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따라 걷다
눈이 퉁퉁 부었다. 그 전까지는 전날 먹은 저녁 때문이었는데. 밤 10시면 소등하는 알베르게에서 늦게 잠들수록 새벽에 깰 확률이 적을까 싶어 독서등을 켜고 사진 정리를 했다. 그러다 작은 성당 수녀님 사진 위에서 시선이 멈췄고, 내 눈은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되었다. 희한하다. 또 울었다. 옆 침대 남성이 내 콧물 들이켜는 소리에 깰까봐 억지로 잠을 청했다. 아들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다 진저리를 치며 놀라 깼다. 베개가 젖어 있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보다도 많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꿈이라 천만다행이었지만, 이번엔 귀가 아닌 예민해진 심장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덕분에 수십 명이 쓰는 세면대와 화장실을 1등으로 선점할 수 있었다.
등산과 걷기를 싫어해 굵고 짧은 운동만 선호해 온 나였다. 따분함과 고리타분함은 내 '가성비' 기준에 맞지 않아 순례길 예습조차 멀리했다. 시험공부는 해야 하는데 책은 펴기 싫은 찜찜함을 한 달이나 묵혔다. 그러다 시험 당일에 본 지문이 문제로 나온 것처럼, 나를 안도(安堵)로 이끈 단 하루가 있었다. 예습 삼아 경기도 성남시 수내동에서 광주시 오포로 넘어갔던 날이다. 불곡산을 넘어 도로를 걸으며 불안증을 한 방에 해결했다. 은근히 가팔랐던 4시간의 산행과 도보였다. 시험지에 백지는 내지 않겠다는 믿음에, '여기는 광주시'라는 표지판을 마주했을 때의 희열은 말도 못 했다. 옆 동네로 ‘산’을 ‘타’ 마무리(‘close’) 한, 그야말로 '산타클로스' 스릴이었다.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주의 부르고스 주에서 팔렌시아 주로 넘어가는 오늘은 얼마나 벅찰까. 거의 30km에 달하는 강행군이지만, 불안이 근육을 위축시키는 것이라면 설렘은 근육을 이완시키는 추진력이니, 출발!
새벽 6시 30분, 아름답기로 소문난 '카스트로헤리스' 마을에서 아침을 먹을 생각에 텅 빈 위장으로 출발했다. 추위는 가혹했고 마음은 위장처럼 비워지지 않았다. 두 다리를 물속 오리발처럼 휘저었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걸었지만 몸은 데워지지 않았다. 하늘에 박힌 별과 보랏빛 새벽을 얻기 위해 치른 고통의 대가였다. 좁은 시골길을 하염없이 걸으니 날이 밝았다. 무대 조명이 켜지듯 내 눈앞에 모녀 순례자가 나타났다. 대여섯 살 아이와 엄마는 신나게 수다를 떨며 걷고 있었다. 입이 삐쭉 나와 걷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들 너머 산 정상에는 왕관 같은 카스트로헤리스 성이, 산자락에는 산토 도밍고 성당이 보였다. 중세 요새였던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니 한기도 어느새 씻겨 나갔다.
한국인 순례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오리온 알베르게로 향했다. 9시부터는 투숙객 정비시간이라 8시 30분에 도착해 비빔밥 삼매경에 빠졌다. 참이슬 등 소주로 진열된 벽면을 보니 마시지 않아도 기분 좋은 국(國)뽕에 취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가장 좋아하는 'S'자 곡선이 무자비한 오르막으로 변해 나를 시험했다(모스텔라레스 언덕). 급경사 앞에서 아까 비빔밥을 먹던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나태해진 내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딴청 피우는 학생처럼 단백바를 물고, 재킷을 벗고, 선글라스를 끼며 여러 번 멈춰 섰다. 짧은 보폭으로 갈지(之)자를 그리며 겨우 근육을 달랬다.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고진감래(苦盡甘來)'. 정상에 서니 이 말이 찰떡처럼 감겼다. 미소란 억만금을 쥐어야 터지는 게 아니라, 자연이 만드는 마법이었다. 경비행기에서 세계지도를 내려다보는 기분. 이 전경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사진기와 내 어휘력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스페인의 하루 날씨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듯이, 태양은 새벽의 추위를 잊게 할 만큼 뜨거웠다. 그 맛에 오른다며 이번엔 급경사 내리막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냉정한 바람이 다시 다가왔다.
