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순례길 완주?
2025년, 천주교에서는 희년이다. 희년의 기도에서는 '순례자'가 등장한다. 우연찮게(?) 산티아고 순례자가 되었다. "날씨가 이상해", "왜 가을은 없는 걸까" 라고들 한다. 제대로 된 가을, 2025년 찐 가을을 산티아고에서 만났다. 등산과 트레킹은 옆집 이야기였다. 그런 내가 몸에 이상 하나 없이, 아니 더 튼튼해져서 '산티아고 데 콤보스텔라' 800km를 완주 했다. 일상에서 긁어 모은 운동(일명 '의식주 운동')은 가히 놀라웠다. 그보다 더 한 자연의 힘이 있었으니.
"할 말은 많은데 쓸 말이 없다" 산티아고에 다녀온 후 튀어나온 말이다. 2주가 흘렀는데 그곳에서 느낀 '자연의 힘'에 여태 몽환 속이다.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고 표현 할 방도가 없다. '고요함'이란 게 뭔지 자연은 제대로 가르쳤다. 마치 별만 보던 사람이 까만 하늘을 발견한 듯.
자연의 힘이 나를 이끌었다. 800km를 어려움 없이 걸었다. 오히려 떠나기 전이 더 고역이었다. 발가락 물집 터져 물이 질질 흐르고 까뒤집어지고 무지외반에 무릎, 고관절이 삐그덕 난리 부르스였으니.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한 건가. 떠나기 직전 관절과 발 문제는 하루 평균 4만보를 걸으면서 씻은 듯이 나았다. 경탄해 마지 않는 자연으로 스며들었다. 자연은 하늘이 창조했음을, 하늘이 날 이끌었음을 느꼈다.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입으로만 형식적으로 내뱉던 신앙고백 기도문이 툭 튀어 나왔다.
산티아고 가기 직전 법원에 개명 신청을 했다. 통상 2-3개월 걸린다 해 다녀와서 결과를 받아보려 했다. 한창 산티아고 길을 걷는데, 안그래도 사방천지 풀에 감탄하던 터에 한 달 만에 개명 등본 확정 톡이 왔다. 돌아와 과태료 물기 전에 처리하느라 분주 했다. 풀 사진을 들입다 찍고는 사진 정리가 서툴러 분주함을 보탰다.
이지(芝): 풀로 나아감
순례 도보 첫 날부터 '이야, 우와, 히야..' 입 밖으로 빵빠레가 울려 퍼졌다. 꿈이야 생시야가 입버릇이었다. 어찌 이런 자연이 세상에 존재할까. 자연 첫사랑에 빠진 건지, 여행 초보자라 그런 건지. 풀 보고 사족을 못 쓰니 이름 값(芝) 제대로 했다.
마라톤과 트래킹에 단련된 50대-70대를 봤다. 그들처럼 길고 나는 걸음은 아니어도, 베낭이 가끔 약점(고관절, 허리, 무릎)을 짓눌러도 자연 앞에서 그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 그 따윈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이런 자연을 혼자 누리는 게 사치 같았다. 걷는 중에도.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몸의 불편함보다 마음의 짐이랄까. 나 혼자만 호강하는 느낌. 이따금씩 '순례자 맞나?' 돌다리를 두드렸다. 그만큼 자연에게 거저 받은 게 많았다. 눈물이 터져나올 만큼.
순례자(巡禮者)의 '례'자도 예의를 뜻한다. 시간, 건강, 돈...에 발목 잡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연을 배달해야 할 것 같다. 받은 건 되돌려 주는 게 예의.
32일 800km, 자연이 건넨 말 외에도 길이 내게 던진 메시지, 그밖의 정보가 있으면 녹여 보자. 길, 까미노 화살표는 정작 '나'를 '나'로 보도록 안내 했다. 화살기도처럼. 길은 곧 나를 증명하는 도구였다.
자아 발견 중 하나는 '좋은 건 함께 느끼고픈 욕구가 절절(간절+절실)한 사람'이라는 것. 사진이, 그것도 서투른 사진이 풍경을 다 담아내지 못하지만, 더군다나 내가 보지 못한 장면이 우주일 테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조각이라도 나누고자 한다. 몸 맘 삶을 움직이는 주동자로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임이 틀림 없었다.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 나대로' 살면 되었다.
보랏빛 하늘, 심금을 울리는 종소리, 불구덩이 일출, 새벽 빛 오리온, 동물 털 같은 노란 풀... 간신히 몽환에서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려니 또 설렌다.
부디, '산티아고 글'도 완주 하기를 바란다.
제발, (뜸 했던) '브런치 순례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