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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Apr 14. 2020

몸 기둥뿌리 흔들리면 하체에 투자

- 넘어지고 일어서는, 도미노 게임의 앞잡이는 허벅지다! -


한때 내 몸에서 천대받은 부위는 허벅지였다. 잘 나고 못 나고를 떠나 얼굴 작고, 목 길고, 손목 발목은 여리 여리한데 그에 비해 허벅지는 눈치 없이 굵어서다. 아파서 곤혹 치른 곳도 허벅지다 보니 하는 짓도 밉상이다. 전기뱀장어가 기어가는 환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음에 미운 털 박힌 게 눈치 보였는지 그래도 허벅지 덕에 헬스장 구경했다. 병 주고 약 준다.


몸 반란 주동자는 허리인데(허리뼈 4-5번 공간이 없고 퇴행성이 심한) 지시받아 실행한 건 허벅지였다. 말리는 시누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허벅지의 앞면, 뒷면, 옆면을 통증으로 빈틈없이 채웠다. 삼면이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던 허벅지의 삼면. 면에 이어 사타구니 선이 선명할 정도로 통증을 전파시켰다. 통상 허벅지라 하면 무릎 위 넓적다리를 말하는데 그 영향력은 무릎 아래까지 뻗쳤다. 경치 좋은 둘레길도 아니고 종아리 둘레까지 통증이나 전염시키고 앉았다. 양측 허벅지 안쪽은 하지정맥류 수술로 칼로 그은 손톱자국까지 있다. 허벅지는 이래저래 정나미 떨어지는 장소였다.


허벅지는 도톰한 지방질도 많았다. 허벅지가 숭어로 보였는지 엉덩이는 망둥이를 자처했다. 살이 가장 많은 이 두 부위는 몸에서 차별대우를 받았다(그렇다고 나머지 부위가 퍽이나 잘 나서 예쁨 받은 건 아니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날 닮았다면 몸에 턱진 곳 없이 매끄럽게 곡선으로 내려갔을 텐데.”라며 “네 아버지 닮아 펑퍼짐한 거 아니겠느냐.”는 소리를 곧잘 했다. 지금 위로라고 하는 말인지, 본인 자랑인지, 하여간 옆집 자식 얘기하듯 했다. 운동하기 전까지 귀에 못 박히도록 쓸어 담은 이야기다(씁쓸하게도 지금은 역전이다. 엄마는 중앙집중형 몸, 나는 지방분권형 몸) 난 윗옷 사는 기준도 ‘폭이야 어떻든 길이만큼은 허벅지를 가려다오’였다. 




엄마에겐 칠십 넘은 지금까지 꾸준히 고수하는 일이 있다. 버스에서, 길에서, 계단에서...넘어지는 일이다. 최근에도 버스 안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물론 이번에는 기사가 버스에서 내리는 엄마를 보지 못하고 출발한 게 문제긴 했지만. 방어운전 힘도 없는지 엄마 엉덩이엔 주먹만 한 혈종(피가 모인 혹)이 자리했다. 엄마는 넘어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해가 한 번도 없었다. 연도별로 몸에 흔적을 남겼다. 엄마는 먹을 게 없던 시절엔 어지러워 픽픽 쓰러지고, 매끈한 허벅지가 중앙집권 배를 떠받치기 힘들어 넘어졌다. 삶과 어째 그리 맛이 같으냐며 밥을 제치고 뱃속에 먼저 입수한 술 때문에 또 넘어졌다. 


아이가 6학년 될 때까지 간혹 다리를 자르고 싶은 감각도 느꼈지만 탁구도 가르치고 배드민턴, 포켓볼, 축구, 야구, 보드게임 등등을 함께 했다. 그 당시 나의 금지구역 자세는 바닥에 앉기, 경사진 곳 걷기, 옆으로 눕기, 한 자세 오래 유지하기였다. 게임할 땐 양반다리 자세에, 스포츠 경기에선 장시간 선 자세에 몸은 경고음을 울렸다. 엄마의 여기저기 아프다 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내 입에선 “아프다” 소리가 금지어였다. 말이 금지되니 얼굴이 인상파 화가가 된다. 몸은 마음에 그리고, 마음은 얼굴에 그렸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 통증, 논개처럼 끌어안고 세월에 뛰어 들지 뭐.’ 독백만이 반복재생 되었다.   


넘어지는 건 엄마만의 일이 아니었다. 넘어지는 원인도 뼈와 근육만의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알코올 기운에 가려져 몰랐는데 절뚝대는 다리로 넘어지고 있었다. 오빠(내가 데리고 사는 질녀의 아버지)는 파리가 단골손님인 가게 빚더미로 우울증에 넘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뼈 근육에 정신 팔린 사이 심장, 갑상선, 고혈압 등등이 더 들러붙었다. 질녀는 질풍노도를 과대 광고하듯이 티내고 있었다. 아이는 전학이 부른 틱 장애와 비만, 대인기피로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아빠와는 물리적 거리와 내면의 거리가 비슷해지면서 내 마음도 돌부리에 넘어졌다. 나를 포함해 도미노를 다시 일으켜 세울 사람은 오로지 나였다.              


