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테라디요스 데 템플라리오스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 수도원 알베르게의 시계는 이미 자정을 넘겼다. 부르고스에서 산 이어폰을 등산스틱보다 더 의지하며 귀를 막아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이어폰은 소리가 아닌 물만 막는 귀마개 같았다. 다닥다닥 붙은 침대들 사이로 코골이와 이갈이가 뒤섞인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었고, 그중 악센트가 가장 강한 연주자가 바로 내 옆자리였다. 영혼을 모으는 수도원이 아니라 소리를 모으는 곳인 듯했다.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와도 새벽 한 시. 여기서 탈출하지 않고서는 고막이 전두엽까지 파괴해 감정 중추를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밖으로 나왔다. 기도실 문은 잠겨 있었고, 복도 중턱에 있는 사무실 앞 책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였다. 춥고 서러운 새벽, 종아리는 터져나갈 듯 부어올랐다. 시간이란 얼마나 주관적인 존재인지를, '눈 뜬 새벽'을 통과하며 온몸으로 느꼈다. 허기와 한기가 결합한 '불면 상품' 같아 주방에 내려가 어젯밤 삶아둔 달걀 두 개를 까먹었다. 그나마 주방이 따뜻해 방에서 침낭을 가지고 내려왔다.
새벽 세 시, 주방에는 나보다 먼저 내려온 한국인 남성이 있었다. 그는 삶은 달걀을 건네며 자신을 '달걀 삶는 도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퇴직 후 내면을 깊이 보기 위해 홀로 이 길을 떠났다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미 먹은 달걀과 함께 내놓았다. ‘잠이 그리운 하이에나’ 표정을 지으니, 그는 ‘사람이 그리운 하이에나’ 모습으로 귤까지 얹어 <레온> 도시에서 만나면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대화로 피 같은 20분이 흘렀다. 잠을 자지 않고 바로 출발하겠다는 '달걀 퇴직'님을 뒤로하고, 나는 식당 구석 기역(ㄱ)자 코너에서 번데기처럼 웅크려 간신히 쪽잠을 청했다. 외국인 대화소리는 5시 알람이 되어 눈을 떴다. 오늘의 교훈,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방 밖의 누울 자리부터 확인할 것!
기분 좋지 않은 출발이었지만, 어둠 속에 조명을 받은 산 소일로 수도원이 왼편에서 빛나고 있었다. 마을에 도착할 땐 보이지 않던 것이 떠날 때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보지 못한 구석을 업데이트하며 머릿속 빈칸을 채워나가듯, 사람을 알기까지 못 보고 지나치는 건 얼마나 많을까. 어제 성당에서 본 수녀님들의 진한 여운 덕분에 수도원의 은은한 조명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했다(사실 'Hotel'이라 적힌 문구에 더 눈이 반짝였다).
오늘 구간은 테라디요스 데 템플라리오스(Terradillos de los Templarios)까지 26.8km. 긴 이름만큼이나 숨이 찬 로마 길의 시작이다. 그래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절반(400km)을 넘어서는 날이라는 걸 축하하듯, 하늘은 붉은 도화지에 밑줄을 잔뜩 그어 놓았다. 곧이어 보랏빛 실선이 드리우고 붉은 단풍잎이 등장했다. 초록과 노랑에 이어 가을이 내미는 첫 악수였다. 길가 나무들도 가을답게 '탈모' 중이었다. 잎사귀 하나 남지 않은 채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볼 것이라곤 일직선 길뿐이라 그런지, 길의 왼쪽 밭은 채광 좋은 고층 같고 오른쪽은 조명이 필요한 저층 같았다. 내 손등마저 왼쪽만 시꺼멓게 탔으니, 길처럼 '좌청룡 우백호'의 마음으로 걷는 수밖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푸드 트럭의 유혹을 뿌리치고 헉헉대며 걷다 뒤를 돌아보니, 60대 여성 M님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예민해진 기분에 말실수라도 할까 봐 침묵을 지키려 했으나, 탁 트인 길 위에서 M님의 질문에 내 마음은 이내 무장 해제되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사생활 침해라고 탄산음료처럼 쏘아붙였을 질문에도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대답이 나갔다. 순간 인천공항에서 "싱글인가요?"라고 묻던 남성에게 “아니요” 하면 될 것을, 굳이 “싱글 아니고! 싱글맘입니다!!”라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렇게까지 날을 세울 필요까지야, 길에서만 말을 해야 할지, 그 사이 내가 성숙한 건지.
