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진화

변주 선율로 걷다

by 푸시퀸 이지


템플라리오스, 이름답게 알베르게 앞엔 ‘템플기사단’ 동상이 서 있었다. 순례자를 지켜줄 것 같은 비장한 기운을 받아 출발했다. 기사단의 갑옷이라도 빌려 입고 싶을 만큼 공기는 차가웠다. 추석 전날이라 그런지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주황빛 잘 익은 감 하나가 툭 떨어진 듯했다. 막힌 건물 하나 없는 벌판이라 몸은 바들바들 떨렸지만, 마음이 막힌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포토샵이 필요 없는, 아니 사진에 감히 덧칠해서는 안 될 오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주황빛 노을은 몇 걸음에 보랏빛을 드리웠고, 저 멀리는 누런 하늘이 일렁였다. 같은 배에서 난 자식도 제각각이듯, 하늘도 같은 시간에 이토록 다양한 색을 낳았다.


3km 지점, 와인 저장고 위 봉우리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가 없었다면 휙 지나쳤을 그 언덕(모라티노스)에 올라서니 ‘내 손안에 있소이다’를 외치고 싶을 만큼 드넓은 들판과 태양이 두 눈동자로 한데 모였다. 평소라면 민폐 될까봐 누구에게 사진 찍어달라 소리 못 했을 소심함이, 그 순간 우렁찬 뱃심으로 돌변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 좀 찍어주세요!” 언덕 위 의자는 마치 프로필 촬영장의 소품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인생 네 컷' 셀프 사진관보다도 근사한 '일출 등받이 사진관'. 손은 꽁꽁 얼고 배는 등가죽에 붙어 거지 신세였지만, 내부에서 꿈틀대는 열정은 기온과 체온을 무색하게 했다. 영어도 ‘겉’이 아픈 ‘hurt’보다 ‘속’이 아픈 ‘sick’이 더 친숙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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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엔 며느리를, 가을볕엔 딸을 내놓는다"더니, 싸늘한 바람 속에서도 볕이 좋아 풀들은 빨갛고 노랗게 꿀광을 냈다. 오솔길은 나무 양산 아래 '그늘 횡단보도'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나를 충분히 감싸지만 터치하지 않는 털북숭이 오솔길을 마음 간지럽게 걸었다. 걸음에 웃음을 선사하는 순례자 벽화마저 정겨운 길이었다. 인간이 듬성듬성 빠지는 백발로 시간을 감지하듯, 어느새 나무도 노란 새치가 빠져 길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오늘 나타난 해바라기는 단풍처럼 붉은 부끄럼을 자아냈고, 고개 숙인 벼는 제 목덜미에 눈부신 광채를 드러냈다. 동서남북 각기 빛나는 풍경 덕분에, 그간 땅만 보느라 굳어있던 나의 목덜미마저 회전과 굴곡을 일삼으며 경추 운동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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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준 애피타이저에 이어 첫 바(산 니콜라스 델 레알 까미노)에서 ‘대박 또르띠야’를 만났다. 올리브오일이 방석처럼 깔린 또르띠야는 혀에서 위장까지 부드럽게 슬라이딩했다. 접시 위에 토마토 한 조각으로 채운 여백의 미(美)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의 미(味)였다. 사장님의 센스를 보니 고수임이 틀림없다.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충전해 걷다 보니 학자와 장군이 마주 보는 조각상(산베르나도 조각상)을 만났다. 묘하게 장군상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장 씨 아들을 둬서 그런지, 내 성격이 장군 같아 그런지. 그 사이를 통과하는데 무서워서가 아닌, 설렘으로 등골이 오싹했다. 팔렌시아 주와 레온 주의 경계선이자 프랑스 생장과 산티아고의 중간 지점, 중세 도시로 유명한 사아군(SAHAGUN)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아군은 고풍스러움이 남달랐다. 일요일이라 문 닫은 곳이 많아.... 다행이었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산 베니토 아치문, 그 밖의 유적지를 스쳐 지나며 유혹의 빗장도 걸어 잠글 수 있었으니까(유혹이야 음식에 국한되지만). 문 닫은 주말이 고마웠고 ‘순례길’다웠다. 그때 어디선가 "이지 씨!" 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 수도원 알베르게 주방에서 새벽 3시에 만났던 ‘달걀 퇴직’님이었다. 그는 내게로 다가와 그날 말 한 <레온>에서의 밥 한 끼로 내 QR코드를 찍어 카톡 친구를 맺더니, (자칭) 맛집 전문가답게 사아군의 레스토랑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날처럼 굳이 묻지 않은 말을 쏟아내던 그가 자신의 알베르게로 사라지고, 나는 '해방과 고독'을 되찾았다. ‘사아군 알베르게를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가 고프면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는데, 갈수록 예뻐지는 하늘에 취해 내가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과인가 착각마저 들었다. 평온한 평지 길이 주는 마법일지도 모르니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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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km를 지나니 복잡한 찻길과 구름다리 사이에서 노란 화살표가 숨바꼭질을 했다. 길 잃기 최다 기록 보유자인 나를 위해, 이어 오는 여성들을 위해,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서 60대 남성 두 분이 한 시간 넘게 서서 기다렸다. 노란 화살표보다도 귀한 두 분의 황금손가락이 아니었다면 건널 수 없는 강을, 하마터면 엉뚱한 마을에서 잘 뻔했다. 구세주 두 분, 경계심에 말도 잘 섞지 않았던 분들인데, 누군가를 돕는 그 마음에서 ‘사람 사는 맛’을 느꼈다.


마침내 도착한 베르시아노스 델 까미노. 볼 것 하나 없는 마을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알베르게(Bercianos 1900)에 마음을 뺏겼다.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되듯, 이 허허벌판의 보물 같은 곳을 기억하고 싶었다. 수십 명이 올라타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침대와 침대마다의 아늑한 커튼, 그리고 피자와 치킨 맛집인 0층 식당까지. 술도 나름 경계했던 인간이 럭키세븐처럼 맥주 한 잔에 와인 여섯 잔을 마시고, 순례자 메뉴까지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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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화살표’가 되어주신 남성 두 분께 맥주 한 잔 샀다가 와인 한 병이 되돌아 온 것. 순례길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길이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 사는 맛’으로 ‘사람 자는 맛’은 한도 초과다. 복도에서 밴드 운동으로 근육을 쥐어짜 보았지만, 위장은 ‘과유불급’ 아우성이었다. 앉아서 자야하나 싶을 정도로 위장은 밤새 불편감을 호소했다. ‘잘 먹어야 잘 잔다’는 나의 원칙을 수정했다. ‘욕망이 아니라 (이국적) 호기심으로 먹는다’는 소리도 단식하기로. ‘잘 먹자, 잠 잘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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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 ‘소로’는 취소다. 하늘과 사람, 몸과 마음의 변화무쌍함에 기꺼이 놀아나는 ‘변화인’이 내게 더 가깝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유럽 여행기 <먼 북소리>에서 “다양하게 변해가는 정경(情景)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하루키’와 같은 과? 내일 ‘하루’는 어떤 변화가 나를 진화시‘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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