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으로 걷다
26km, 어느 순간부터 30대가 20대를 바라보듯이 20km대는 우습게 보는 자만심이 생겼다. 그런 오만함으로 하루를 열었다. 이 곳에 오기 전에는 20km, 40여일이라는 숫자가 내게 커다란 산맥이었다. 하루 20km를 걸어본 적도 없고 해외 경험이라곤 해외출장 7박이 최장이라 불안, 초조감이 심했던 내가 어제까지 270km를 걸었다. 순례길 3분의1, 인생길 2분의1 지점에 서니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되었다.
살면서 절실히 느낀, 명백한 사실 하나가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人)'생이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는 사실이다. 만만히 봤다가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앞에 숨이 턱턱 막히는 오르막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머리를 '백지화' 해 '몸'으로 채우겠다는 일념으로 사전 정보는 현장에서도 차단시켰다. '렛잇비'로 일관 하다가 '무방비'로 뒤통수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어제 1시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 몸에 원망의 때가 끼기 시작했다. 본래 체력 좋은 사람인데, 어젯밤 환경 탓에 이렇게 무너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기가 막히고 가슴이 턱턱 막히는 상황은 내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을 죄다 막았다. 코가 막히고 귀와 목은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몰려왔다. 가래까지 끓어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급경사 오르막에 숨까지 차오르니, 열린 입은 목구멍을 더욱 바짝 말렸다.
역설적으로 가장 힘든 오르막에서는 두 다리가 가속 페달을 밟았다. 남이 보면 오르막 최강자 같지만, 속도가 쳐질수록 내 뒤에서 가방을 잡아끄는 느낌은 걷잡을 수 없었다. 좁은 보폭으로 땅만 보고 갔다. 평지에 유리한 긴 다리의 서양 사람과 달리, 짧은 다리를 가진 한국인으로서 좁은 보폭은 오히려 유리하지 않은가! 땅이 부드러워도 모자랄 판에, 자갈, 그것도 아주 큼지막한 돌밭이었다. 돌 씹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힘이 들어 휴대폰은 가방 속에 쳐박아 단잠 재웠다.
그때 산 속 메아리처럼 "헬로우, 굳모닝, 이지"의 하이 톤이 들렸다. 어제 길 잃고 처음 만난, 피자와 빵을 허겁지겁 받아먹던 22세 호주 청년이었다. 어제 내게 20대인 줄 알았다고까지 말해 준, 한껏 내게 동공을 들이밀던 그에게 난 '누구였더라'로 오십 언저리다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일단 사람이든, 이름이든 "씨유 레이터!“를 고했다.
다 올라오니 내가 밟고 올라온 자갈을 한데 모은 것 같은 돌무더기에 십자가가 꽂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십자가와 태양은 어젯밤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고, 몸이 불편하다고 투정부리는 나를 묵묵히 감싸 안았다. 누군가는 이 길이 마지막이었을 텐데. 오르막도 끝났는데 눈앞에 펼쳐진 안개는 내 정신 상태를 비추는 듯했다. 자연이 그닥 예뻐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퇴장하고 구름이 나타나자 기분도 걷혔다. 구름은 중절모를 쓰기도, 열차처럼 줄을 잇기도 했다. 모양은 제각각이라도 구름 모두 땅 가까이 내려와 주었다. 갈림길이 나왔다. 비야푸리아(Villafria)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도 해와 다를 바가 없다며 오늘도 해바라기 밭이 나타났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사람과 달리, 때와 장소마다 다른 모습으로 연출되는 해바라기 덕분에 마음도 미세하게 풀렸다. 딸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는 아버지처럼 비포장도로는 포장도로로 바통을 넘겼다. 오늘 목적지인 대도시 <부르고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대감을 주는 찻길이었다.
