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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Nov 26. 2020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남편은 매일매일 초를 켜 두고 삐삐가 집에 돌아오길 기도했다.


사실 월요일 저녁, 집에 들어오니 베란다에 놓아둔 삐삐 목걸이에 불이 켜져 있었다.

오래전 일본 여행을 갔다가 개 목걸이에 불이 들어오는 걸 보고 꽤 신기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 그런 목걸이를 겨우 찾아 가격을 물어보니 제법 비싸 사지 않았다.

그 이후 큰 딸이 그것과 비슷한 목걸이를 하와이에서 여러 개 사주었던 건데

불을 끄는 것을 미처 잊어버리고 놔둔 것이었다.  


어렵게 피도 구했고, 집에 삐삐 목걸이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이 왠지 좋은 신호 같았다.

그만큼 우리는 별 것 아닌 것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무엇이든 붙잡고 있었다.

아무것에나 매달리고 싶은 기분에 그것마저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삐삐가 반수면 마취를 잘 견뎌 주기를 비는 가운데  

잠시 바람을 쐬러 삐삐와 걷던 산책길을 걸으러 나갔다.

걷다가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니 밤하늘에 구름이 보였다.

놀랍게도 삐삐와 비슷한 형상이었다.

그 구름은  마치 삐삐가 걸어가며 나를 뒤돌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둘러 구름이 흩어지기 전 사진을 찍었다.

 ‘분명 삐삐는 괜찮을 거야’  ‘좋은 징조 인가 봐’..


삐삐를 닮은 구름과 함께


그리고 다음 날 화요일,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시술을 하기 전 삐삐는 여전히 음식은 입에도 대지 않고 힘없이 누워 있다가

또 내가 가니 벌떡 일어나 나오려고 문을 긁어대었다.

얼른 문을 열어서 안고 한참을 데리고 있었다.

코에 입을 맞췄는데 코가 심하게 쪼글쪼글하게 말라 있었다.

생전 처음 그런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아픈지 다시 한번 내 가슴에 찌르르 전해져 왔다.


남편은 갑자기 집에 삐삐 목걸이 불을 켜지 않고 나온 게 생각났다며

집에 돌아가 스위치를 눌러 놓고 오겠다고 했다.

미신이지만 뭐라도 붙잡고 싶은 남편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는 정신이 빠져 미처 차도 타고 않고 미친 듯이 뛰어서 달려갔다고 한다.

제법 먼 거리를 달려  불을 켜고  다시 온 것이다.


우리는 삐삐가 잘할 것이라 믿었고 잘 다녀오라고,

네가 다녀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이야기해주고 밖으로 나왔다.

의사가 삐삐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상실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삐삐가 내려왔고 의사가 우리를 불러서 들어갔다.


나는 입원 한 이후 의사를 만나는 순간부터 의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들었다.

의사의 표정으로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또 그녀의 표정을 살폈는데 어두워보였고 역시 그 짐작이 맞았다.

삐삐가 다행히 바늘로 물 빼는 시술을 잘 견디기는 했으나

물인 줄 알았으나 대부분 혈액이었고 그래서 많이 빼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빈혈이 심한 이유가 피가 새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삐삐가 영상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단 하루라도 집에 데리고 갈 생각을 했다.

곧 추워지니 감기가 걸리면 큰일이라는 말에 어이없게도 인터넷 쇼핑으로 털 조끼를 고르고 있었다.


일단 삐삐를 만나라고 해서 다시 들어가서 꼭 안아 주었다

힘들게 일을 마친 삐삐가 대견하고 미안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고

어찌해줄 도리가 없으니 안타까움에 몸이 떨렸다.

그때 잠시 안겨 있던 삐삐가 갑자기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실은  쓰러지기 얼마 전, 어느 날 아침에 삐삐의 기침소리를 들었다.

기침을 하면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설마? 난 내 귀를 의심했다.

심한 기침소리가 아니고 낮은 쿨럭 거리는 소리를 한번 냈는데

내가 잘못 들었거나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닐 것이라고 하고 넘겼다.

그때와  비슷한 소리의 낮은 기침이었는데 힘겹게 연거푸 하는 바람에 의사를 부르며 소리쳤다.


의사는 나가 있으라고 하며 다급하고 부산한 가운데 처치를 하기에

나는 입원실에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차마 볼 수 없었고 너무 두려웠다.

이제 결심을 할 때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다시 안락사를 입에 올린 것인데 더 이상 삐삐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이번에는 그러기를 바랐고 의사에게 의견을 말했다.

의사는 방에 데리고 가라고 하며 우선 잠을 재운 후 주사를 주겠다고 했다.


그 방은 두 번째 들어간 방이었는데 병원에 그런 방이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지난번 안락사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에게 거기에 들어가 삐삐와 쉬라고 내어준 곳이었다.

방바닥은 따뜻하고 커다란 침대 매트가 있었는데

눕거나 앉아서 개를 안고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던 방이었다.


나는 매트에 앉아서 삐삐를 안았다.

의사가 들어와 잠자는 주사를 놓고, 곧이어 바로 주사를 놓았다.

불과 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남편은 눈을 감도록 손바닥으로 삐삐 눈을 가리고 눌러주었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의사는 청진기를 대고 난 후

“2019년 10월 22일 오후 6시 7분에 사망선고를 합니다.”라고 말했다.


꿈같이 짧은 시간이고 마치 삐삐는 자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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