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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Nov 25. 2020

병원에서의 일주일

아침에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는 출근하자마자 삐삐를 체크한 상태였고

나에게 대뜸 삐삐가 왜 이 모양이 되었냐고 물어보며

체중이 너무 많이 빠지고 상태가 아주 나쁘다고 이야기하는데 기가 막혔다.


살이 빠진 건 체중을 줄이라는 수술을 한 외과 의사의 강력한 경고 때문에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삐삐는 비만 견이 아니었고 늘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해 칭찬을 들었었다.

삐삐는 비숑이 조금 섞인 몰티즈라 순종 몰티즈와 달리 덩치가 있어

보통 6.3-6.5킬로 정도였는데 그 의사는 6킬로 이하로 빼야 한다고 했다.

그때 거의 6 킬로 정도로 내려온 상태라 내심 다이어트를 잘하고 있다고 오히려 좋아하고 대견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잘못이라니?

의사는 그동안 왜 자기네 병원 약을 먹이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것도 수술한 병원에서 알아서 관리해주겠다 자신 있게 말한데다

간수치가 안 좋으니, 좋은 간 약을 쓰라고 해서 그 말만 믿고 비싼 약을 두 달이나 먹이고 

소염진통제를 힘들게 3주나 꼬박 먹였다.

거기에 침을 맞고 보약이라는 한약에, 관절 영양제, 칼슘 등을 그야말로 약을 한 보따리 먹이며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이 전 약을 안 먹인 것이 문제였다니 어이가 없었다.


수술한 병원에서는 분명 예전 병원 약은 먹이든 말든 급할 것 없고

물만 빼내는 콩팥 약이라며 싸구려 취급을 한 데다

수술 후 먹어야 하는 진통 소염제는 심장병이 있는 개에겐 상충되어 최소한으로 써야 한다고 했는데..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 신장이 다 망가진 상태로 스스로 오줌을 못 보는 것 같다며 오줌을 얼마나 누는지 체크하고 있고,

이번 주를 넘기기 힘들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수술한 병원에서는 다 괜찮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이런 말을 듣게 되는지?

삐삐는 사료와 통조림에는 전혀 입도 대지 않고 수액으로 영양분을 보충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수술한 병원에 가서 따지며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당장 삐삐가 급하니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고

쓰러진 날 그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와 지금 상태가 다르니 일단 그곳의 결과 내용을 팩스로 받기로 했다.

주치의는 다른 병원과의 마찰을 우려했지만 다행히 별소리 없이 결과를 보내왔다.


다음날 병원에 가니 삐삐는 기운이 없이 병실에 누워 있다가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잠근 문을 열고 삐삐를 꺼내어 안아주었다.

삐삐는 수액을 맞으며 소변 줄을 채운 채 소변 양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오후부터 스스로 오줌을 누는 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입원실 안에는 삐삐가 좋아하는 간식과 음식을 넣어 두었지만 전혀 입도 대지 않았고 

이불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남편이 발견하고 갈아주었는데 비록 병원에 있느라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옷 한 벌씩을 가져가서 깔아 주었다.

병원에 맡길 때도 늘 남편 옷과 내 옷을 한 벌씩 넣어주면서 엄마 냄새를 맡고 안정을 취하도록 했는데

그나마 스스로 소변을 봤다는 사실만으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매일 면회를 가면서 평소 좋아하는 고구마, 누룽지 끓인 물과 건더기 야채 삶은 것 등 등

음식을 해가고 옷을 바꿔 깔아주었다.

분명 기다리고 있을 테니 되도록 같은 시간대에 면회를 갔다.


남편은 목이라도 축이라고 손가락으로 숭늉을 떠서 코에 대주었는데 겨우 핥아서 빨아먹고

아예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먹성이 좋은  녀석이 음식을 코앞에 놔두고 냄새조차 맡지 않으니 애가 탔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으니 음식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매일 검사를 하는 것도 힘드니 상태를 지켜보자고 의사는 차근차근 살피고 진행하겠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하루는 절망, 또 다음날은 희망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주말이 고비라고 하는 말을 작은 딸에게 전했더니 당장 보러 오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겼다.

제이피가  떠나는 날 서울에서 듣고 달려왔던 아이라서

아무래도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런 것임을 알았지만

아기를 데리고 오는 것도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손주가 오면 우리가 손님을 맞는 상황이 되어 삐삐에게 신경 쓰는데 보태고 싶지 않았기에

절대로 오지 말라고 펄쩍 뛰었다.

완강히 거절을 하자 대신 딸은 손녀와 찍은 사진을 보내며 삐삐에게 보여 달라고 부탁을 했다.

휴대폰을 열어서 사진을 보여주었고 언니가(삐삐는 수놈이지만)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했다.

삐삐 곁에 식구들이 응원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말도 알려주고 싶었고  

삐삐는 강한 아이라서 그렇게 떠날 리 없다고 믿었다.

힘든 이틀을 지내고 신장 기능이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다는 의사 말을 듣고 그러면 그렇지 하며 기뻐했다.

남편은 무조건 선생님만 믿는다고 의사에게 부담을 주었다.


화요일 밤에 입원 한 이후 5일 동안 삐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 바람에 우리는 매일 도시락을 싸고 깔아 준 옷을 가져오고 새 옷을 가져가는 일을 반복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먹이려고 코에 대어도 입을 대지 않았는데

우리는 한 번만 입에 넣고 삼키길 바라며 매일 음식을  날랐다.

의사는 우리를 배려해서 입원실에 들여보내 주었는데

산소 줄과 링거 줄을 주렁주렁 매단 채 삐삐를 한 시간 넘게 데리고 안고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그곳에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케이지 속에 있었다.