드디어 나타난 첫 번째 바(카이사디야 데 라 쿠에사)에서 M님이 점심을 샀다. 다리 부상 때마다 내가 해준 간호로 빨리 나은 것 같아 밥 사줄 날만 벼뤘다고 했다. 아픈 다리로 다람쥐처럼 쫓아오신 마음이 혼자 가고 싶던 마음을 덮어썼다. 먹고 싶은 것 다 고르라고, 자신은 목만 마르다는 말에, 또르띠야 하나와 벽에 붙은 'Jamon(하몽)'을 가리키며 자몽 쥬스 두 잔을 외쳤다. 17.5km까지 내리 달려 타들어가는 우리 앞에 자몽 쥬스가 아닌 하몽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 와중에 샌드위치가 아니라 쥬스를 시켰다고 바 카운터에서 바디 랭기지까지 동원하며 설명했다. 아뿔싸, 스페인에서 'J'는 'H' 발음이라는 걸 보름 넘게 걷고도 잊다니! 샌드위치는 어떻게 해 보겠는데 하몽은 둘 다 비린 맛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었다. 때마침 그때, 하몽을 좋아하는 아는 얼굴이 나타나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마무리했다. 까미노 천사 종류도 참 여러 가지다. '무식'이 통통 튀는 까망눈이었지만 방광까지 부여잡고 푸드트럭을 다섯 개나 패스하며 4시간 넘게 걸은 내가 기특했다.
1인용 오솔길이 펼쳐졌다. 마치 자궁 속에 있는 듯 아늑한 길을 벗어나니, 다시 강렬한 태양이 나를 할퀴었다. 눈꺼풀엔 추를 매단 듯했고 다리는 차라리 네 발로 걷던 인류가 되고 싶었다. 로마 길이 이곳에 있다는 건 스페인이 점령당했다는 역사적 증거겠지만, 내 육체만큼은 이 길에 점령당하고 싶지 않았다. 일자로 쭉쭉 뻗은 도로를 만드는 기술이었다면 쉼터 하나쯤 만들 법도 한데, 바람조차 야박하게 없었다.
다리 저는 외국인 여성을 보며 힘을 냈지만, 그녀 뒤를 밟다 정작 내가 묵을 알베르게를 지나치고 말았다. 자(하)몽 사건 이후 정신 똑바로 차려 노란색 화살표를 확인했다며 자부했건만, 하마터면 다음 목적지로 직진할 뻔했다. 길에서도, 삶에서도 목적을 잃지 말기를.
겨우 도착한 테라디요스 데 템플라리오스의 알베르게.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걷는 내내 옷을 벗기려 기를 쓰던 태양은 간데없고, 이제는 빨래를 집게째 뚫고 날려 보낼 기세로 바람이 불어댔다. 알베르게는 취사가 되지 않는 허허벌판이라 0층 식당에서 저녁으로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음식을 가져다주던 여성 사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한국말로 “너무 예뻐요~”를 연발하셨다. 외국에서 먹히는 얼굴이라니, 만세 삼창처럼 세 번이나 반복된 그 찬사에 눈꺼풀과 다리는 붕 뜬 듯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마음도 가을, 풍경도 가을이었다. 체력이라는 낙엽은 우수수 떨어졌어도 갈색 가을빛에 흠뻑 물든 하루였다. 오늘 밤은 우수에 젖어 우수하게 잠들어 보자꾸나. 내일은 ‘로마길’도 그 어떤 길도 아닌, ‘나’름대로(路) 길을 걸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