이들에게 부목도 되어야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의 아픔을 보면 신경이 곤두서고 덩달아 아파진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인간이다. 내 아이에게 대물림은 안 되겠다 싶어 마흔 하나에 헬스장에 입성했다. 해외라도 나간 것 마냥 ‘스쿼트’란 말부터 배웠다. 무료로 PT 받을 땐 찍소리 않고 따라하더니 내 돈 주고 등록하고는 “네? 뭐요? 스커트요? 정식 명칭이 뭐라고요?”라고 할 말 다 했던 그 스!쿼!트!. 이 운동으로 개장식을 거행했다. 




엉덩이 빼고 아래로 내려갈 땐 척추협착증과 틀어진 골반으로 어르신이 지팡이 짚고 가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때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면 카메라가 흔들린 걸로 착각했을 게다. 질병 탓만 할 것도 아니다. 사십 평생 허벅지에 살만 들어찼는데도 살만 했던 모양이다. 위로 일어설 땐 허벅지가 제 힘 쓸 생각은 않고 주변 근육에 손 벌렸다. 고작 몇 개 하는데도 진 땀 나는데 PT선생님은 양쪽이 짝짝이 아니냐며 거울 좀 봐보라는 핀잔을 했다. 진땀이 한 땀 한 땀 가세했다. 외면했던 거울 속 나를 살펴보니 답답하다는 억양이 이해되었다. 측면으로 비스듬히 틀은 졸업사진 꼴이니. 거울을 보지 않았다면 제법 잘하는 줄 알았을 게다.   


부끄러움 많고, 앙증맞은 간 크기에 PT를 배우는 것도 어딘가. 거울과 마주한 그날 이후 비용과 실력에 뽕 뽑기 전략이 가동되었다. 틈만 나면 아코디언 연주하듯이 위아래 오르내리며 스쿼트를 연습했다. 복습하기 싫어도 다리 저린 신호가 오면 발딱 일어나 허벅지와 엉덩이의 합주가 시작되었다. 


허벅지에 싹을 틔우고 이젠 엉덩이에 꽃 피우는 스쿼트를 한다. 엉덩이를 바닥까지 늘리는 동작이다. 밭에 쪼그리고 앉아 일하던 어머니들이 근육 의식하고 그대로 일어섰다 생각하면 된다. 이 자세는 엉덩이 근육은 물론, 평소에 내가 어떻게 걸었는지, 발바닥이 나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었는지 자세까지 감지할 수 있다. 틀어진 골반도 교정할 겸 허벅지와 엉덩이 두 마리 토끼도 잡을 겸 해서 런지 운동도 한다. 이 동작은 한쪽 다리는 기역, 다른 쪽 다리는 니은 상태로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다. 


런지는 여성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골고루 섭취 중이다. 의자 위에 다리 하나 올려놓기도, 트위스트로 상체를 비틀기도, 물건 들고 발레리나처럼 다리 하나 치켜 올리기도,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한다. 옷 속으로 숨던 엉덩이와 허벅지가 이제 얼굴을 과감히 드러낸다. 허벅지와 엉덩이에 넘어지지 않을 백신 맞은 격이다.


이런 운동 원리로 근육 자극 맛을 본 후로는 땅에 떨어진 거 줍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허리 이하에 놓인 물건을 들 땐 손으로 드는 건지 허벅지로 드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하체도구를 다양하게 쓰고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이 원리를 알았다면 흘리고 쏟고 엎지르고 어질러도 세상 부드러운 엄마가 되었을 텐데, 이제라도 성격 개조되어 다행이다. 허벅지가 아프다고 그 한 곳만 쳐다봤다. 반대급부인 엉덩이 힘까지 기르니 몸 전체를 중심 잡는다. 몸 뿐 아니라 삶에서도 중심지다. 


잘 나가는 자식만 바라보거나 심하게 아픈 자식만 신경 쓰면 멀쩡했던 자식도 요상해지는 수가 있다. 우리 몸의 근육이 그렇다. 허벅지 하나만 뜯어 고칠 생각을 했다면 임시방편 마사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반대급부를 보고 이면까지 헤아려야 중심이 잡힌다. 하체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참으로 크다.  


아이 앞에서 아파도 멀쩡한 척 했던 허벅지가 돌덩이 꿀벅지가 되었으니 멀쩡하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우리 엄마도, 그 누구도 넘어지면 받쳐 줄 몸을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엉덩이로 방아 찧는 일 없이 세상에 고갯방아 찧었으면 좋겠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이웃 근육들도, 내 삶 근육도 먹여 살리는 터줏대감이다. 왜 운동의 1번 타자가 하체인지, 몸의 장손 역할을 하는 건지 살면서 두고두고 느낀다.


허벅지와 엉덩이에 돈 묻어 놓았으니 뽕은 뽑은 셈이다. 뽕이 뭐야, 통증 없이 종일 앉아 근무하고 퇴근해 이렇게 글도 쓰니 이자까지 챙겼다.  이젠 편애 않고 내 몸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허벅지가 날 살렸다. 효녀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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