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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KTEA MOON Nov 17. 2015

부산 다운 음식을 낸다는 것

부산 동구 범일동 : 할매 국밥

부산 동구 범일동 돼지 국밥집

"할매 국밥"


충청도에서 자라 서울에 제2의 터전을 꾸린 나는 경상도 음식을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 고작해야 경상도 여행길에 때운 식당 밥이 전부. 고로 경상도 음식은 '낯섦' 그 자체였다. 그런 내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경상도 음식을 체감하게 된 것은 결혼 이후부터. 남편이 대구 출신이라 명절마다 제사 음식을 도우며 본격적으로 보고 배우게 됐다. 


일단 경상도 음식은 간이 세다. 특히 대구는 기후적으로 따뜻한 습성이 강해 음식의 빠른 부패를 막기 위해 초장부터 간을 세게 하는 편. 이런 습성은 김치에서 빛을 발하는데 김장할 때 서울이나 충청도와는 확연히 비교될 만큼 젓갈을 푸짐히 넣는다. 사실 우리 아빠는 젓갈을 싫어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금과 양념으로 간을 한 담백한 김치만을 먹어왔다. 이런 내게 시댁 표 김치는 짙은 젓갈 향이 냄새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고, 입에 넣었을 땐 짓궂은 젓갈 내가 혀와 코를 마비시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엔 김치 통이 2개. 1통은 남편 용인 시댁 표 김치, 1통은 젓갈을 넣지 않은 우리 엄마표 김치. 


어쩌다 보니 경상도 음식과 김치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는데 내가 초장부터 떠드는 이유는 오늘 소개할 부산 '할매 국밥'에서 경상도 음식의 정수를 맛봤기 때문이다. 


                                 

40분을 기다리게 한 어마어마한 줄
60년 전통. 확실히 가벼운 내공은 아니다.



최근 '수요미식회' 부산 맛집에 선정되며 유명세를 치른 이곳. 시간은 점심이라기엔 살짝 이른 11시 20분. TV 파급력은 놀랍다. 길게 늘어선 줄이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게 만든다. 부랴부랴 주차를 마치고 그 대열에 합류했다. 줄을 선 후 식당에 들어서기까지 40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는 데 15분. 1시간을 가볍게 투자해야 이 집 국밥을 영접할 수 있다.


메뉴는 단출하다. 국밥과 수육, 순대가 전부. 메뉴판 끝자락에 국수도 있으나 테이블을 둘러보니 모두들 국밥에 수육만 곁들일 뿐. 우리는 돼지국밥과 순대국밥, 수육 한 접시를 주문했다. 처음엔 수육을 먹을까 아니면 순대를 먹을까 고민했는데 수육을 주문하면 순대 몇 점을 함께 내어준다.


                            

예전엔 조금 더 늦은 시간에 닫았다. 방송 이후엔 저녁 7시에 닫는다.



가게로 들어서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요즘 물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얼핏 봐도 테이블과 의자 하나까지 나이가 지긋한 풍경. 


자리에 앉은 후에는 어떻게든 주문하려 하지 말고 아주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음식 내어줄 준비가 되면 알아서 테이블로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손님이 워낙 많고 그리 친절한 분은 아니기에 적당히 눈치 보며 주문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그래야 면박을 듣지 않는다. (옆 테이블 손님은 '주문할게요!' 외치자마자 아주머니께 면박 아닌 면박을 들어야 했다)


주문만 넣으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 3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음식이 테이블에 깔렸다. 국밥의 따뜻한 기운이 몸과 얼굴을 감싸는데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 국밥이 7,000원이라고 무시해선 큰 코 다친다. 이 집, 전체적으로 양이 보통이 아니다. 거의 곱빼기? 아니... 대식가 수준의 양.                                           



도톰한 이 집 수육은 육질보다 '돼지 살점'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 (수육 작은 사이즈 10,000원)



수육은 "내가 바로 수육이다!" 큰소리로  동네방네 떠드는 느낌. 보쌈이나 일반 수육과는 비주얼이 현저히 다르다. 누가 부산 아니랄까 봐. 손 가는 대로 탁탁탁 고기를 투박하게 쳐낸 느낌. 보쌈 두 점은 합친 것 마냥 두께가 야무지다. 