길과 밭의 경계가 모호한 길을 한참 걸었다. 도로 위 육교는 비호감이지만, 강물 위 돌다리는 호감이다. 초록 물 위 초록 풀이 싱그러운 피소에르가 강(Rio Pisuerga)의 다리를 건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더니 때마침 이 다리가 부르고스 주와 팔렌시아 주의 경계다. 물리적 경계는 감정까지 침투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는 자연에 압도되어 마음 평수도 넓었는데, 다리를 건너 마주한 포플러 나무와 활주로 같은 스프링클러 들판, 드넓은 해바라기와 옥수수밭에서는 문득 외로움이 동행했다. 잡초처럼 키가 작은 갈색 밭 사이 길을 걷는데, 예식장을 홀로 행진하는 느낌이었다. 자연과 친해지니 사람과 멀어지는, 내 발등 내가 찍은 격이었지만 쌩 하고 지나가는 아는 얼굴의 바람조차 서운했다. 쓸쓸함의 골목 끝에서 바를 만났다(이테로 데 라 베가). 또르띠야를 먹고서야 본능적인 외로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보아디야 델 까미노의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북적이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이듯, 이기심은 외로움의 어머니였다. 내 마음을 타이르듯 숙소 앞에는 중세의 법의 심판대(Jurisdictional Roll)와 산타 마리아 성당이 서 있었다. 저녁은 투명 벽으로 안팎이 연결된 0층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먹었다. 조리가 불가능한 데다 근처에 바가 안 보여 식당 안은 자연스레 '위 아 더 월드' 분위기였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두 종류의 스프는 본 메뉴를 능가했다. 단호박죽 외모의 부드러운 채소스프와 내성적으로 바닥에 잔뜩 깔린 콩스프였다.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담긴 스프를 리필까지 해가며 치우지 말아달라는 애원과 함께 디저트 시간까지 반찬 삼아 곁들였다.
알베르게 대부분 빨래방이 있었고 이용료는 보통 4유로(세탁 또는 건조)였다. 하지만 나는 가장 빨리 마르는 옷 두 벌만 챙겨온 데다, 빨래 건조까지 집에서 연습해 본 터라 웬만해서는 손빨래를 고집했다. 기계의 도움 없이 내 손으로 직접 빨아 널어야 비로소 자연과 오롯이 교감하는 순례자답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들어선 방에서 독일에서 온 순례자 팀을 다시 만났다. 같은 방이었는데, 내 자리는 맨 안쪽, 그들의 자리는 화장실 바로 앞이었다. 키 크고 머리숱 적은 남성 순례자가 삼각팬티 한 장만 입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데 나만 '아무렇게나' 시선을 두지 못해 쩔쩔맸다. 세면대 앞 바닥이 샤워실 물로 찰랑거릴 때, 그 '삼각팬티'가 흑기사처럼 나타나 밀대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세면대 앞에서 까치발로 양말을 빨던 나의 옹졸함과 대의를 위해 선행을 베푸는 그의 모습이 교차했다. 그 순간 삼각팬티는 더 이상 민망한 도구가 아니라 슈퍼맨의 유니폼으로 보였다.
세탁기를 쓰지 않고 손빨래를 고집하려 했던 나의 시선, 자연을 독점하며 사람과 함께하면 불편할 거라 단정 지었던 나의 선입견을 마주했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방향은 잡아야 한다. 그 방향키는 다름 아닌 '시선'이다.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지, 내일의 길 위에서 다시 시험해 볼 일이다. 다가올 시선을 위해 이제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가 아니라 ‘시험에 빠지도록 하소서’라 당당히 빌리라.
콩이 속에서 불어터지는지 배가 불러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야외 식당, 로비, 어디를 가도 축제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숙소 밖으로 나왔다. 공간이 없어 운동 못 한다는 시선부터 거두고, 법의 심판대 불빛 아래에서 야심차게 밴드 근력운동을 했다.
콩이 속에서 불어터지는지 배가 불러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숙소 밖으로 나왔다. 공간이 없어 운동 못 한다는 시선부터 거두고, 법의 심판대 불빛 아래에서 야심차게 밴드 근력 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