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mm의 정밀함과 빨뚜 소주 사이의 괴리
시계 수리 기술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로 술을 멀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개가 똥을 끊지 혹은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라는 말과 같이 나는 관성적으로 술을 입에 대고 있다. 사실 국제시계연구원 등록 전에 찾아본 관련 유튜브 영상에서 어떤 시계 기술자가 자신은 손떨림 및 안구의 건강을 위해 술을 절대 입에도 안 댄다고 하길래 그럼 나도 술을 멀리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술을 안 먹으니까 너무 힘든 거다. 더군다나 가족들에게 나는 이제 시계를 해야 할 몸이니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외쳤는데, 이를 쉽게 저버리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남들보다 매우 일찍 등원한 어느 날, 원장님께 기술자는 술을 멀리해야 한다는데 그게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원장님은 무슨 소리냐며 기술자가 술을 더 마시는 법이라며 일갈하셨다. 어떤 놈이 그런 말을 하느냐며 엉터리라고 하셨는데, 시계 교육만 거진 50여 년에 매년 주최하시는 선후배 모임에서 대한민국의 시계 명장들을 불러 모으는 분께서 그런 말을 하신 이상 술을 멀리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일찌감치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 말인데, 등원 8주 차의 어느 날이었다. 전날부터 이상하게 소주가 계속 당겼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그래야지 라는 생각의 흐름은 어느새 저녁에 마셔야지 저녁에 마셔야지 아니 이왕 마실 거 그냥 낮에 가볍게 마셔야지라고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등원하자마자 동기에게 넌지시 오늘 점심 뭐 먹을래라고 물었고, 그래서는 안 됐지만 수업 내내 소주를 연신 말하며 나름의 가스라이팅을 시전 했다. 그 과정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02년생 아이까지 끌어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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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 사람은 홀리듯이 들어간 순댓국 집에서 순댓국 3개와 소주 1병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늘 먹던 대로 빨간 뚜껑의 참이슬을 시켰다가 두 사람에게 제지를 당하고 평범하게 프레시 한 병을 시켰다. 02년생 친구의 눈에는 객기 부리는 이상한 아재로 보였을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건 아버지의 탓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프레시를 먹인 적이 없다. 늘 빨간 뚜껑 참이슬을 강조했던 나름의 가정교육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이 들어간 덕분인지 우리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어떻게 국제시계연구원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 대학은 어디를 나왔는지, 혹은 졸업은 했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비롯해서 우리는 언제 어엿한 시계 기술자가 되어 취업을 할는지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 1병 총 3병을 깔끔하게 마시고 가게를 떠났다. 좋은 자리였다. 뭔가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도 생긴 것 같고, 다소 어리지만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친구들도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8주 차에는 술만 먹은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행운 및 요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는 했는데, 8주 차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디뎌보았다. 아버지는 한 결혼식에 참석한 후 감사 선물로 동전으로 긁는 즉석 복권 한 장을 받았는데, 해당 복권은 1천 원에 당첨되었다. 1천 원이 당첨된 경우 장당 1천 원의 복권으로 교환할 수 있는데 나는 이왕이면 좋은 곳에서 교환을 받아 보고 싶다는 마음에 학원 근처의 명당을 찾았다.
실제 이곳에서는 원장님의 지인이 로또 2등에 당첨되어 원장님께 장어를 배불리 베푸셨다는 썰이 있는 만큼,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명당에 방문해 겸허하게 천 원 당첨 복권을 내밀어 새로운 복권을 주십사 요청드렸다. 즉석 복권을 긁는대는 나름의 순서가 있다. 행운 번호를 먼저 긁어서 확인을 하고, 나머지 칸의 상단 부분 만을 살짝 긁어서 숫자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후 행운 숫자와 오른쪽 칸의 숫자 중 하나기 일치하는 경우 터지는 도파민을 주체하며 숫자 밑에 있는 당첨 금액을 확인하는 것이 마지막 절차이다.
위 사진과 같이 나는 행운 번호를 확인 후, 오른쪽 칸의 숫자들을 긁어보았는데 감사하게도 행운 번호 6과 오른쪽 칸의 6이 일치하고 말았다. 옆에 있던 동기는 1등 금액 5억 원을 외치며 오오 거리고 있었다. 잠시 그간 자금의 문제로 구입하지 못했던 스위스제 시계 공구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시계 공구 매장에 가서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는데, 당첨 금액은 다소 허무하게도 1천 원이었다. 사실상 한 번 더! 의 기회를 받은 셈이랄까. 동기와 나는 터지는 도파민을 주체하지 못한 채로 사장님께 한 장 더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가 알 듯이 꽝이었다. 당첨 엔딩으로 끝났으면 나는 이 글 대신 스위스제 시계 공구를 자랑하고 소개하는 글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 내 꿈은 다소 소박하다.
