. 따뜻한 홍콩 바람에서 내 마음은 굳세게 얼어붙어 있었을 뿐 완벽히 단단해지지 못했음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오는 봄이 무서워졌다. 또 살랑살랑 흔들릴까봐. 그러다 무너질까봐. 또 이전의 봄을 반복하게 될까봐.

나는 봄이 다시 오기전 크게 휘둘렸다. 날 휘두른건 봄바람이 아니라 메일이었다. 과거에 적히고 마침표를 찍은줄 알았던 사람. 2년 전 봄이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우리 끝에 적힌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던걸까. 아직 겨울이었다. 봄이 곧 밀려올터였다.

메일이 온지도 벌써 세달 가까이 되어간다. 4월이다. 저녁을 먹고 산책겸 나온 4월의 7시는 따뜻했다. 해질녘 빨간 하늘. 빨갛게 물들어진 지평선 위론 아직 푸른빛이 돈다. 어둑히 짙어지는 파란 하늘. 소멸되기 전, 어슴푸레하다. 아직 저물지 않은 햇빛이 주변을 어스레하게 밝힌다. 밤이 오지 않았는데 먼저 켜진 가로등이 주변을 비춘다. 분홍빛 벚꽃잎은 가로등 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희어지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에 꽃잎은 더 명백해진다. 공기엔 냉기가 가셨다. 미지근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가지 끝을 흔든다. 작은 흔들림에도 하얀 꽃잎들이 흩날린다. 바닥엔 꽃잎이 소담스럽게 쌓였다. 마음이 참 몽글해진다.

봄이 밀려들기 전 끝난줄 알았던 마지막 문장이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영영 빌 줄 알았던 새로운 4월의 이야기는 2년이 지나 쓰이게 되었다. 봄이 두려운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도 더, 다시 마주하러 가는 길이 두려웠다. 얼굴을 다시 봤을 때 난 어떤 마음일지. 나인데도 감히 상상되지 않았다. 다시 마주해 앉은 자리에서 난 울지 않았다. 재작년 4월 흘릴 수 있을만큼 다 흘려서일까. 그냥 여전히 반갑고 좋았다. 올해 벚꽃은 유달리 늦었다. 겨울이 참 길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가 커졌던 것 같다. 다시 만나며 알게 된 메일 속 마음이었다.

이번 식목일엔 우리집 뚱땡이 졸리를 묻어줬다. 작은 유골 단지를 어딘가에 묻지 못하고 계속 집에 뒀었다. 특히 어머니께서 졸리를 떠나보내기를 실패하셨다. 단지를 들고 졸리를 묻을만한 곳에 찾아갔음에도 그대로 들고 돌아오시곤 하셨다. 이제 졸리도 갈 때가 되었지. 할아버지 산소 옆에 묻고 작게 무덤도 만들어줬다. 그날 밤 아버지 꿈엔 할아버지가 나왔다. 무슨 일인지 무척 즐거워보이셨다고 했다. 그거면 되었지. 할아버지께서 예뻐해주실거다.

난 그간 한 조각 빠진 퍼즐같은 마음으로 계절을 보냈다. 어떤 조각을 가져와도 꼭 맞지 않고 채워지지 않았다. 빈 자리에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그제껏 맞춰놓은 퍼즐을 와르르 무너뜨릴까, 이미 맞춘 퍼즐 조각을 꽉 잡고 잔뜩 굳어있었다. 4월은 뭐랄까. 그 빈칸이 꼭 채워졌다.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되찾은 듯하다. 벚꽃이 피기 전 큰 목련 봉오리에서부터 봄을 지켜보았고, 두꺼운 코트와 패딩 대신 가벼워진 자켓과 가디건으로 봄을 입었다. 이 모든 과정은 자연스러웠고 전혀 두렵지 않았다. 설레고 기다려졌다. 때때로는 새순이 돋으며 맺힌 꽃봉오리 수만큼 마음이 몽글졌다. 4월이 산들거린다. 봄이 내 안에서 산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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