평소처럼 새우젓에 찍어 먹으니 아주머니가 "부산은 여기에 찍어 먹는다."라며 양념통 하나를 치고 간다. 종지에 덜어내니 간장이라기엔 살짝 연한 색감이지만 식초를 살짝 섞은 간장 맛이 돈다. 여기에 수육을 푹 담가 먹으니 확실히 새우젓과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솔직히 이 집 수육은 맛있다고 보긴 힘들다. 너무 오래 삶기도 했고 투박하게 썰어서인지 고기 맛은 진하게 느껴지나 육질이 질기고 감칠맛은 적다. 천천히 술 한 잔 기울이며 안주로 먹기엔 나쁘지 않지만 식사 메뉴로 곁들이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크기와 육질이다.  



지독하게 큼직한 왕 순대



수육에는 순대도 몇 점 내어주는데 이것 역시 보통 놈이 아니다. 순대 한점이 어린아이 주먹 크기. 웬만해선 한 입에 들어가지 않아 남자는 두 입, 여자는 세입은 나눠 먹어야 1개를 해치울 수 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만큼 맛도 독특한데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입에 대기 어려울게다. 순대 특유의 꼬리꼬리 한 냄새가 좀 강한 편이다. 평소 순대를 애정하는터라 오히려 나는 그 점이 맘에 들었는데 분식 표 찹쌀 순대는 모습만 순대일 뿐, 깔끔한 맛에 제대로 먹는다는 느낌이 적다. 반대로 이 집은 순대 특유의 짙은 풍미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만 딱 적당히 입을 감싸 굉장히 맛있게 마무리된다. 나와 다르게 남편은 별로다 평했으니 호불호는 심하게 갈릴 음식이다.                                  


                                                  

돼지고기가 아낌없이 투척된 국밥 7,000원



이제 마지막.... 드디어 국밥을 논할 차례. 세상이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 2가지로 나뉜다면 국밥은 애석하게도 맛없는 음식에 넣는 것이 객관적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맛없는 음식으로 결론짓기엔 몹시 아쉽고 섭섭할 만큼 이 집 국밥은 경상도 음식, 특히 부산 음식의 중요한 가치와 특색을 담고 있다. 


보통 서울 국밥은 대충 이러하다. 하얀 국물이든 빨간 국물이든 국물 자체에 간이 정확히 스며있고 식당별로 저마다의 다대기를 추가해 국물로는 부족한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이 다대기엔 식당만의 고유한 비법이 담기지만, 일부 식당은 조미료로 그럴싸한 감칠맛을 낼 것이다. 그렇기에 한입 두입 먹을수록 더욱 시원하게 느껴지고 최종적으로 속이 확 풀리는 경쾌한 기분을 누리게 된다. 


이와 달리 이 집은 확실히 '그런 식'의 감칠맛은 적다. 하지만 먹을수록 자연친화적인 감칠맛이 도는데 그것은 국물을 정말 깔끔하고 담백하게 우려냈기 때문. 소박하고 심심하지만 정갈하고 담백하며 식재료 본연의 맛이 국물에 서서히 피어오른다. 그것은 점점 감칠맛을 부르고 최종적으로 요즘 국밥이 주는 경쾌함은 적지만 건강한 시원함으로 마무리된다. 


더불어 끝 맛에선 경상도 특유의 장내가 난다. 이것은 대구에서도 얼핏 맡았던 내음, 그리고 부산에서는 조금 더 짙어진 장내다. 이 장내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경상도 음식의 철학과 이어지고 서울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음식이라 더욱 여행하는 맛이 났다. 

    



순대 세 점과 돼지 살점이 넉넉히 들어간 순대 국밥 7,000원



전체적으로 무릎을 탁! 칠만큼의 맛있다는 느낌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집이 좋았고 부산 여행을 계획 중인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집이다. 이 집 음식을 먹는 순간 나는 내가 부산에 와 있음을 느꼈다. 이후에도 여러 식당에서 부산 밥을 먹었지만 그것은 '부산스럽다' 여겨지진 않았다. 


부산 다운 음식을 낸다는 것.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 집은 앞으로도 꾸준히 장사가 이어져야 하고 부산에서 시간을 내 맛봐야 할 가치가 있다.    


                           



* 외식 에세이에 수록된 모든 장소는 금전적인 지원 없이 작가가 기꺼이 돈을 지불하여 맛 본 곳을 대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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