삐삐처럼  입원한 개와 많은 개들이 치료받는 모습도 가까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다른 의사나 개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울음을 겨우 참고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


의사는 컨디션이 좋아지면 음식을 먹을 것이고 링거를 맞히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5일이 넘어가도록 안 먹으니 초조해졌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장은 70% 이상 망가질 때까지 증세가 나타나지 않아서 모른다고 했는데

그래도 소변을 스스로 보고 신장 수치도 나아졌으나 다른 문제는 빈혈이 심해  수치가 낮다고 했다.


삐삐를 안고 있는데 그날따라 배가 부르고 숨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배에 물이 찬 것이라고 하는데 물 때문에 갑자기 체중이 늘어난 것이었다.

심장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중에는 폐에 물이 차는 경우가 올 것이라고 했고

기침을 하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하는 주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제 갈 데까지  온 것인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편안히 보내주는 것이 삐삐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나는  삐삐의 마지막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조심스럽게 안락사를 하면 어떨까?  의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고 반대를 하며 엉엉 울었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냐고 반대를  했고  

의사도 좀 더 노력해보자고 했다


남편은 의사를 붙잡고 기적을 만들어 보자고 졸라댔다.

우리는 특별한 종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기도를 열심히 했다.

집 베란다에 초를 켜 놓고 삐삐 목걸이를 앞에 두고 물도 떠 놓았다.

삐삐는 집을 참 좋아하는 녀석이었는데 산책을 나갔다가도 집 가까이에 오면 어김없이 발걸음이 빨라졌다.

집으로 내려오는 언덕길에서는 어찌나 급한지 내가 천천히 내려가자고 할 정도였다.

모처럼 산책 중 삐삐와 벤치에 느긋하게 숨을 돌리고 쉬고 싶을 때도 절대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려고 조급증을 냈다.

그만큼 밖에 있으면 불안해하고 집을 좋아했다.

주말이 고비라고 했는데 겨우 주말을 넘기고 일주일이 다 되어 가니 삐삐는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을까? 싶었다.

당연히 병원이 좋을 리 없으니 하루만이라도 집에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혹시 집에 가면  밥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상상도 했다.  

그러나 집에 가서  상태가 더 심해지면  감당할 수 없으니  병원이 안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마침  의사가 수요일이 병원을 쉬는 날이라고 했다.

토, 일요일까지 이번 주 내내  의사가 일을 하러 나왔는데

수요일에 병원을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불안해졌다.

의사는 다른 선생님이 계시고 잘 부탁을 해놓으니 걱정 없으나

정 집에 데리고 가고 싶으면  하루 데리고 가라고 했다.

우리는 안절부절 결정을  하지 못했다.


삐삐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은 지극한 정성을 보였다.

나름대로 기도를 하며  삐삐가 돌아오기를 빌었다.

어느 날  남편이  미장원 원장에게 전화를  해서 삐삐 상태를  이야기하며

당신도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원장이 병원이 어딘지 한번 가보겠다고 하는 말을 전해 들으니 무척 고마웠다.

미장원을 잠시 비우고 시간을 내어서 개를 찾아 가본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왕 우리가 가는 길이니 시간을 맞춰 함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은 원장에게 “삐삐 빨리 집에 가야지, 그러니 어서 먹어야지” 하는 말을 해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

누가 뭐래도 그가 삐삐의 첫 번째 주인이고

거기서  2년 넘게 산 데다 개는 첫 번째 주인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고도 하기 때문이다.  

또 어찌 되었건 그가 우리에게 이토록 사랑스러운 삐삐를 보내 주었으니 고마운 노릇이고  

삐삐도 분명 그에게 고마워할 것이라고 믿었다.

삐삐에게 여한 없이, 또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날 원장은 삐삐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고 남편의 부탁대로 말을 전했다.


나중에 호주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마도 삐삐가 원장을 부른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동물심리 학자들의 책에서 그런 비슷한 내용을 봤다고 했는데

삐삐는 마지막으로 원장을 통해서 우리 집에 보내진 것을 고맙다는 인사를 한 것 같다고 말이다.


월요일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삐삐의 심장에 작은 종양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분명 3개월 전에도 없던  혹인데 갑자기 생긴 것이고 조직검사를 해서 알아내야 하지만

조직을 떼어 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악성인지 아닌지 검사를 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당장 중요한 게 아니라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이 있는데 그곳에 물이 차 있어서

숨 쉬는 것도 힘들고 배가 부른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그곳에 물이 차 있으니 물을 주사기로 빼는 시술을 해보자고 했다.

완전 마취는 아니지만  움직이면 안 되니 약간의 마취 상태에서 물을 빼는 것이고 그걸 삐삐가 견뎌야 하지만

물을 빼내어도  다시 차는 시기가 한 달 후가 될지 일주일이 될지 며칠이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또 빈혈이 심하니 수혈도 진행하기로 했는데 삐삐와 같은 피를 구하기 힘들지만  

최선을 다 해서  알아본다고 약속을 했다.


드디어 화요일 아침, 

겨우 삐삐와 같은 수혈할 피를 구했다고 연락이 왔다.

난처한 지경까지 생길 정도로 힘겹게 구했다며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지만

우리는 또  한 번 감사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병원에 들어간 이후 8일 동안 삐삐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겨우 숭늉만 손가락에 찍어서 핥아먹었고 고구마 으깬 것을 손톱만큼도 안 먹었다.

그래도 물을 빼내서 좀 편안해지고  집에 하루 데리고 오면 기운을 차리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다.

수혈은 심장병 개에겐 무리가 되므로  조금씩 천천히 링거를 통해서 들어가도록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화요일 오후 3시 30분에 영상의학과에 예약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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