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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KTEA MOON Nov 27. 2015

잘 삶긴 팥이 '담백함'을 두고 갔다

서울 영등포 당산동 빵집 : 욥 (생활의 달인 빵집) 


서울 영등포 당산동 빵집 

'욥' 


나이 드신 분들이나 즐겨본다는 '생활의 달인'. 나도 나이를 먹었나..... 얼마 전부터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처음엔 그럭저럭 볼만한 정도였는데 요즘은 월요일만 되면 심장이 쫄깃쫄깃, 무조건 본방 사수를 감행한다. 수많은 달인 중 가장 좋아하는 섹션은 음식 파트. 보통 음식 달인은 한 명만 출연하는데 요즘은 쿡방, 먹방이 인기를 끌면서 한 주에 2명 정도 등장한다. 보면서 '와.... 대단하다, 음식을 저리 만들 수도 있구나, 나는 음식 장사는 절대 못하겠다, 근데 저 귀한 기술을 다 공개해도 되나, 나이도 많으신데 방송 후에 손님 많으면 어쩐댜...' 등등 방송 보며 별 오지랖을 다 떤다. 물론 그럴싸한 방송을 위해 다소 과장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예쁘게 포장한 것도 있겠지만, 달인의 음식은 그저 '잘 만든다'는 표현으론 실례라 여겨질 만큼 진귀하고 경이롭다.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한식부터 일식, 이탈리안식 등 다양한 달인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눈길이 가고 꼭 맛보고 싶게 만드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빵 달인.


아마 4주 전일 터. 오늘 소개하는 '욥' 이란 빵집이 단팥빵의 달인으로 방영됐다. 작고 아담한 가게. 심지어 상가 안에 숨바꼭질하듯 숨어있지만, 다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손님으로 북적인다. 

                                                  

▲ 11시 40분이 되자 슬슬 손님이 밀려든다.


                                       

▲ 빵 나오는 시간에 맞춰 가면 좋다. 

                                               

나는 평일 오전 11시 30분쯤 방문했다. 방송 후 4일 만의 방문이었기에 당연히 손님은 많을 거라 예상했고, TV에 소개된 단팥빵과 소보로는 미리 포기한 터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손님은 아주머니 2분과 아저씨 1분. 다행히 평일이라 오전부터 붐비진 않는 모양. 


아담한 매장을 차분히 둘러본 후 진열된 빵을 차례차례 탐닉한다. 키친 쪽을 살펴보니 3-4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빵을 만들고 있다. 오전이라 진열된 빵은 극히 적었고 단팥빵과 소보루는 진열대에 안착하지 않았다. 애초에 TV에 나온 빵은 포기 상태였기에 내 취향에 맞는 크림치즈 타르트와 무화과 시폰 케이크를 골랐다.


▲ 대체적으로 담백한 빵이 많다.


▲ 내가 구입한 '크림치즈 타르트(2,200원)'과 '무화과 시폰 케이크(4,500원)'


일부러 영등포까지 왔는데 빵 2개만 사긴 아쉬워 뭘 더 살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그때 먼저 와 있던 아주머니들의 항의 비스무리한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단팥빵은 언제 나오냐, 소보로는 만들어둔 게 없냐, 멀리서 왔으니 어떻게든 살 수 없냐' 며 점원을 다그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새벽부터 빵 만드느라 직원들은 지쳐 보였는데 아주머니의 다그침은 끝을 몰랐다. 정작 아주머니들 때문에 나는 계산도 못하고 있었고 그저 안쓰러운 눈빛으로 직원에게 무언의 위로를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길고 긴 아주머니의 다그침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10분만 기다리면 1인당 2개씩만 단팥빵을 팔겠다고 한다. 알고 보니 예약된 단팥빵이 곧 나올 예정인데 일반 손님에게 팔 분량은 거의 없는  듯했다. 마음이 진정된 아주머니들은 조용히 기다리기 시작했고 나 또한 얼떨결에 단팥빵 구입이 가능해졌다. 5분쯤 기다리자 드디어 단팥빵이 보인다. 오븐에서 막 구워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녀석들. 


이 집은 단팥빵이 좀 독특하다. 보통 단팥빵처럼 팥소를 빵에 넣어 만들지 않는다. 빵을 따로 구워낸 후 반으로 갈라 잼처럼 발라낸다.  



직원들의 손길이 아주 분주하다. 빵 가르고 팥소 넣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팥소 채우기를 마친 직원들은 단팥빵 개수를 체크했다. 그리곤 우리 쪽으로 다가와 양해를 구했다. 개수가 부족해 1인당 1개씩만 살 수 있다는 것. 애초에 1개만 살 예정이라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아주머니들은 다시 구시렁대었다.         


▲ 단팥빵 1,500원



어쨌든 뿌듯한 마음으로 단팥빵을 쥐고 나서는 길. 차에 타자마자 바로 맛을 봤다. 크기는 작지만 생김새는 독특한 녀석. 앞모습은  영락없는 모닝빵인데 윗부분을 들추니 푸짐한 팥소가 눈에 들어온다. 팥은 빙수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자태. 


부푼 마음으로 한입 그득 입에 넣었다. 음, 달지 않다. 더불어 담백함이 깊다. 달지 않고 담백하다는 것. 이것이 미사여구 없이 이 단팥빵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지 싶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맛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팥을 여러 번 삶고, 숯향을 입히던 TV 속 과정 하나하나가 다 이해되고 그것이 직접 와 닿는 맛.  


비주얼이 보통 단팥빵과 다르듯 맛 역시 보통의 것과는 다르다. 팥소를 빵에 바른 격이라 처음에는 빵과 팥소가 따로 퍼지는데 그것이 거슬리지 않고 씹을수록 조화롭다. 무엇보다 팥 삶은 정도가 적절하다. 너무 뭉개지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올바른 식감. 빵과 버무려졌을 때 담백한 팥맛이 극대화된다. 

소위 사람들이 애타게 부르짖는 미치도록 맛있는 빵, 단팥빵의 신세계 따윈 없다. 그저 달지 않고, 담백하며, 팥 식감이 적절하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납득이 되는 빵이었다.       

                                           

▲ 크림치즈 타르트 2,200원



단팥빵과 소보로를 사지 못했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TV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시폰 케이크가 상당히 일품이다. 시폰은 남편과 내가 굉장히 좋아해 어느 집에 가든 꼭 하나씩 사 오는데, 올해 먹어 본 시폰 중 가장 맛이 좋았다. 


특히 무화과 시폰은 이 집에서 처음 보는 독특한 빵. 개인적으로 무화과 향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이 집은 은은한 무화과가 젤리처럼 쫀득쫀득 씹혀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 빵 결은 과하게 폭신하고 부드러워 손을 대는 것 조차 살짝 망설여질만큼 촉촉함이 아주 일품이었다.

생각보다 크림치즈 타르트는 무난하다. 치즈 필링이 혀에 미끄러지듯 내려앉아 그럭저럭 나쁘지 않지만,  타르트지 질감이 다소 딱딱해 필링과 곱게 어우러지지 않는다.                



                                 




* 외식 에세이에 수록된 모든 장소는 금전적인 지원 없이 작가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여 맛 본 곳을 대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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