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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n 29. 2024

감사의 글

책 서문이나 맺음말을 보면 감사했던 사람들이 나온다. 어쩌면 내가 편안할 때 받은 선물보다 힘들 때 받은 한마디가 더 감사할 수 있겠다. 책 한 권 쓰는 것도 불편함이 따르는 일이기에 수면 위로 감사얼굴들이 떠오를 것이다.

발길 닿는 곳, 마음 닿는 곳


'쉰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인사부에는 미리 알렸다. 내 자리의 인력 확보를 위해서. 부서에도 하루라도 일찍 알리는 게 덜 민폐인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자식 젖 뗄 때 만큼이나 힘들었다. 출근해서 입 뻥긋 못하고 돌아오곤 했다. 말 할 날을 허탕 치니 '더 아플 때도 다녔는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어려서 교통사고를 당한 후 한동안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가면 리어카만 봐도 도망을 쳤다고 한다. 이젠 '의자 공포증'이 생겼다. 내리 앉아야 할 자리는 그야말로 '가시' 방석이다. 그 공포심이 방아쇠가 되었다.

밤의 친구


부장님, 동료 팀장, 위원장님과 위원님, 직원들, 본부장님께 내면을 꺼냈다(본부장님은 일주일 사무실에 안 계셔서 문자를 먼저 드렸다). 준비물이라곤 미움받을 용기와 심호흡만 지참한 채. 


"작년 10월부터 제가 좀 아팠어요(고관절). 빨리 낫고 싶어 여기저기 여러군데 다녔는데 더 퍼지고 의자에 앉는 게 힘이 드네요. 정신까지 지배 당해 부정적인 생각과 조급증도 생기고 성격도 예민해져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몸과 정신을 점검해야 할 것 같아요.

자궁외임신을 했어도 현지조사 마지막 기관까지 마무리 했고, 갈비뼈가 부러져도 기자님들과 출장을 다녔고, 인대파열로 깁스를 해도 사무실을 나왔는데요. 부모님 건강과 아이들 생각해 제가 무너지면 안 될 것 같아요. 계획 수립된 6월말까지 마무리 짓고 후임자 발령과 팀장 승진 티오 고려해 휴직 들어가겠습니다





"감사원 감사까지 받느라 애썼다(아직 ING), 몸이 허락하는 만큼 연가는 충분히 사용해라. 더 단단해진 이팀장으로 돌아오라"는 본부장님,


"마지막 위원회까지 마무리 지어줘서 고맙다, 막상 못 본다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몸이 우선이니 잘 회복하고 다시 만나자"는 부장님,


"일이 우선이냐 몸이 우선이지. 그만 의자에서 일어나 MRI라도 찍고 와라. 사람이 다 죽어가는데 뭔 소용. 그동안 제대로 진단도 못 받은 것 같다"는 위원장님,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몸이 불편한 데도 끝까지 미소 잃지 않고 애쓰셨습니다. 죽는 것보다 더 힘든게 고통이에요. 팀장님 아프지 마세요. 팀장님 몸이 우선이에요."라는 직원들,     


"MRI상 L4-5번은 협착이 심해 워낙 기능을 못하고 디스크가 두 군데 밀려 나왔네요. L4-5와 L3-4. 앉아 있으면 상체 무게 4배가 눌러 아플 거에요. 뼈를 되돌릴 순 없으니 하루 2시간 이상 틈 나는대로 걸으셔야겠어요."라는 위원님...



쉰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남은 한 달 어찌 보내나 걱정 했었다. 헌데...

일 안 하고 내빼는 인간 뭐 이쁘다고 위원장님, 부장님, 직원들에게 밥(차) 얻어 먹고 선물도 받고 괴물 몸으로 꼭 돌아오라는 응원까지 받았다. 욕이라도 달게 먹어야 할 것을 밥이라도 먹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가만보니 내가 날를 가장 미워했다. 내가 나를 욕하고 얕잡아 보고 무시했다. 소개팅 한 상대 마음을 알게 된 기분이다. 


운동화를 신기까지가 힘들지 막상 신으면 운동은 절로 된다. 말이란 것도 꺼내기까지가 어렵지 댐이 한 번 개방되니 물솟음 쳤다. 나라는 인간, 부실공사가 많아 일으켜 세울 게 참 많다. 건축학과는 아들이 갈 게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곳. 튼튼하게 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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