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감으로 걷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진정 밖에서도 샜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아침 5시에 일어나는 습관이 10년째 이어지다 보니 지구상 어디에 있든 내 몸은 같았다. 아침 5시부터 8시까지의 3시간은 오후 시간대보다 능률이 2~3배 높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그야말로 절대적 3시간이 상대적 9시간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8시부터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할까.
지금까지는 '출근'이라는 외부의 물리적 압력에 따른 결과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2주간 아침을 보내며 비로소 알았다. 8시 무렵, 태양이 보랏빛과 푸른빛, 붉은빛으로 채도를 달리하며 세상을 스케치할 때, 심장을 넘어 온몸이 마비될 듯한 팽창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내부의 생화학적 힘이 만든 것임을. 어린 왕자가 3시간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듯, 나의 생체시계도 그렇게 맞춰져 있었다. 분초를 달리하는 태양과 아침을 함께하는 것은 임금님의 수라상을 받는 것보다, 배부른 저녁형 인간의 여유보다 든든했다. 저녁 7시가 넘도록 떠 있는 태양에게 '느림의 미학'을 한 수 배운다.
그동안은 강물 소리만 들어도 감지덕지였는데, 오늘은 도로도 산길도 아닌 오롯한 강길이라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큰 감동을 받으며 시작했다. 보아디야 델 까미노(Boadilla del Camino)에서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까지 이어지는 26.1km의 여정. 바람은 차가웠지만 오른쪽으로 까스티야 운하(Canal de Castilla)를 끼고 걸으니 옆구리는 시리지 않았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손을 호호 불며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은 항구에 정박(碇泊)한 배가 되기 일쑤였다. 마치 강줄기라는 기차에 탑승한 기분이었다. '까스티야 호차, 49A석(나이)'에 몸을 실은 채. 10월 3일, 한국은 긴 추석 연휴의 시작일이지만 나는 스페인 귀경길에 오른 셈이다.
물에 비친 나무, 길에 비친 나, 물 위의 기차처럼 떠 있는 노란 집, 그리고 그 집을 가릴세라 단발머리로 싹둑 자른 버드나무가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인간은 양쪽이 대칭적으로 움직일 때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나온다고 한다. 걷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지는데, 강물 위에 비친 자연까지 쌍으로 맛보니 도파민과 옥시토신까지 더해져 몸이 춤을 추는 듯했다. 강줄기 끝자락에 다다르니 진짜 정박한 ‘배’가 있었다. 비록 올라탈 순 없었지만, 두 다리로 노를 젓는 나의 ‘배’만으로도 충분했다. 한국에서 탄천 따라 걷던 나로서는 강물이 그저 멋으로만 보였는데 이 수로는 곡물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농업용수 저장 용도란다. 제 구실을 해야 아름다움이 더 증폭된다는 걸 느꼈다.
강물과 멀어지는 아쉬움은 나무들이 금세 채워주었다. 자작나무는 하늘을 향해, 나는 자작나무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벽화가 그려진 시골집들이 나타났다. 그 옛날 동굴 벽화가 생각나 인간의 본능으로 역사 속을 걷는 듯했다. 단풍 같은 지붕이 눈 속을, 바닥에 깔린 로즈마리 향이 코 속 가득 채웠다.
곧 첫 번째 바가 나왔다. 카페거리처럼 바가 줄지어 있어 순간 선택장애가 튀어나올 뻔했다. 오다가 길에서 주운 여성 등산 모자의 주인을 찾아주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을 만큼 인상이 좋아 보이는 바에 들어갔다. 그 근처에는 프로미스타의 산 마르틴 성당(Iglesia de San Martín)이 위엄있게 서 있었다. 성당이라고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요새로 착각할 법한 웅장한 외모였다. 이른 시간이라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겹겹이 쌓인 아치형 문과 층층이 쌓은 원통형 기둥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빛 없이도 스스로 빛나는 곡선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곡을 찌른 듯했고 자체 발광에 샘도 났다. 이제 고작 6.5km를 걸었으니 성당 속을 보여주지 않아도 이미 마음은 충만했다.
