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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Nov 24. 2020

삐삐, 쓰러지다

수술을 한 뒤 삐삐는 다리 근육이 빨리 늘어나도록 산책을 열심히 했다.

처음부터 제 코스를 다 돈 것은 아니고 조금씩 거리를 늘리는 식이었다.

수술을 한지 한 달이 지났고 정상적으로 걸어서 재활 운동 삼아 산책만 거르지 않으면 아무 일 없을 것으로 안심했다.


이 날 삐삐는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이틀간 자기 코스를 무난히 돌고 거북 바위에 코스모스가 핀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나는 시어머니 집에 가기로 해서 반찬거리를 사러 가게에 들렀다 가려고 아파트 입구에서 삐삐를 남편에게 넘겨주었다.


볼 일을 마치고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려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들어오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며 차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차를 기다리는데 남편은 운전석에서 삐삐를 안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삐삐를 넘겨주면서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니 무슨 일인가? 하는데 얼른 삐삐를 주물러 주라고 했다.

삐삐는 차를 타면 짖고 소리를 지르는데 어쩐지 조용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별 이상을 못 느껴서 의아했는데 남편은 화 난 듯 소리를 지르며

그냥 쓰다듬으라는 말이 아니라 세게 주물러 주라고 소리를 쳤다.


남편 말에 의하면 계단 입구에서부터 집까지 안고 들어왔고

현관에 내려놓자마자 삐삐가 한쪽 다리를 미끄러지듯 사지를 뻗으며 퍼져 버렸다는 것이다.

삐삐는 미처 목줄도 풀지 못한 채 반쯤 묶여있는 상태였다.


불과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렇게 멀쩡한데.. 내 눈으로 보지 못해서  믿을 수 없었고  

남편이 덜 덜 떨며 흥분해서 급하게 삐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게 좀 이상했다.

그러나 남편은 지금도 그 순간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삐삐 스스로도 놀란 듯이 ‘내가 왜 이래’ 하는 표정으로 넋이 나갔는데

아마도 자신이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해 당황한 눈치였다고나 할까.


삐삐의 흔들리는 눈빛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은 삐삐의 배려였을까?

남편은 그날의 이야기를 하며 몹시 충격이었다고 전하는데

그 순간을 안 본 것이 어쩌면 나에겐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기를 때처럼 삐삐 문제로 가끔 다투었다.

산책 중에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들이대는 삐삐를 못 마땅하게 여겨서

목줄을 짧게 잡거나 잡아당기라고 잔소리를 듣거나

병원에 가면 의사 말을 무조건 잘 듣는 나의 태도를 지적받곤 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그들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니 무조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남편은 수술한 의사 내외를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의사도 많지만 상업적으로 보호자를 대하는 의사나 병원이 많기에

남편은 의사 앞에서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설명을 들은 후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하려고 노력했고

나에게도 신중한 태도로 의사의 설명을 듣길 원했다.


삐삐가 내 눈앞에서 쓰러졌다면 내가 얼마나 당황하고 흥분했을지 알 수 없는데

어쩌면 남편이 그 자리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분명 나에게 호들갑을 떤다고 야단을 하고

대수롭게 넘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직접 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급하게 다리 수술한 병원으로 갔고 마침 오후 2시라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의사를 만났다.

응급조치를 한 후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의사 말이, 수술 전에 찍은 심장 사진과 비교해서 심장이 많이 커진 상태로

이제는 제대로 심장 약을 먹기 시작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동안 일 년 반 동안 먹은 약은 초기라 심장 약을 쓴 건 아니었다.

혈압조절과 간, 신장에 필요한 약을 먹이면서 3개월마다 사진을 찍으며 체크를  받아 왔는데  

한번 심장 약을 먹기 시작하면 끊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고  

되도록 그 시기를 맞추되  늦춰지기를  바라던 것이었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삐삐가 건강하다고 믿었고  

심장병이 있어 약을 먹으며 걷지도 못하는 채 연명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진행되는 속도를 늦추며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그러나 때가 온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오늘 쓰러진 것은 산책 후 무리로 심장 쇼크가 왔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기절을 한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쓰러질 때의 삐삐 눈빛이 충격적이라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이상이 생긴 건 아닐지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

그만큼 심상치 않게 느낀 것인데 밤에라도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입원을 시키지 않고 집에 데리고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의사는 검사와 몇 가지 처치 후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데리고 가라고 했다.


더불어 심장 약을 주겠다고 했는데 남편은 발로 나를 툭 치며 우선 일주일 치만 달라고 했다.

그때 이미 우리는 그 병원에 마음이 떠났고 예전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바로 이틀 뒤 초음파 예약을 잡은 상태였다.

그러나 어찌 될지 모르니 의사의 말을 거절할 수 없어 일단 심장 약을 최소로 달라고 한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이제 괜찮아졌다는 말에 별 일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고

병원에 떼어 놓기 싫었는데 데리고 갈 수 있어 기뻤다.

차 안에서 삐삐는 나에게 안겨 있었는데 조금 토했다.

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주었는데 조금 마시는 듯해서  

이번엔 좋아하는 사과를 주었더니 입도 대지 않고 누워 버렸다.

자기 방석에 누워 있는데 추운 거 같이 보여 담요를 덮어주고 계속 지켜보는데

다리를 덜 덜 떨며 평소와 다르게 기운 없이 쳐졌다.


조금 전까지 힘차게 산책을 하며 잘 걷고 집에 들어와 쓰러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아침도 평소처럼 잘 먹었는데  불과 반나절 만에 이러니 실감도 안 났다.

이미 병원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와서 저녁이 되었지만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급하게 저녁밥을  한술 뜨고 큰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은 어차피 밤에도 문을 열고 삐삐의 병원 기록이 있기에 새삼스레 검사나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병원으로 출발하면서 혹시나 주치의 선생님과 통화가 될까 해서 급한 마음에 문자를 남겼는데 소식이 없었다.

항상 병원으로 통화하고 개인적인 통화나 퇴근 후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고,

또 그것을 지켜왔지만 마음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아서 실례인 줄 알고도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 들어서니 나이 지긋하신 당직 의사 선생님께서 찬찬히 우리말을  들어주었다.

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했느냐? 고 물어보셨는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삐삐의 진료 기록이 많이 있어 여러모로 편했다.

수액을 맞아야 하는데 심장병이 있는 아이들은 심장에 무리가 와서 조금씩 천천히 맞아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여러 가지 조치를 해야 하니 오늘 밤엔 입원을 시키라고 했다.

난 삐삐를 떼어 두고  혼자  집에 오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만은 어쩔 수 없었고

그래도 집보다 낫다는 생각에 병원을 믿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마침 주치의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급한 일로 밖에 나와 있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에

일단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왔고 내일 아침에 잘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날은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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