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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l 01. 2024

목욕

바깥 풍경이나 몸속 풍경이나

1.

어젠 비가 쏟아지기 전에 걸었다. 버스로 치면 네다섯 정거장이다. 하루 두 시간이상 걸으라는 처방은 잘도 지킨다(몽롱함, 알딸딸을 조장하는 신경병증성 진통제를 처방한 의사 말은 안 지키면서). 1시간 걸으니 몸에서 보슬비가 내렸다. 구슬땀으로 시원하게 샤워했다.


2.

엄마의 낙은 목욕탕이다. 여행지보다 설레는 곳이 대중목욕탕이다. 피부가 워낙 건조한데 나이듦이 더 부추긴다. 하얗게 일어나는 꼴을 못 본다(손톱 긴 걸 못 참는 나처럼). 대중목욕탕은 정례행사다. 몰래 갔더라도 거실 창가를 보면 다 안다. 일광욕 하는 이태리타월로.


3.

거실에서 잠을 잔다. 잠들기 직전 블라인드를 내린다. 야경을 눈에 한껏 담아 눈을 감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하는 일은 블라인드를 올리는 일이다. 거실 무대의 막을 올리며 깜짝 놀랐다. 나무들이 '목욕재계'하고 기다리는 통에. '허무'라는 감정 때도 씻겨 내려갔다. 


이태리타월로 씻은 듯한 나무들. 보정 없이 흐림 그대로



'씻은 듯이 나았다'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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