내가 이래서 '희망'과 '기대'를 차별하는 것이다. 기대는 실망과 친하다. 찻길이 나왔어도 대도시 진입까지 한참 더 갔다. 부르고스 표지판이 너무 일찍 등장 했다. 좀 더 뒤에 세워두길! 부르고스 신시가지 교차로에 맥도널드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길 건너에는 버거킹까지. 배도 고파 반갑지만 산토도밍고에서 먹은 스페인 햄버거를 잊을 수가 없어 도도하게 모르는 척 했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파는 햄버거는 얼마나 더 대단할까.
한창 뜨거운 시간대라 문을 연 바와 햄버거를 파는 바의 교집합을 찾아 나섰다. 시내를 걷다가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꽤 모여 있는 바를 들어갔다. 치킨버거는 없었다. 베이컨과 고기를 멀리 하던 틀이 깨지는 순간.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게 순례자로서 의미가 있으니 일단 시켰다. 산토도밍고 햄버거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철학으로 뻣뻣한 고기와 팍팍한 빵을 남김없이 욱여넣었다. 실망스러운 잔상이 싫어 시내 한복판 마트를 들어가 1유로 단백바를 한 주먹 집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맥도널드'야말로 실패는 고사하고 '밀' 자체가 달라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 한다.
<부르고스>는 중세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박물관이 열 군데나 있고 스페인 북부의 문화의 도시,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도시이자 고대 교회 수녀원이 많은 역사의 도시라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부르고스 대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짓는 데 3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산티아고 대성당보다 감동이라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지금 몸 상태로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붙박이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밤에 또 못 잘까 싶어, 내가 이 곳을 또 언제 올까 싶어 마요르 광장으로 나갔다.
부르고스 대성당의 2시간 무료 개방시간을 놓칠 수 없었다. 대도시의 화려함보다 대성당 건축에 압도되어 들것에 실려 온 사람을 벌떡 일으킨 성경 이야기가 믿길 정도였다. 다 죽어가던 몸이 어떻게 성당 문 개방 직전, 순례자건 관광객이건 행렬이 늘어지기 직전, 순식간에 재충전되어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단 말인가. 나 자신도 놀랐다. 이제까지 '안 되겠다', '못 하겠다'는 진실이 아니었던 것. 심지어 내 입가에 미소까지 번졌다. '우와', '이야' 소리가 쩝쩝거리고 먹는 사람처럼 경박스러울 만큼 연거푸 터져 나왔다. 광장 한복판에 지친 순례자가 앉아 쉬고 있는 철제 동상이 있는데, 그의 곁에 앉아 오늘 하루 묵은 때를 다 벗어 던지고 시름도 내려놓았다. 장거리 배낭에 짓눌려 왼쪽 허리와 고관절에 통증이 나타났지만 그 또한 의식에서 퇴출시켰다.
내 성향은 시골길이라고 주장하던 터에 광장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면서 보물을 하나 건졌다. 남들은 부르고스 기념 옷을 사는 판에 난 이어폰을 샀다(7유로). 남에게 예쁘게 보이기보단 남의 소리를 듣지 않는 편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일 테니까. 귓구멍이 가렵기만 했던 귀마개는 썩 물러가고, 숙면 유튜브 소리로 귀를 막는 이어폰 시대가 도래했다. 내일은 낭랑한 눈망울과 선명한 두개골로 새아침을 맞으리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알베르게 창문 밖을 내려다보며 히죽거렸다. 골목 위 전기줄에 매달린 만국기마저 오늘밤 꿀잠 여정으로 안내하는 이정표 같았다. 잘 준비를 할 즈음 부르고스는 낮과 다른 옷을 걸쳤다. 같은 장소라도 해와 달, 누가 비추느냐에 따라 풍경이 이토록 다른데 하물며 인간의 마음은 오죽이나.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하루, 생각이 없었기에 '뜻밖'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지 않았던가. 이 곳에서 자연과 지내다 보니 눈 깜짝할 새 시간이 흘렀다. 인생은 뭐에 빠져 살다가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을 맞이하려나. 그저 '무념무상', 오만가지 생각으로 삼천포에 빠지느니 생각 없이 걷다가 몽환을 만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