끝없는 들판인 '메세타 고원'은 부르고스부터 레온까지 이어지는데, 강물에 취한 나머지 현 위치를 놓칠 뻔했다. 현 위치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가 보이는 법. 어제의 고원과 다른 점은 'S'자 곡선이 아닌 앞만 보고 가는 일직선이라는 점이었다. 길 위에서 외국인 순례자들과 좋은 기분을 공유하며, 요가 동작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갈림길이 나왔다(포블라시온 데 캄포스). 왼쪽은 돌다리 건너 도로 따라 빨리 가는 길, 오른쪽은 다리 없이 길게 돌아가는 시골길이었다. 내 다리는 돌다리를 원했다.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응원부대처럼 '부엔 까미노' 표지석들이 늘어선 길이었다. 시골길이 아니어도 다채로운 풀들이 길 위에 양념을 치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피어난 들꽃에도 눈길이 갔다. 인간이 바라는 것, 아니 세상이 바라는 것은 그저 이런 따뜻한 '눈길'이 아닐까. 관계의 핵심은 관심일 테니 말이다. 끝없는 차도 옆을 걷다 '50'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자동차를 위한 표지판인데 내 가슴팍에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속도 50, 내 나이 오십. 이제는 인생의 속도를 절반으로 늦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의 색이 변하듯, 걷다 보면 변화는 찾아오게 마련이라고 길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철학적인 사유도 방광 앞에서는 무력했다. 풍경과 딴생각으로 뇌를 유인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길가 노상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평소 땅에 떨어진 쓰레기조차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미라 사방에 널브러진 휴지들을 차마 볼 수 없었다. 방광과 다리가 1시간 넘게 신경전을 벌인 끝에 드디어 바(Bar)를 찾았다. 그곳은 마당이 굉장히 넓었고 화장실부터 보였다. '디귿(ㄷ)'자로 오십 걸음은 족히 더 가야 했지만, 예의를 갖춰 주문부터 하려는데 또르띠야가 보이지 않았다. 급한 와중에도 눈동자는 또르띠야를 미친 듯이 찾았고, 결국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고서야 세상 날아갈 듯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비우고 채우고 나니 그제야 마당을 차지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순례길은 졸음, 배고픔, 추위에 이어 '마려움'까지, 잃고 나서야 비로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극한 결핍'이 '의외의 충만'을 낳은 꼴이다. 각자의 인생에 찍히는 <상실의 시대> 책갈피처럼 말이다.
치킨 맛집으로 유명한 바에 또 들렀다(비야르멘테로 데 캄포스, Villarmentero de Campos). 이전 바는 화장실이 목적이었고 지금은 치킨이 목적이니, 내 몸의 ‘위장’ 폴더도 아까와는 다르게 저장할 것이다. 7유로에 환상적인 맛의 치킨과 감자, 맥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좀 전의 바에서는 '작품'이 덤이었다면, 이곳은 '가성비'가 덤이었다. 덤으로 사는 게 인생이다. 예상치 못한 삶의 이득을 '덤'이라 느낄 테니까. 치킨 맛집의 야외 테이블은 그 자체로 근사했는데, 웅장한 ‘산 마르틴 성당’이 병풍처럼 든든히 뒤를 받쳐주고 있었다. 성당의 고풍스러운 석조 아치는 아기자기한 마을에 묵직한 힘을 보탰다. 배부르고 등 따스운 기운에 가성비 넘치는 음식까지 더해지니, 1유로 세요(Sello)도 거침없이 냈다. 시골길에도 간간이 마주치던 순례자 동상이 이 마을에도 작품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 도착했다.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 아리‘까리’ 했는데, 까리온 백작 가문이 통치한 중세 마을이라는 설명을 보고서야 그나마 머리에 입력시켰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1층은 광장만큼 넓은 마당과 빨래터, 주방이 있었고, 2층 전체는 취침과 샤워, 기도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간 활용이 마치 한국의 홈플러스를 보는 듯했다.
오늘은 바를 세 군데나 들렀다. 양심이 있지, 저녁은 오다 마트에 들러 산 비스킷으로 가볍게 때웠다. 빨래를 널고 나니, 근처 ‘산타 마리아 성당’에 갈 시간이 촉박했다. 미사 시간은 7시, 속을 채우기 위해 삼 세 번 바를 들렀다면, 영혼을 채우기 위해 삼 세 번 성당을 들러야 할 것 같았다. 결론은 오길 참 잘했다. 거리에 없던 사람들이 성당에 모두 모인 듯 북적였고, 수녀님 네 분이 함께했다. 수녀님들은 순례자를 위한 강론과 더불어 직접 기타를 치며 성가를 불러주셨고, 일일이 안수기도를 해주신 뒤 세요까지 찍어주셨다. 배는 고팠지만 정신만큼은 단단히 포식한 밤이었다.
오늘 하루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이었다. ‘무계획 상팔자’였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이왕이면 불안보다는 설렘을 택하고, 반전의 상황과 맞닥뜨렸다면 실망보다는 감동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 ‘의외성’과 ‘반전’은 유머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웃으면서 '현재'를 걷는 자신과 의외의 만남을 가질 터이니. 반전에 반전은 부메랑 같은 원점이 아닌 더 멀리 뻗는 원점일 테니. 이 약발, 설마 내일까지 가겠지? 하지만 또 다른 반전이 자정 넘어 새벽에 벌어졌으니... 글도 피곤을 느껴 이왕 자정 넘긴 거 다음 날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