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와 시계 기술 수련

민감한 사람을 위한 직업적 대피소

by 범어동

단순히 시계가 좋다거나 적성에 맞다거나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내 성향 자체가 시계 기술 및 이후의 작업 환경에 꽤나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계 기술을 배우기로 선택했다. 브런치라는 공간과 나름의 익명성을 빌렸기 때문에 밝힐 수 있는 거지만 나는 남들이 봐도 내가 봐도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HSP 성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성향으로 민감성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소음,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 냄새 등에 있어 매우 큰 민감성을 드러내고는 한다.


나는 나만의 개인적인 공간과 선을 중시한다. 그다지 개인적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기에 그럭저럭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대중교통을 타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나 승객의 밀도가 매우 높거나, 밑도 끝도 없이 떠들어대서 시끄럽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내 공간을 침범하는 것을 넘어 내 몸에 손이나 그들의 몸이라도 닿는 순간 미친 듯이 소름이 끼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이다. 원래는 이 정도로 민감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모든 것은 약 10년 전에 경기도 부천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부터 악화되었던 것 같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다가 갑작스레 기운 가세로 인해 경기도 부천의 구시가지에서 살게 되었고 그 탓에 난생처음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근처의 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난생처음 겪는 무례함과 무질서함에 매우 놀랐던 것 같다. 버스를 탈 때 줄을 서는 것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이며 그마저도 서로 먼저 타겠다고 밀다가 어느 순간 뒷문으로 얌체같이 탑승을 하고는 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선과 공간을 매번 침범당했던 것 같다. 왜 남의 몸을 밀치고 몸에 손을 자꾸 대는지 알 턱이 없던 까닭에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나중에는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러다 운 좋게 자리에 앉고 나면 그것도 문제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서 있는 기타 승객들은 가방 혹은 짐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의 짐이 나를 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이때부터 저소득 지역과 행동거지 및 매너에 대해 나름의 편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부천에서의 버스가 그냥 커피였다면 지하철 1호선은 T.O.P 그 자체였다. 이들에게는 일단 먼저 탑승해 있던 사람이 내리고 나중에 탄다는 개념이 잘 없다. 포켓몬 몸통 박치기 마냥 일단 몸을 욱여넣고 본다. 뭐든지 남들보다 먼저 해야 하고 남들보다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라도 들면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열차에 탑승하고 나면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나는 아직도 할머니와 아줌마, 심지어는 몇몇 중년 남성들까지 왜 당연한 듯이 임산부 좌석에 앉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짜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정말 머리에서 뚝딱뚝딱 소리 나게 쥐어박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고 나면 서 있는 나를 무지막지하게 밀치며 자리를 옮기는 어르신들이 있다. 왜 미는 건지 모르겠다. 죄송하다 혹은 잠시만이라는 말은 기대도 하지 않지만 적어도 피해서 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이후 운 좋게 자리라도 나면 그것은 그것대로 불편하다. 옆사람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고 다리를 쩍 벌리고 있거나, 마치 내 어깨는 광활해 라며 뽐내는 듯 어깨를 펼쳐서 옆사람의 공간을 그냥 침범한다. 누구는 어깨가 좁아터져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줄 아는지. 그리고 중국인들, 최악이다. 10년간 중국어 번역가로 살아왔고 중국에서 살아보기도 했고 평균적인 남들보다는 중국인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은 매번 새롭다. 그냥 종 자체가 다른 인간 같달까.


냄새는 기본이고, 시끄러운 전화 통화에 이어폰을 끼지 않고 틀어대는 중국어 콘텐츠까지. 무례에 관한 종합선물세트 그 자체인 족속이다. 그러다 불편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라도 하면 자기 때문에 그런 줄은 또 귀신같이 알고 엄청 노려본다.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은 살기 어린 눈빛이다.


어쩌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쓴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나는 나와 같은 매우 민감한 사람들에게 시계 기술을 추천하고자 이 글을 썼다. 민감한 사람들은 타인, 그것도 예측할 수 없는 타인에서 기인하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시계 기술 수련 및 이후의 삶은 타인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다소 줄여주거나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당장 기술 수련부터 보자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칸막이가 달린 1인 책상과 자리에서 아무런 방해 없이 교육 및 수련을 이어간다. 굳이 사람들과 쓸데없는 친분을 쌓거나 불필요한 대화를 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나만 잘하면 다 되는 일이기에 남들과 엮일 일이 잘 없다.


물론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인간관계 성립은 필요하다. 같은 수련생 및 원장님이 나중에 서로를 끌어주는 큰 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계 수련생들 대부분이 I 성향에 남들의 공간을 크게 침범하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오지랖도 부리지 않기에 이들과는 인간관계를 형성해도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나름의 안도감 마저 준다.


여기에 더해 취업 이후에도 시계 기술자들은 나름의 마이웨이를 지킬 수 있다. 하루에 정해진 시계 개수에 맞게 수리만 하면 언제든 퇴근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월급도 책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남 신경 안 쓰고 나만 잘하면 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근무 환경도 굉장히 쾌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로 침범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 두기가 완비되어 있는 자리 배치와 더불어, 몇몇 업장에서는 소리와 빛 마저 쾌적하다고 들었다. 이건 내가 직접 기술자로서 취업을 하고 나면 더 자세하게 소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그러지 못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시계 기술자로서 취업 혹은 창업을 하고, 이후 업장과 매우 근거리에 거처를 마련하면 출퇴근길의 말도 안 되는 인간들로부터의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매우 쾌적하게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 쓰다 보니 마치 국제시계연구원 원생 모집과 같은 글이 되어버렸는데, 혹시라도 이 글을 접하고 국제시계연구원을 찾는다면 원장님께 글을 봤다고 이야기해 주시길. 원장님께 커피 한 잔쯤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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