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달달하게 열었다. ‘꿀’잠 컨디션에, 며칠 전 마트에서 산 카스테라에, 옆 침대 순례자들이 건넨 바게트와 쿠키까지 넙죽 받아먹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위장은 기억력이 참 없나보다. 어젯밤 팽만감으로 고생하며 했던 다짐은 싹 지우고 눈 뜨자마자 이러니, 밤의 약조는 밤에만 지키기로 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뭐든 보약처럼 느껴지듯이 만시야 데 라스 뮬라스(MANSILLA DE LAS MULAS)까지의 26.8km 구간에 온몸 불사를 기세로 혈당 엔진을 가동했다.
하늘은 보랏빛 도화지에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린 듯 오묘한 구름 그림을 그려냈다. 맨 앞의 풀부터 저 끝의 나무까지 줄 세운 풍경을 보랏빛 하늘이 조화롭게 감쌌고, 번지르르한 옥수수밭 위로는 분홍빛 스카프를 살짝 바꿔 걸쳤다. 7km쯤 지났을까, “심봤다!”를 외칠만한 바(엘부르고라네로)를 발견했다. 라면을 종류별로 파는 집이 먼저 등장했지만, 라면을 먹지 않는 나의 편식 덕분에 진정한 인연을 만났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꿀광 흐르는 애플타르트와 푸딩 앞에서 나는 또다시 무장해제되었다. 내 얼굴엔 꿀광이 없어도 이곳은 온통 꿀광 천지다. 불가능은 없다는 걸 혈당 도핑으로 실감하며 기어이 다 해치웠다.
포만감 덕에 고개가 절로 들린 걸까. 교회 첨탑 위, 양옆으로 사이좋게 놓인 새집이 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벌판 사이로 오솔길과 차도가 엎치락뒤치락 이어졌다. 연중무휴 ‘차 없는 거리’ 같은 한적함 속에 각설탕처럼 반듯하게 쌓인 볏짚과 레고 장난감 같은 트럭이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도로는 두고 양쪽 밭이 전혀 다른 풍경인 것이, 마치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우러진 만물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어제는 나무 한 그루가 단풍 잔치를 벌이더니, 오늘은 줄지은 나무들이 일제히 헐벗으며 가을의 절정을 알렸다. 저 멀리 같은 키, 같은 간격으로 모여 선 푸른 나무들은 지평선이 아닌 ‘목(木)평선’을 이루어 내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해 주었다. 내 미래도 저 길처럼 가지런히 놓이길 바라며, 인생의 점 하나하나를 나무 심듯 찍어 나가야겠다 결심했다.
어제는 드넓은 들판 길에 혼자일 때가 많았는데 오늘은 도로 갓길에 외국인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모두가 묵언 수행하듯 걷고 있었다. 외국어를 못해 쫄 필요도 없이, 길은 각자에게 '고독'이라는 선심을 베풀었다. 파란 하늘을 닮아 파랗게 흐르는 강물과 나무로 선을 그은 듯 따뜻한 기찻길을 지나며, 나는 연신 선글라스를 벗어 풍경의 채도를 확인했다. 나의 미래도 이토록 푸르게 물들고 싶은 채색이었다. 한 쌍의 마지막 잎새를 지나니 이제 눈은 귀에게 바통을 넘겼다. 잔소리와 군소리 대신 발소리와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가 어우러진 클래식 연주회를 감상하며 걷는 길. 문득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내 발치에 벌러덩 배를 보이며 손길을 요구했다. 경계심 강한 고양이가 이토록 마음을 열다니. 18일 차를 지나며 내 마음의 경계가 옅어진 걸 녀석도 느낀 걸까.
구간의 '기'와 '승'에서 혈당 스파이크를 제대로 맞았으니, '전'과 '결'은 내리 걸었다. 지루해질 즈음 나타난 운동기구에서 지방 분해의 시간을 가졌고, 벤치에 앉아 사과 하나로 허기를 달랬다. 나와 운동기구, 벤치, 우리 모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는 ‘공통의 신화’로서 의기투합했다. 이 모든 게 다 혈당 스파이크의 공로다. 우리처럼 선탠 중인 소들, 나무 파라솔을 두른 오솔길과 구름 눈썹을 붙인 하늘 눈동자에 감탄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 만시야 데 라스 뮬라스에 도착했다.
저녁의 순례자 메뉴를 고려해 점심은 가성비를 택했다. 동네를 두 바퀴 돌아 단돈 2유로에 통감자와 닭볶음, 바게트를 주는 곳을 찾아냈다. 등산스틱도 꺼내지 않고 20km를 화장실도 참아가며 완주한 끝에 얻은 보상은 2유로 그 이상의 가치, 아니 20유로의 맛이었다. 땀 흘린 자만이 누리는 성취감에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점심은 닭조림, 저녁은 생선조림. 점점 나아지는 몸과 점점 양심을 찾아가는 나 자신을 보며, 마음 조림 없이 생각까지 달콤해진 날이었다. 오늘 때마침 한국은 추석이라는데, 고국의 사람들도 이 길처럼 달달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