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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Dec 01. 2020

마지막 정리


제이피 때는 <그립고 그리운>과 같은 노래를 들으며 많이 울었지만 삐삐가 떠난 후에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남편도 삐삐가 떠나자마자 아주 빠른 속도로 삐삐가 쓰던 모든 것들을 치웠다.  


우선 동물보호단체에 강아지 집과 옷, 이불, 사료, 통조림, 약, 영앙제, 배변판 등을 기부하려고 알아봤는데 어디에 보내야 할지 잘 몰랐다.

기부를 하려고 해도 솔직히 믿음이 잘 가지 않는 데다 지난번 한 동물단체 대표의 비리 문제가 불거진 이후로 신뢰를 잃어 아무데나 하고 싶지 않았다.

한 때 작은 딸과 함께 제이피 이름으로 유기동물보호소를 돕기 위한 자선 파티를 열고 기부를 했는데 딸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돈 대신 필요하다는 사료와 약 등을 사서 보내곤 했다.

나중에 딸은 그곳에 사위와 함께 봉사를 하러 갔다가 어떤 강아지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그 이후 연락이 끊어져 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는 바람에 우리가 알아보았다.


봉사를 갔던 유기동물보호소 / 딸의 눈에 밟혔던 담비를 닮은 강아지

우선 남편이 부산에 있는 보호소를 찾아 전화를 했더니 물건은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는 물건과 돈을 보낼 작정이었으나 그쪽에서는 그걸 모르고 아마도 쓰다 남은 물건만 보내는 줄 알고 거절한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보호소가 동물병원 안에 있어 물건은 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10여 년을 다니던 동네의 동물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예방 접종과 광견병 주사를 맞히고 심장 사상충 약을 먹였다.

삐삐 수첩에는 주사약 라벨을 떼어 매해 날짜별로 붙여 놓았는데 아기 수첩과 마찬가지로 삐삐의 역사가 남아 있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의사에게 삐삐가 심장에 작은 종양으로 며칠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우리가 갑자기 찾아가 삐삐가 떠났다고 담담히 말하니 당황하며 놀라는 눈치였다.

사실 소소한 일들로 병원을 드나들었던 곳인데 막상 다리 수술을 할 때 큰 병원을 선택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의사도 이해하였고, 가까운 동네 병원이라 심장 사료 등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녀 삐삐가 심장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의사는 공부하면서 그런 경우를 배우고 듣긴 했으나 실제로 심장에 종양이 생긴 개를 직접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희귀한 케이스라는 것인데 장수화 선생도 그랬고 이 의사도 그러니 더욱 마음이 아프고 쓰렸다.

하필 우리 삐삐에게 왜 그런 병이 생겼을까? 생각하니 속상하고 다리수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수술을 하면서 마취 등 스트레스도 상당했을 것이고 또한 그것이 한 원인이 된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만약 침을 맞히고 한약을 먹인 것 등등 결국 종양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너무나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닌가?

삐삐가 쓰러진 날도 남편인 의사는 이제 괜찮으니 집에 가라고 했다.

그들 탓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원망과 미움, 그리고 내가 왜 그 의사를 찾아갔을까?  하는 후회가  다시 밀려왔다.

이런 후회는 삐삐를 보내고 그리워질수록 떠나지 않는다.


진찰실을 나오니  간호사가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간호사는 우리가 갈 때마다  삐삐에게 간식을 주던 친절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의사도 우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고 삐삐를 위해서 울어주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더구나 우리의 물건과 약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심장 사상충 약은 한통을 사서 딱 한번 먹고 그대로 남아 있었고, 물품은 많아서 택배로 물건을 보낼 테니 유기견이 생기면 그들에게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물건뿐 아니라 사료를 사도록 돈을 주려고 하니 간호사가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다음날 택배로 물건을 보내고 삐삐를 생각하며 함께 울어준 간호사를 남편은 다시 찾아갔다.

그 마음이 위로가 되고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 이후 다시는 그녀를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  후 동네 근처 길  뒤에서  개가 헉 헉 거리며 끌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밤이고 사람이 많은  길이라 사람이 다니기도 복잡한 거리였다.

이런 곳에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싶어 힐끔 개를 쳐다봤다.

그런데 누군가 “삐삐 어머니”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귀를 의심했는데 나에게 ‘삐삐 어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주치의 선생은 나에게 '보호자님'이라고 호칭을 하고  다른 병원에서도 삐삐 이름으로 불리었는데 삐삐라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그 간호사 선생이었다.

그 날이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자기가 기르는 개이며  병원과 멀지 않은 곳 이 근처에 산다고 했다.


삐삐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삐삐’는 내가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미장원에서 데리고 온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삐삐가 떠나고 나니 모든 것이 그립고 촌스럽게 느껴지던 이름조차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나는 요즘도 ‘삐삐야 보고 싶어’라고  혼자 불러본다.

남편도 마찬가지 일 것인데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 지치 않으면서  눈물을 삼키며 모르는 체한다.

남편도 마음속으로 나처럼 삐삐를 부르고 이야기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남편이  “우리 삐삐가 지금 곁에 있다면  좋겠지?”

너무나 간절한 바람을  무심코  던진 말 것처럼  담담하게  물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삐삐는  아픈 삐삐가 아니라 건강한 예전의 삐삐라는 사실을...

남편은  그 말이 정답이라고  몇 번이나  내 말을 곱씹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우리는 삐삐를 그리워 하지만 아픈 삐삐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건강하고 활기찬  삐삐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아프고 힘든 삐삐를 억지로 곁에  잡아두고 싶지 않다.


남편의 재빠른 일처리로 삐삐의 자취는 집에서 사라졌는데 마치 연기처럼 날아가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매일 졸 졸 따라다니며  같이 잠자고 항상  곁에 있던 삐삐가 사라진 것이다.

샤워를 할 때도 부스 앞에 누워 있고 어디 에서는  삐삐의 눈은 항상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낯설고 이상해서  꿈이거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심리학자들은  수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던 개에게서 들리는 소리를 개가 떠난 후에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듣는 사람도 많은데 그러한 현상을 ‘형상적 잔상’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남편도 나도 간혹 삐삐가 집에 있는 것 같은 착각과 소리를 듣는다.

남편은 나를 위해서 이렇듯  빠르게 삐삐를 떠나보내려고 애를 썼다.

삐삐는 동물등록을 한 상태에서 구청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개는 사람이 아니니 ‘사망신고’가 아닌 '폐사 신고'라고 했다.

그 단어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남편은 삐삐가 이 세상에 빚진 것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기를 원했고 나도 동의하여 종이 한 장이지만 그것마저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싶었다.

구청을 다녀온 며칠 뒤 완료되었다는 삐삐의 서류를 받았다.


삐삐는 정말로 이제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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