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에서 온타나스, 눈의 물이 아닌 온몸의 액체

눈물로 걷다

by 푸시퀸 이지

어제는 잠이 들기까지 그토록 설렐 수가 없었다. 코골이와 이갈이의 방패막인 이어폰을 장착했기에. 유튜브에 잠 잘 오는 음악을 플레이했다. 침대 2층에서 잤는데 침대가 끼리끼리 붙은 상태라 바로 옆 침대 2층 남성에게 이어폰 소리가 들릴까봐 은근히 신경이 쓰였던 것과 음악이다 보니 간간이 연주를 듣고 있던 점을 빼고는 얼추 숙면 성공이었다. 그 남성은 생전 묻지 않던 인사를 내게 건넸다. 밤새 잘 잤느냐고. 이어 전하는 그의 말은 자아성찰과 겸손으로 하루를 열게 했다. "댁도 코를 고시던데요!"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밤새 못 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잔거? 제 탓이오 제 탓이오. 까미노 출발지도 부르고스 대성당이었다.


오늘은 부르고스에서 온타나스라는 마을까지 30.8km 구간이다. 30km가 넘는 것도 넘는 거지만, 변화구 없는 끝없는 밀밭인 '메세타 고원'의 개막식과도 같은 지점이다. 내 키만 한 보폭을 가진 성당 사이 골목을, 거룩하게 비추는 황금 등을 뚫고 계단에 힘차게 올랐다. 부르고스대학교 분위기를 느끼며 고가 다리 두 개를 넘어 10km를 걷고서야 첫 바(Bar)가 등장했다(타르다호스). 차도녀처럼 도시를 쌩쌩 지나 한참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었다. 나의 등판에 온전히 기댄 배낭도 오늘은 난로가 되지 못했다. 바는 야외 테이블에 비닐하우스처럼 주황빛 천막을 드리웠고, 내부 가운데는 에펠탑 모양의 전기난로가 있었다. 어제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막혔던 호흡기계 기능이 아직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에스프레소로 몸을 데웠다. 또르띠야는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아침밥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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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를 살짝 걸치고 칼레 스타 마리나 마을을 지나 얕은 오르막과 골목을 벗어나니 작은 성당(라 베가 데 라스 칼사다스 성당)이 나왔다. 성당은 크기와 달리 고요 속 웅장함이 있었다. 성당 안으로 한 발짝 내밀었을 때 <아베 마리아> 음악이 나를 에워쌌다. 작은 키의 주름살을 밀어낸 미소로 수녀님이 일일이 순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이하고 계셨다. 성당 안 음악부터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마법에 걸린 듯했는데, 수녀님 앞에 서니 심장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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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한국말로 "이름이 뭐예요?" 하셨다. 수녀님 눈동자는 '다 안다'고 말하고 있었다. "에메렌시아나예요." 내 머리에 손을 얹는 순간 어금니를 죽을 만큼 물어야 했다. 눈에서 나오는 물이 '눈물'인 줄 알았는데, 온몸으로도 흔들릴 수 있는 게 눈물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살아온 방식대로 자신에게 채찍을 가했다. 수녀님은 분홍색 실로 엮은 '기적의 패'를 내 손 안에 꼭 쥐어 주셨다. 파란 실로 엮은 기적의 패를 하나 더 쥐어 주시며 가족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셨다.


