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수련생을 바라보는 거친 생각과 불안한 시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도 있고,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도 있다. 뭐가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주위 사람들 대부분은 배움에 무조건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고, 나의 시계 수련을 다소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내 나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겠지. 나이 30이 넘어서 그간 하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뜻을 품는 것이 사람들 보기에는 철이 없는 듯하다.
대체로 시계를 배운다고 하면 그게 돈이 되나, 취업은 되나, 스마트 워치가 판 치는 세상에 뭐 하는 짓이냐는 등의 소리를 듣고는 했다. 당장 나의 아버지조차도 시계에 대해 매우 문외한이기에 시계를 배운다고 하는 아들의 말에 매우 당황스러워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시계를 알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사는 예물 시계를 쿼츠로 마련하는 것을 꺼려한다. 뚝뚝 끊기는 쿼츠 특유의 초침 움직임을 싫어하거나 뒷뚜껑을 열었을 때 대놓고 보이는 배터리를 미관상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아무 생각 없이 90년대 당시 삼성 시계에서 나온 론진의 쿼츠 시계를 구입했다. 그냥 금시계라 구입한 것 같은데 아무튼간에 우리 아버지는 시계를 전혀 모른다.
유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편인 것 같다. 실제로 국제시계연구원에서 나와 같이 시계를 배우는 친구들도 시계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거나, 심지어는 수동과 자동 시계를 뭔지 모르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시계를 배운다는 나의 말에 아는 형 및 누나는 차라리 도배를 배워라, 뭐든 다른 기술을 배워라, 굴삭기 자격증을 따라 등등 조언을 가장한 잔소리를 해댔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시계를 배운다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통보였고 나는 내 인생 마음대로 한다며 대구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한 채 아버지가 있는 서울 집으로 향했다. 국제시계연구원이 종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다. 서울 및 수도권이 아니면 뭔가를 배울 수 조차 없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중이고 그 덕에 아버지의 참견과 잔소리, 나를 그저 식충이 취급하는 동생의 시선을 견디고 있다.
이렇듯 단순히 돈이 크게 되지 않을 것 같다거나 취업이 원활하지 않을 것 같다는 편견으로 인해 나는 가족에게조차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사실 브런치 및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명품 시계를 중심으로 아직도 성행하고 성장하고 있는 아날로그시계 시장 및 박성룡 원장님이라는 대단하신 분 휘하에서 배움으로써 시계 수리 분야에서 성골이 될 수 있는 큰 기회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주지 않은 채 그저 스마트 워치가 편한데, 누가 요즘 시계를 차 등의 생각과 말로 나를 비롯한 시계 수련생들을 무시하는 시선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현역에 계시는 시계 선배님들은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고 계시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지인 및 자식에게까지 시계 수리를 배우도록 한다. 시계 수리라는 분야가 죽어가는 중이고 무엇보다 돈을 만질 수 없다면 자기 자식에게 시계 수리를 배우도록 하겠는가. 얼마 전에는 29살의 선배가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었다. 무려 고3이라는 이른 나이에 시계 수리를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명품 브랜드 소속으로 홍콩으로의 1년짜리 연수를 앞두고 있는 분이었다. 조기 교육의 중요성과 대단함을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글을 차라리 쓰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이 시계 수리라는 분야를 계속 잘 모르고 무시하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괜히 멋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을 흐리거나 시계 기술을 통한 취업 경쟁이 힘겨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비롯한 시계 수련생들이 그저 철 없이 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하거나 별거 아닌 낭만을 좇는 사람들이라는 시선을 바꾸고 싶기에 앞으로도 계속 관련 글을 쓸 것 같다.
물론 시계 기술 수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의견을 보여준 분들도 있었다. 당장 내 여자친구가 나에게 먼저 시계 기술 수련을 제의했었고, 아는 지인도 기계식 시계는 단순히 기술이 아닌 예술의 영역이며 앞으로는 크게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응원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매우 소수인 것이 서글프기는 한데 그래도 있다는 게 어디인가.
아 빼먹고 적지 못할 뻔했는데 매일 같이 카페인 충전 잊지 말라며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막내 이모가 계셨다. 나를 향해 가장 큰 지지를 보내주는 2 대장 중 하나이다. 외람되지만 이모의 아들 즉, 사촌 동생이 이제 12살이 되는데 내가 하루빨리 원장님 휘하에서 잘 배운 다음에 좋은 시계 기술자가 되어 이 친구를 시계 기술의 분야로 끌어들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리고 조립하는 것을 매우 즐겨했기 때문인데 싹이 보인달까. 이 친구를 시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매우 좋은 글감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나는 약 10년간의 마스터플랜을 꿈꾸고 있다. 부디 이것이 그저 꿈으로만 끝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