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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Nov 29. 2020

플란다스의 개

삐삐를 보내며

의사는  우리가 울 때마다 뒤돌아 서서 함께  울었다.

그녀도 마음 아파하며 같이 울고 웃었는데

결국 최후를 맡은 그녀가 마지막 모습을 정리하여 상자에 곱게 싸 넣어주었다.


삐삐의 주치의는 장수화 선생이다.

그녀는 활달한 성격으로 시원시원하고 큰 목소리로 우리에게 설명을 잘해주고

얼굴도 예쁜 고마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고  배우 최강희를  닮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어쩐지 그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 덕분에 그나마 삐삐를 병원에 맡기고 다닐 수 있었고 매달 병원에 다니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장수화 선생에게  맡기고 최선을 다 했으나 삐삐는 떠났다.


심장에 생긴 작은 혹이 원인인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악성 종양으로 의심되지만 이제 결과를 안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곱게 잘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몇 군데를 알아보다가 파ㅇㅇㅇ로 정했다.

제이피를 보낼 때는 개 화장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오래전 일이라

상자에 곱게 싸서 넣고  병원에서 처리해달라고 돈을 주고 나왔었다.

하지만 요즘은 잘 되어 있으니 삐삐를 아무렇게나 처리하고 싶지 않아 여러 군데 전화를 해보고 결정했다.


이미 저녁이 되어 어두워졌고 그곳이 우리가 가기에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

이상하게 이름이 마음에 끌렸다.

내가 어릴 때 본  ‘플란다스의 개’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소년과 개 이야기이다

가난한 소년 네로와 단짝 친구 파트라슈가 우유 배달 수레를  끌며 추위에 떨다 마지막에 죽는 것으로

그 동화는 무척 마음이 아픈 내용이고 충격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집 없는 소년’이라는 동화책 역시  

주인공 소년 레미가 개 3마리와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갖은 고생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소공녀’ ‘소공자’ 같은 동화책도 재미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개나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슬펐다.

그로 미루어봐서도 나는 과연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은데  

하물며 자식처럼 같이 살던 강아지를 잃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현실이었다.


상자 속의  삐삐는 곱게 누워서 자는 것 같이 보였다.

8시에 끝난다고 해서 그 시간 전에는 도착하겠다고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고 출발했다.

제이피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때는  잘 몰랐고  부산에 화장장이 없던 시절이라

그렇게 보낸 것이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긴 한데  

그 당시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마찬가지로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죽은 후  비싼 장례를 치르는 것은  자기 위안일 뿐 죽은 뒤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죽은 후 울고불고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잘하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나는 시아버지와 친정엄마를 먼저 떠나보내는 이별을 했고

복잡하고 힘든 한국의 장례문화를 치르고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강아지를 보내면서  유별나게 굴고 싶지 않았다.

평소 나는 강아지에게 극성스럽고 유난하게 동물 병원 의사나 간호사, 털 깎는 미용사 등을  챙겼다

내 아이에게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것이지만

그가 존재하고 살아 있을 때 최선을 다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런 마음으로, 내 최선을 다해서 사랑했다고 생각하면서 제이피를 떠나보냈지만  

삐삐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니 가져갈 때까지 병원에서 냉동처리를 해서 한꺼번에 모았다가 소각을 한다고 했다.

비록 죽은 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놔둘 수 없었던 것이다.

일을 끝내고 집까지  돌아가려면 밤늦은 시간이 되는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남편이 나를 걱정했다.

저혈당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러서 간단히 차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기로 했다.

곁에는 삐삐가 상자 속에 누워 있었다.

너무나 조용하고 얌전하게..


처음 가는 길이고 어두운 밤이라  입구를 찾지 못해서 힘들게 도착했다.

마침 아무도 없는 조용한 가운데 우리를 정성스레 맞아 주었다.

사실 남편은 가면서도 장사 속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그런 곳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고 유골함이나  납골당 이야기, 구슬을 만든다. 등 등

선택이 많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미 조용히 화장만 하고 돌아올 작정을 하고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가보니 아무런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나는 삐삐 얼굴에  내 얼굴을 마주 대어보니  아직도 숨 쉬고 있는 듯  

체온이 식지 않은 상태였고  자고 있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매일 병원으로 내 옷을  빨아서 가져가 곁에 놔두었는데  

마침 그날 내가 아끼는 티셔츠를 가져갔지만 면 소재의 옷이라 그 옷을  덮어주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내 옷을 하나 넣어서 태우기로 했다.


살짝 눈을 뜨고 있는 형태라서 우리가 눈을 감겨 주었다고 이야기하니

개는 저절로 눈을 감지 못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며 그래도  꼭 감기고

싶으면 눈을 꿰매 주기도 한다는 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다.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 말만 나왔는데

그 사람이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너를 만나서 행복했다”  “고마웠다”라는 말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정말로 나는 삐삐 만나서  고맙고  행복했다.

헌데 입에서는 자꾸 미안하다는 말 만나 왔는데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삐삐야 너무나 고맙고 행복했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삐삐를  알코올로 간단히 닦아 주고 베로 싸주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종교가 있으면 자기 종교 식으로  인사를 하라고 하며 잠시 밖으로 나갔고

나는  마지막으로 볼을 갖다 대었다.  

알코올 냄새로 인해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고  정말 영원히 헤어지는 작별의 순간 앞에 서 있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화덕에 넣었다.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곳에서 기다려야 했다.

울음도 더 이상 안 나왔고 나는 의자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렸다.


삐삐는 내년 5월이면 12살인데 나는 2년만 더 살았으면 했다가,

아니 봄까지만 있었으면 했다가 욕심을 부려서 5월 삐삐 생일까지만 살았으면 했었다.

11살 5개월을 살았는데 나와 산 시간은 기껏 10년이 채 못 된다.


밖은 어둡고 비가 약간 내리고 있었는데 남편이 삐삐 사진을 보며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은 삐삐가 얼마나 예쁜 아이였는지, 자랑을 하며 사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업체 주인은 삐삐가 11살이 넘은 개처럼 안 보이고 깔끔하며 사랑받고

잘 살아온 강아지처럼  보인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남편은 기분이 좋아져서 좋은 일 하니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넸고

그분도  유기견을 입양해서 몇 마리의 개들을  기르고 있다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드디어 화장을 마치고 약간의 가루를 종이에 담아 작은 나무상자에 넣어 가지고 차에 탔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고, 남편은 이게 모두 삐삐 덕분이라고 했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삐삐와  매일 걷던 산책길로  향했다.

나는 하루쯤은 집에 놔두고 싶었으나  남편이  바로 보내주자고 했기 때문이다.

가는 길마다 뿌려주었는데 제법 긴 거리이니만큼 아주 조금씩 아끼듯 골고루 나무와 땅 밑에 뿌렸다.

그곳을 다 돈 후 다시 우리 아파트의 2층 작은 정원까지 걸어왔다.

이곳 역시도 삐삐가 매일 드나들던 곳이라 지나칠 수 없었다.


삐삐가 산책할 때 쓰던 목걸이는 땅에 묻었다.

그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수없이 드나들며 다닌 소중하고 고마운 목걸이 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젠 어디든 마음껏 훨훨 날아다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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