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초등학교 5학년 생활기록부를 보면 ‘성격이 차갑다’라고 쓰여있다. 보통의 어린이라면 슬퍼했겠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남에게만 차가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냉정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자화상 그리기 수업에서 미술 선생님이 말했었다. 일반적인 학생들은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미화해서 그리기 마련인데 너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고. 더 못나게 그리지도 더 잘나게 그리지도 않는다고. 나는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차가운 어린이는 냉정한 청소년이 되었다가 신랄한 성인이 되었다. 주변의 평판은 좋지 못했지만 내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나는 나에게 가장 엄격한 사람인데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있단 말인가?
MBTI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는 INTJ라는 분류 값을 얻었다.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성향. 나는 내 MBTI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합리적인 나의 이성이 내 인생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주위에 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내 날카로운 혀는 유일한 인간인 자신을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해진 나를 향한 논리적인 평가에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자신에게 가장 정 없는 인간이었던 나는 자신을 어떻게 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한없는 우울의 구덩이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몇 년을 내가 망가진 이유를 찾는 데 허비했다. 어느 날 우연히 나는 내가 겁에 질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 상황 속에서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장점인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는 것. 부정하지 않는 것. 나는 나 자신이 공정한 인간이라는 아집에 사로잡혀 자신을 부정하고 괴롭혔다. 누군가의 비난을 의식해 내가 먼저 나서서 나를 비하하기도 했다. 나의 이 오랜 습관들이 나를 망가트리고 밑바닥으로 처박은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나는 금방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자. 하지만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된 후로도 몇 년 동안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자. 좋은 점만 보자. 나는 남에게 하는 만큼 나에게 하는 인간이니까 타인의 장점을 찾고 칭찬하고 존중하다 보면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생각이지만 효과가 있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 위해 그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더 잘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 뜬금없는 칭찬을 해서 주변인들을 웃기기도 하지만 확실히 예전과는 주변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에 대해서는 아직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여전히 자기 비하가 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의식하지 않아도 사람의 좋은 점만 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에 대해서도. 나는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