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感) 알아차림
밤새 잠을 설쳤다. 내가 깔고 자는 매트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감 한 소쿠리, 동쪽으로 감 한 소쿠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대천 외삼촌(울 엄마 오빠) 댁에 다녀오셨다. 감나무에서 감을 잔뜩 따 오셨다. 김치 담그는 소쿠리에 담아 놓으셨다. 공교롭게도 내가 잘 때 이 몸 뉘는 곳 테두리에 소쿠리가 놓였다. 외삼촌 혼자 시골집에 사시기에 이따금씩 아버지는 시골에 얼굴을 내비친다(아침마다 먹는 감 떨어질 때 맞춰 다녀오신거 아니냐고 농담 했지만).
자다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할 때마다 실눈 사이로 감이 들어왔다. 단단한 놈과 어우러진 홍시. 아, 눈에 밟힌다. 아침이 기다려진다. 지난 여름은 옥수수로 행복한 한 철을 보냈었지. 아, 가을은 이제 '감'인 건가. 주황빛 채도가 찬란하게 빛나는 감. 아버지는 감으로 나 <다녀'감'> 도장을 이리도 확실히 찍어 놓았다. 영감으로 사는 아버지는 역시 'Young감'!
날이 밝았다. 위장이 무장해제 되는 시간 7AM. 단단한 감과 홍시로 변한 감 2개를 폭풍 흡입했다. 승부를 가를 수 없는 맛. 얼마 전까지 시장에서 샀던 감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맛. 매슬로우 5단계가 아닌 오로지 1단계 욕구만 존재하는 듯 한, 아니 1단계가 곧 5단계인 순간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데 일하지 않는 자 더 특출나셨다. 하긴 회사에서도 점심 약속이 있는 날 상대에게 늘 먼저 쪽지를 보내곤 했다. '출근 댓바람부터 날려 뭣 하지만 0시0분까지 00에서 보자'고.
감의 감칠 맛은 또 다른 '감(感)'을 불러일으켰다. 몸 전체가 주황 빛으로 물들었다고나 할까. 내 속도 홍시로 영글어가는 느낌이랄까. 감으로 감사한 아침이다. 감격에 겨워 생각지 않은, 계획에도 없던 글을 쓰고 있다. 글이 쓰고 싶어 걷게 되고 걸으니 또 몸이 편안하다. 1석2조도 아닌 도대체 1석 몇 조인 건가.
설렐 일이 없는 게 문제지
잠을 설치는 건 문제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