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나이들기
남편에게 애를 낳고 다시 내가 지금처럼 일을 할 수 있을지, 복귀를 할 시점에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진 않을지, 대표자리를 포기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하진 않을지, 애매한 나이의 나를 누군가 고용을 해줄런지 등 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남편이 말했다.
"당신은 잘 할꺼야."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위로와 응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말이 서운하게 들리지 않았다. 다만, 이런 생각을 했다. 이건 결국 법인의 대표이자 여성이자 30대이자 예비 엄마인 내가 나의 많은 역할 속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날 위해 모든걸 해주고 싶어하는 고마운 남편이지만, 이 부분은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이런 고민을 말하면 주변에서는 "그래도 너는 전문직이잖아." 라는 말이 돌아올 것을 알기에 남편 외에는 이런 고민을 말한적도 없다. 그리고 아마 어떤 전문직 여성이 이런 고민을 한다면 나도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깊이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는 맞고 또 어느 정도는 틀리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단순히 '일'을 할 수 있느냐 마냐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처럼'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을까이다.
회사를 다니며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이라면,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으로 이전과 다른 일, 권한, 업무범위를 맡게 되었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특히 그러한 인사이동이 좌천과 같이 이전보다 여러 모로 별로인 곳으로 이루어진다면 말이다.
나 또한 그런 류의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직장을 8번이나 바꾸고 직업도 4번이나 바꾼 내가...어떤 일이야 못하겠냐만은, 그래도 나름 내 커리어에서 가장 길게 일구어 온 현재의 일과 역할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 생각하니 많은 두려움이 몰려온 것이다.
나는 이러한 두려움이 당연한 것이며, 매우 많은 위로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친구 또는 아내가 이런 고민을 한다면, 이러한 고민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며 한낱 욕심이라고 가볍게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누군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엄마로서의 삶을 줄여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줄여나가겠지.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어느만큼 줄여나가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보는 과정이다. 물론, 지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당장 답은 없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저 앞에 놓여진 것들에서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들을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엄마는 나를 낳자 마자 외할머니 친할머니 이모 삼촌 되는대로 맡겨두고, 직장에 폐를 안 끼치기 위해 엄마로서의 삶을 극단적으로 줄여가며 겨우 커리어를 유지했다. 그런 우리 엄마도 9살 불안과 공포심이 가득해 한 순간도 집에 혼자 있지 못하고 매일 우는 나를 위해 결국 회사를 그만둬야했다.
우리 엄마 또한 많은 역할들 속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최선이라고 믿는 선택들을 해왔겠지.
일에 욕심이 많은 엄마는 첫째인 나를 포함해서 셋째까지 키우면서도 일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고 사부작 사부작 이런 저런 일과 공부를 해나갔고, 지금은 작은 행정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여지껏 살아오며 원망할 때 빼고는 돌아본 적 없는 엄마의 과거사를, 같은 고민을 해왔을 여성으로서 돌아보니 어딘가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이제야 이해가 되는게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