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갱단

by 김재홍

이번엔 칠면조 이야길 해볼까 해!

우리 주위에 칠면조는 그리 흔하진 않아

우리나라 가축동물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녀석들은 꽤나 커서 조금은 무서운 듯 보이기도 하지

못생긴 데다 험하게도 보여 . 크기는 거위만 할까? 그보단 조금 더 큰 것 같아.

산골에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 것 같아

동네 터줏대감들과 사이가 원만치 못할 때인 것으로 생각돼.

그 당시 읍내에서 판매업을 하고 있었는데 점포 앞 도로에

60 가까이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리어카(수레?)에 이상한 녀석들을 넣어 놓고는

그 녀석들이 도망갈까 봐 나일론끈으로 바둑무늬처럼 리어카 위로 그물을 쳐놓았지

등치는 제법 커서 닭 정도이고 검붉은 놈들이 나일론끈 사이로 고개를 올리곤 하는 게

신기하기도 해 물어보니 칠면조 새끼들이라는 거야.

녀석들을 팔기 위해 점포 앞에 임시 노점상을 차리신 게야.

헌데 아무리 보아도 장사꾼 같지도 않고 농부 같지는 않고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기는 하였지만 물어보지는 않았어.

저 칠면조를 한두 마리 사가고 싶기도 하였으나 집사람 결재가 쉽지 않겠서서

참았다고 할까.

그런데 저녁 늦게 까지 한 마리도 못 파신 것 같아

딸아이 같은 처녀와 같이 리어카를 끌고 가시는 게야.

다음날 그분은 오지 않으셨고 하루 또 지난날 다른 곳에다 노점 리어카를

또다시 펼쳐 놓으신 거야.

차를 타고 지나다가 눈에 띄었지.

칠면조 숫자도 그때와 비슷한 걸 보면 한 마리도 못 파신 게 분명해

차에서 내려 궁금중도 풀어볼 겸 말을 건넸지

어떻게 이런 영업(?)을 하시는가? 여쭈어보니

사연이 있으셔

그분은 목사이시고

이 근처 가까운 곳에서 개척교회를 하시고 계셨고

워낙 어려운 교회라 칠면조를 키워 조금이라도 보탬을 하려 하셨는데

교회옆에 아파트가 들어와 냄새난다는 항의에 이들을 쳐 분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야.

벌써 사일째 부업(?)을 하고 계신 거야.

한 푼의 수입도 없이 말씀야.

칠면조를 우리 식구로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좀 불쌍하기까지 했던 목사님도 도와 드리고 싶고 한데

집사람이 걱정이야.

내가 출근하면 누가 밥 주고 청소하고 해

몽땅 집사람 몫이잖아.

허 어찌하나 하고 고민 중인데

묘안이 생긴 거야.

우리 집사람이 "목사님" 하면 껌벅 죽거든

지금은 권사지만 그 당시 에는 집산가 뭔가 했었지.

그때 내차가 픽업이야 2인승 픽업 알지 조그만 화물차.

화물칸에 통째 실었지. 리어카까지.

그 목사님 태우고 집으로 산골로 향했지.

작전은 맞았고 식사대접까지 잘해드리고 21마리의 칠면조를 우리 식구로 삼게 된 거야.

목사님과 리어카를 다시 모셔드리고

덕분에 사료 남은 것과 모이통 등을 얻어와

아직은 덜 흉물 스런 칠면조를 식구로 삼게 된 거야

며칠을 갖아 놓았고 이들 역시 닭들처럼 운동장에 풀어놓았어.

이놈들 식성이 무척 좋아 사료 사대기도 힘들어

무럭무럭 자라 성계(?)가 되니까 문제가 하나둘이 아냐.

이중에도 대장이 있는데

이놈이 이들을 끌고 다녀

산속을 헤매다가는 저녁에 돌아오긴 해.

