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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Oct 24. 2023

감으로 감 잡는 집

지난 주 평일 아부지는 대천에 다녀오셨다. 혼자 되신 외삼촌(엄마 오빠)의 식사라도 챙겨 드리려고 해마다 간간히 드나드셨다. 농사 짓는 시골인지라 빈 손으로 갔다가 양 손으로 올라오신다. 때가 때이니 만큼 감을 따 오셨다. 당일치기를 박으로 연장하면서까지.

아침식사가 과일인 나로서는 제철 소식이다. 엄마 입에서 "임신 했을 때 감이 그리 먹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부지도 아침은 과일식이다. 감이 대천에서 상경 한지 몇 날 몇 일이 흘렀는데 나만 서리하듯이 쏙쏙 빼 먹고 있었다. ​​


감 딴 게 아까워서, 그 노고를 생각하자니 아까워서 쟁반 위 골동품이 된 걸까. 두 분은 어제가 되서야 드디어 감 맛을 보셨다. 그것도 2개씩이나. 자식 생각 하느라 꽁꽁 아낀 것 같진 않고 감색으로 물들은 표정을 보니... 아, 감 잡았다.


시어머니 보기 싫어 시금치를 안 먹듯 영감 보기 싫어 감을 안 드신 건 아닌지. 감에 벌레 파먹듯 아부지가 친정식구 흠을 했다면 그랬을 수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오(5)감으로 근력운동 하는 엄마, 육(6)감으로 걷기운동 하는 아빠, 눈치 11단으로 감 잡숫는 두 분을 '지금 여기'에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지.


맛이 떫은 감도 익을수록 단맛이 난다. 엄마 마음도 이제 단맛이 돈 걸까.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50년 넘게 살았으니 이제라도 서로에게 단감 하나 더 건네려는 기다림이었을 게다. 오늘 회사에서 점심을 함께 한 분이 20대에 결혼해 100세 시대까지 산다면 70년 이상 사는 거니 형벌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지만.


감은 비타민 A, B, C가 풍부하고 기침, 기관지, 심혈관계에 좋은 식품으로 유명하다(백과사전). 고혈압인 아부지 본인, 심장질환자 엄마, 갑작스런 감기가 찾아온 수험생, 아침저녁으로 기침 하는 질녀. 때마침 제때에 나타난 감. 그 김에 감 잡은 아부지 카톡을 다시 열었다. 아부지 걸음과 오감놀이에 더 무르익는 가을이길.




< 아부지에게 받은 카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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