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시계 수리공으로의 전직을 꾀하게 된 건에 대해

10년 차 번역가가 AI를 피해 시계 속 톱니바퀴로 숨어든 사정

by 범어동

그간 잘 살았냐고 묻는다면 썩 그런 편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그런 중위권 대학교 입학부터 통번역대학원 진학 실패, 진학, 중퇴 등의 굵직한 인생 사건들을 나열한 것만 봐도 내 인생은 남들보다 다소 더디고 성취도 크지 않았다.


물론 번역가로서의 생활을 약 10년간 해보았고, 보람도 있었고 힘든 만큼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AI의 발전은 번역가로서의 삶을 다소 위태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위태롭다는 표현보다는 뿌리째 뒤흔들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나조차도 번역에 AI를 이용하기 시작한 판에 의뢰인들이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의뢰인들은 점차 번역 자체는 AI에 맡기고 AI의 결과물 감수만을 요청하는 제한적인 역할을 나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번역이 아닌 감수였기에 페이는 반의 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였기에 안정적인 수입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번역의 뜻을 접은 채 스타벅스 바리스타로의 전직을 시도했다. 정말 뜬금없었지만 왠지 스타벅스 바리스타는 AI에 대체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믿음은 키오스크라는 신문물이 스타벅스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면 산산조각이 날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그때의 나는 이를 고려하지 못할 만큼 나름 급박했다.


그런데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이 내 스타벅스 생활은 키오스크가 아닌 점장의 괴롭힘에 의해 끝나고 말았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글로 풀어보겠지만 점장은 정말 악랄한 사람이었다. 아무튼 스타벅스 생활의 실패 이후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며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내 무기력을 보다 못한 여자친구가 나에게 시계 수리를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평소 시계줄을 가는 기본적인 작업은 얼추 혼자 할 수 있었고, 움직이는 손목시계를 보며 멍을 때리는 일도 많았고, 무엇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시계로 뒤덮여 있던 것에 착안하여 시계 수리 배우기라는 제안을 한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당장 할 것이 없었고, AI에 절대 대체되지 않을 기술이라는 점, 이제는 하이엔드를 넘어 하나의 예술품이자 사치품 취급을 받는 시계 시장의 방향성, 육체노동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육체를 가지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나에게 시계 수리는 꽤나 괜찮은 직업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계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여자친구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시계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크게 세 곳이 있는데 나는 지금 소속되어 있는 국제시계연구원에서 배우는 것을 선택했다. 가장 정통성이 있었고, 원장님의 이력이 상당히 확실했으며, 국제시계연구원을 졸업한 선배들이 시계 수리업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인맥과 학연 등에 의해 번역계에서 나름 쓴 맛을 봤던 적이 있었기에 상술한 이유가 다소 크게 다가왔다.


실제로 국제시계연구원을 약 8주간 다녀봤는데 원장님께 구인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굵직한 명품 브랜드에 소속되어 있는 선배들이 원장님께 인사를 드린다며 찾아온 경우도 더러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시계 수리를 맡겼었던 동네 근처의 시계방 사장님조차도 국제시계연구원 출신이었으니 국제시계연구원의 영향력은 꽤나 상당한 듯싶었다. 현재 그 사장님 아니 선배님은 내가 거주하는 동네에서 꽤나 괜찮은 고정 고객층을 확보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소 부차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수강료가 절대 저렴한 편이 아니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에 준하는 수강료를 지불해야 했다. 거기에 시계 수리에 필요한 각종 공구와 부자재 및 연습용 시계를 사비로 마련해야 했다. 다행히도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도구를 마련한 적도 있고 알리 익스프레스를 통해 값싼 도구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솔직히 돈만 어느 정도 있으면 해결 가능한 부분이라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거는 내가 돈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나의 국제시계연구원 생활은 이제 8주 차에 접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좋은 동생과 선배들을 만나서 재밌게 잘 지내고 있다. 시계인들은 하나같이 극 I 성향에 남들과는 크게 부딪히려는 성격이 아니어서 사람으로부터의 스트레스도 없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도무지 늘지 않는 내 실력과 지옥철 1호선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앞으로는 시계 연구원에서의 일상과 실습 과정 등을 재미있게 풀어볼 예정이고, 이 글은 그에 앞서 전하는 서문과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브런치라는 새로운 플랫폼에서 국제시계연구원 생활 및 시계 수리공으로서의 전직 도전 과정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큰 기대가 된다. 인생의 태엽을 다시 감는 마음으로, 이곳에서의 째깍거리는 일상을 기록해보려 한다. 부디 이 무모한 전직의 서사를 너그럽게 지켜봐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