때론 남의 집에 들어가 그 집 개를 쫓아내고

부엌에 들어가 다 뒤집어 놔 , 그릇 속에 밥까지 몽땅 해치워

한 번은 500미터는 떨어진 양계장엘 들어가 시위를 했나 봐

산란하는 닭들이 놀래 산란율이 엄청 떨어졌다며 변상하라는 거야.

닭들은 벼 이삭을 하나씩 쪼아 먹는데

이 녀석 들은 이삭을 통째로 입에 물고는 훌터.

우리 집 주위의 논들은 이삭이 아예 없어 몽땅 먹어치워서 말이야.

이웃 동네에서 비상회의가 열렸데

김씨네를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며

대표단을 보내왔어

모든 동물들을 가두어 키우라는 거야.

아니면 잡아 버릴 거라고

농부들의 걱정은 하지 않고

가둬 키울 바엔 다 풀어놓고 맘대로 살라 하고픈 내 걱정만 하던

못된 놈이었어.

촌사람들이라고 내가 우습게 본거지 뭐야.

내가 뭐 아쉬울 게 있나 하며 대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던 거야

남의 농작물을 뜯어먹게 하곤,

변상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만 생각했으니 말이야.

나 못됐지 그러다 한번 크게 동네 사람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지.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비상이 걸렸어

부부 싸움 하던 중 부인이 농약을 마신 거야.

당시 그 주위엔 자동차가 나밖엔 없었어 비록 화물차지만 말이야.

병원엘 가려면 차로도 25분은 가야 돼

동네 어른한 분이 오셔서 급히 병원에 가야 한다는 거지.

그동안은 왕따를 당해 왔는데 처음 부탁을 하시는 거야.

잘됐잖아. 이 기회를 삼아 내 잘못도 뉘우치고 서비스 한번

해보자 한 거야.

당직의사도 아는 사이였고 응급 치료 끝나고 다음날 새벽까지 산골을 몇 번씩

왕복하고 말이야.

동네에서 대우가 달라지더군

이틀 후 퇴원하는 것까지 도와주곤

피티를 한번 열었지

칠면조 파티를 말이야.

개울 건너 산너머까지 모두 모였지 어른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다.

실은 나도 그때까지 칠면조 고기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귀한 거였지

칠면조 몇 마리가 동네분들과 다리가 된 거야

그다음부터 우리 집엔 고구마, 감자, 오이, 고추, 가지,

끝이 없어

너무들 많이 가져와 다른 집에도 나누어줄 만큼 말이야.

그동안 이 착한 사람들과 친하지 못했던 내가 후회되더군

내가 조금만 노력했다면 하고 말이야.

죗값을 한다고 피해를 입었던 이웃에 칠면조를 나누어 드리기도

했어.

칠면조에게 벼이삭을 빼앗겼던 아저씨도

김 씨 내년부터는 내 아무 말 안 할 테니 놓아 키워

그놈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나 " 하시는 게야.

"내 칠면조 고기 김 씨 아니면 언제 먹어보나 하하하"

산골이나 전원주택이나 타지에 가서 살게 되면 주위분들과 유대가 상당히

중요해

그곳분 들을 잘 예우해 드려, 성심껏 말이야

사랑은 베풀면 더 큰 사랑으로 돼 돌아오는 거

모르고 지냈던 시절이었어

그 후 나도 그곳이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지.

그 칠면조 중엔 학교에 시집간 녀석들도 있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한참이나 쫓아와

되돌려 보내기 위해 지각도 하던 먼 옛이야기야

시골길에 이 녀석들 10여 마리가 때를 지어 돌아다니면

그것이 얼마나 평화로움을 느끼게 하는 줄 이해할 거야.

비록 논 밭에 엄청 피해를 주었지만 산골 아저씨들도

그때 이야기 하며 한없이 보따리를 푼단다.

요즘 어때 어렵지.

그래도 맑게 웃으며 지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