영인이가 동시에 생각나면서 수녀님 손은 '다 안다'고 말하는 듯했다. 대성통곡을 했다. 아기 때 울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펑펑 우는 나를 수녀님이 안았을 때, 20초도 안 되는 포옹 시간에 아들과 지낸 20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수녀님은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길을 걷는 이들을 이렇게 축복해 주시고, 기부금은 모두 아프리카에 보낸다고 했다. 성당 밖을 나와서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오로지 땡볕만 존재하는 길이 눈물을 바짝 말려 주었다. 앞으로 20km, 길 하나만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 입구에서 이런 체험, 과연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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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도 멀고 길밖에 없어 내리 걸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스마트폰 셔터기를 누르느라 가방에 통 넣질 못했다. 죄다 밑줄 그을 부분만 있는 책을 읽는 듯했다. 모든 길, 모든 풍경이 작품이었다. 회사에서 퍼스널컬러 진단을 두 번 받았는데 둘 다 웜(봄) 톤이 나왔다. 이 길을 걸으면서 알았다. 나는 영락없는 가을 여자였다. 회사는 '만들어진 나'를 알아차리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이 황금들판에 꽃이라고는 갈색 해바라기만 존재하는데, 노오란 색보다도 갈색에 매료됐다. 구름이 자리를 비켜주어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치어리더처럼 서 있는 풍력기(바람개비), 어쩌다 보이는 쓸쓸한 나무, 벤치, 순례자 기념 십자가 곁에 내가 벗이 되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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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에도 한계가 왔다. 생수통 하나만 가져왔는데 온몸은 땀에 쩔고 눈물은 한가득 쏟고 바도 없고 식수대도 없으니 입을 축이는 정도로만 물을 아껴 마셨다. 가방을 내리고 벗는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배는 자꾸만 고파왔다. 간신히 찾은 나무 한 그루와 바위 몇 개에 걸터앉아, 불 난 데 기름 붓는 격으로 바짝 마른 입속에 비스킷 장작을 집어넣었다. 그때 남녀 커플이 지나갔다. 오던 길에 다리 뻗고 쉬던 커플이었다. 여성은 다리를 절뚝였고, 남성은 가슴에는 자신의 가방을, 등에는 여성의 가방을 메고 걷고 있었다. 남성이 여성 가방을 들어준다는 게 상상되지 않던 시절의 나였다면, 여성에게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하고, 남성에게는 ‘쥐여 사는가 보네’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는 감동이 철철 흐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여성에게 인사를 하니 그녀는 다리만 절뚝일 뿐, 미소만큼은 강렬한 태양보다 빛이 났다. 얼굴이 하도 예뻐 나라도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풍경이 그게 그거 같지만 내 눈에는 모두가 달라 보였다. 내 마음도 길을 걸을 땐 그게 그거 같았지만 돌아와서 보니 매일이 달랐다. 자연이 그린 그림, 풍경과 하나 되는 나, 물아일체(物我一體) 풍아일체(風我一體)였으니. '아름다움은 다양함'이라는 걸 전하기 위해 길이 이토록 길고 긴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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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 드디어 하나 더 나왔다(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피자와 빠에야는 내 상태가 꿀맛을 만든 건지, 워낙 맛집인지 입속이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계산을 하는데 저 멀리 달력이 내 눈에 보였다. 오늘 10월 1일인데 9월 달력이었다.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 여유와 함께 사는 스페인이 교차했다. (귀국해서 11월 1일 우리나라를 보니 방문하는 곳마다 11월 달력으로 바로 걸려 있었다.)


먹을 땐 좋은데, 아직 더 남았다는 사실. 아침 7시30분에 출발해 현재 시간 오후 3시. 두 시간을 더 걸어야 했다. 한국보다 늦게 뜨고 늦게 지는 태양, 스페인 사람들이 시에스타로 쉬는 타임에 난 태양을 짊어지고 두 다리로 열심히 노를 젓고 있었다. 하긴 도착할 때 식당 문이 열릴 테니 차라리 그 편이 낫다, 고 치자! 이 허허벌판에서 걷지 않으면 잘 곳이 없으니 쓰러질지언정 걸을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을 때 사람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대안이 있으면 갈등도 끼어들고 목표도 흔들린다. 오로지 땅을 비비는 발소리, 기관지를 드나드는 숨소리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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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는 한 층에 수십 명이 머무는 거대한 곳이었지만 길의 풍경처럼 아름답고 깨끗하고 잊지 못할 숙소였다. 타 들어가는 입부터 단속해야 할 것 같아 그동안 멀리했던 맥주부터 알베르게 로비에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맥주에 목을 축일 때 필립 이라는 미국 남성도 만났다. 65세인 그는 은퇴 후 아내를 위한 기도 차원에서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아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가장 오래 말했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약리 작용'에서 나오는 '반감기', 나의 외국어 실력으로 '관계 작용'까지 번졌다. 영어를 못해 한탄스럽지만 그 덕(?)에 고독의 쓴맛 단맛 다 봤다. 속도가 느려 길에 덩그러니 혼자인 적도 많았지만 입을 놀리지 못해 혼자인 경우도 있었으니. 마흔에 독서, 운동, 글쓰기, 운전을 처음 했듯이 오십에 영어공부도 시작할 참이다. 길에서도, 삶에서도 느린 게 아니라 깊어가는 중이라고 본다.


순례자 메뉴도 어쩜 그리 깊은 맛이 우러나던지. 싱싱한 샐러드가 무한 리필이고 식당 안 세계인이 함께 먹는 닭고기 빠에야였으니.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모두가 하나 되는 자리는 위장도 얼씨구나 좋다 했다. 그나저나 내가 먼저 잠들면 다른 사람이 못 잘 텐데, 라는 선한 마음...때문이 아닌, 의외의 일로 또 잠 못 드는 밤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길을 또 한 번 걸었으니 눈물 on 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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