8주 차부터는 수업의 난이도가 급상승했다. 원장님은 분해, 세척, 주유와 같은 실습 위주의 수업 대신 매일 같이 1시간에 달하는 이론 수업을 실시하셨다. 다시 대학교에 갓 입학한 느낌이었다. 눈앞에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있는 게 약 10년 전의 그때와 똑같았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등록금 무서운지 모르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넘기고 술 마실 생각에 눈이 돌아있던 반면 지금은 막대한 수업료를 생각하며 이거 모르고 지나치면 난 죽는 거야 라는 생각으로 있다는 부분이다.
원장님은 나의 얼굴을 그대로 읽으셨다. 눈만 보셔도 아 애는 바보구나라는 점을 인지하셨던 것 같다. 그 뒤로 원장님은 내가 이해할 때까지 새로운 각도로 시계 구조의 그림을 그려가시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셨다. 이 과정에서 핀잔과 꾸지람은 있었지만 기분이 상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하나 걸리는 건 동기가 다가와서는 형 덕분에 설명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 점이었다. 이 놈 날로 먹고 있었다.
시계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분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손안에 작은 우주가 있는 것 같다. 전기 동력 등이 없이 쇳조각에 불과한 여러 조각들이 하나씩 돌아서 결국 하나의 주 동력원이 되고 이를 중심으로 4개의 차가 돌아서 24시간, 그리고 날짜, 밤과 낮 등을 표현한다. 실제로 무아지경으로 시계를 만지고 있다 보면 가끔은 우주를 관장하는 조물주가 된 듯한 느낌도 든다. 물론 지금의 나는 조물주보다는 파괴왕에 더 가깝다. 조물주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원장님을 비롯한 여러 선배와 명장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작은 부분까지 파고들며 열심히 배운다고는 하는데 아직은 말 그대로 기본반 소속인지라 더 알고 싶어도 가르쳐 주시지도 않고, 가르쳐 주신다고 해도 이를 알아먹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머지 더 심오한 부분은 심화반에서 진행하신다고 하는데 심화반의 수강료는 기본반의 수강료보다 다소 높다. 목숨 걸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감사한 부분은, 나에게 시계를 잘하기 위한 노력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게 적성에 맞는다면 맞는 것인데 묵묵히 앉아서 안되면 될 때까지 해나가고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이 싫지 않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다.
엘지 트윈스 팬이라서 꼭 그런 건 아닌데 엘지의 염경엽 감독이 책을 하나 냈다. 그 책에 따르면 어떤 경지에 오르기 위한 노력이 있다고 했을 때 그 노력이 매우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내하고 할 수 있는 경우 혹은 이 노력이 크게 고통스럽지 않고 즐거운 경우가 있다.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고 정진할 것인가 아니면 노력이 고통스럽지 않은 일을 찾을 것인가의 기로에서 나는 다행스럽게도 시계를 위한 노력이 고통이 아닌 즐거움인 것 같다. 이건 정말 감사한 부분이다. 번역할 때보다 더 재밌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위 사진은 소위 시계 청진기라 불리는 기기이다. 쉽게 말해서 시계가 하루에 어느 정도의 오차를 가지고 있는지, 진동수에 따라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등을 눈으로 확인하고 시계를 직접 다루면서 미세한 조정 작업을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이 기기 앞에 앉아서 시계 미세 조정을 하는데만 약 1시간 이상을 쓴 것 같다. 아무리 해도 그래프가 똑바로 예쁘게 잘 만들어지지가 않아서 꽤나 애먹었다. 그때 시계 청진기에서 들려오는 불규칙한 박동이 빗소리와 섞였다. 1시간째 핀셋을 쥐고 있는 손끝에 경련이 일었지만, 오침에 든 원장님의 고른 숨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자 묘한 평온이 찾아왔다. 어쩌면 시계를 고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오차를 수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랜 사투 끝에 그래프는 정직한 직선을 그려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비를 털어 마련한 나의 첫 연습용 시계는 너무 늙어 있었다. 마모된 부품은 비명을 지르듯 멈춰 섰고, 부품을 갈고닦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나는 그저 무력하게 핀셋을 내려놓을 뿐이었다.
시계의 심장이 멎는 순간을 지켜보며 돌아오는 길,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이 주는 찝찝함이 나를 둘러쌌다. 이 찝찝함을 다음 주 원장님이 주최한다는 회식에서의 소주 한 잔에 털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