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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라도에서 아헤스, 향기와 냄새

콧속 파고들며 걷다

by 푸시퀸 이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그림처럼, 벨로라도 마을의 벽화는 흐린 아침, 빛 대신 기운을 채워주었다. 집에서 피범벅이던 물집이 여기서는 멀쩡했다. 1. 자기 전 바셀린, 2. 아침 발가락양말과 등산양말, 3. 매일 세탁, 이라는 의식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양말이 생명인 이 길에서 오늘은 배낭이 빨랫줄이 되었다. 걷고 난 뒤 태양에 뽀송뽀송해진 양말을 보면 하루 연체 됐지만 기쁨은 그대로다. 오늘은 바람에 의존해야 할 만큼 날이 흐렸지만, 회사에서 억지로 땡볕을 연기하던 때와 달리, 이 길에서는 잿빛 풍경이 운치로 다가왔다. 산티아고 길로 인한 변화일까, 숨겨진 본능일까. 흐린 길에도 마음이 전염되지 않는 이유는, 자연이 내어주는 대안이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본 해바라기 밭이 또 나타났다. 오늘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해바라기였다. 공간이 주는 힘 중 하나가 멘탈을 좌우하는 것인데 고도에 따라 감정도 달라질 수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 뒤에 숨은 해바라기까지, 온통 해바라기 세상이었다. 그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처럼 일제히 왼쪽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우리들처럼. 같은 목적은 가지각색 배경을 품는다. 한창 꽃 피던 시절인 여름이 지났어도 사명을 다해 고개 숙인 해바라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푸른 나무와 노란 풀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든 연두빛 해바라기 밭, 누가 어디쯤 서 있는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S자 길, 파운드케익 자른 단면 같은 밭, 우리가 세상에 중심인 양 나무 커덩그러니 서 있는 나무 커플 등 자연은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도록 구슬렸다. 노란색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노란 집 앞에서 욕구를 한껏 채웠다. 잠시 감성에 빠졌더니 또 옆길로 샜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잘 꾸며진 건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다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 인도도 없이 굉장한 속도로 차가 내달리는 고속도로 옆을 아슬아슬하게, 그것도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서 모험 같은 순례길이 시작됐다. 줄기 없는 콩나물 대가리처럼 화살표도 몸통 없이 방향(>>)만 있었다.


오던 길 슈퍼마켓에서 만난 60대 M님은 "이 길이 맞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 나는 "화살표가 있다"며 큰소리로 우겼다. ‘고속도로는 화살표도 색다르다’며 앞장섰다. 고속도로 오르막 끝에서 M님이 "아무래도 이 길은 아닌 것 같다"고 했을 때, 땀에 젖은 등줄기가 큰 소리 뻥뻥 친 무안함에 오싹했다. 화살표처럼 세상도 얼마나 자의적으로 해석 하며 살았을까.


그때 연극 무대처럼 '까미노 천사'가 갑자기 등장했다. 흰색 트럭에서 흰옷을 입은 남성 두 명이 내렸다. 피차 영어를 못하는 네 명이 갓길에 서서 눈만 휘둥그레졌다. 스페인 말을 번역기로 돌려도 잘 터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손가락과 눈빛으로 안내한 길은 '호텔' 방향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때까지 길 안내 삼창을 외쳤고, 차를 돌려 다시 내려가면서도 우리가 안전한 길로 내려가는지를 끝까지 지켜보고서야 자동차 엑셀을 밟았다. 한창 일하는 시간대에 그들은 '까미노 천사' 회장감이었다.





정답 길은 고속도로 오르막의 세 배 정도 되는 급경사 오르막이었다. 급경사 시작 지점에 까미노 천사에게 유일하게 알아들은 ‘호텔’, 이토록 멋진 호텔(산 안톤 아바드)이 있었지만, 슈퍼마켓과 멋진 집들에 홀려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 호텔이었어도 코빼기도 쳐다볼 마음이 아니었다. 미안함과 지친 몸에 휑하니 지나쳤다. 끝없는 오르막에 동행인 M님과 각자 말없이 오르기만 했다.


간신히 쉼터에 도착했다. M님은 가방에서 피자를 꺼내며 "이게 외국인 입맛에 맞겠다"며 혼자 쉬고 있는 호주 청년(22살)에게 다가갔다. 자식에게 간식 챙겨주는 모성애가 느껴졌다. 입가에 빵 조각을 묻혀가며 자기 배부터 채우는 나와는 달랐다. 나도 빵 두 개를 건넸다. ‘웨이든’이라는 그는 8년 전 TV를 보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지금 이렇게 꿈을 이뤘다고 했다. 이어 어제 셀카를 찍던 대만 여성 유쉰청(33세)도 다가왔다. 이번에는 내가 선수 쳐서 빵을 나눠 주었고, 다들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급격한 오르막과 내리막에 다리는 내내 진동상태였다. 내 잘못에 내가 화 나 뒤 한 번 돌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롤러코스터를 기구 없이 내 두 발로 지나온 것이었다. 내가 저걸 넘어섰다니. 성취감에 자연에 몰입했다. 이슬이 맺힌 듯 한 빨강 열매, 한 뱃속에서 낳았지만 가지각색인 고사리 풀을 지나 ‘오아시스'라는 쉼터도 만났다. 이름만 오아시스이지 물은커녕 바람 한 점 없었다. 휙 지나가니 과로사인지 노화인지 쓰러진 나무가 많았다. 아슬아슬하게도 옆 나무에 기대 사람인(人)을 그리기도 했다. 땅은 부끄러운지 홍조를 띠었고 바람이 가져다 준 흙냄새는 아로마 향기처럼 느껴졌다. 같은 날, 한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어느새 땅은 빵을 구워냈다. 구름은 빵 굽는 향기가 피어 오르는 듯했다.





길을 잘못 안내한 게 마음에 걸려 처음 등장한 바에서 피자를 샀다(산 후안 데 오르테가). M님은 피자가 너무 맛있다며 다른 맛으로 한 판을 더 샀다. 이러면 내가 산 게 아닌 더치페이인데, 당신은 까미노 천사 투(II). 대만 여성 유쉰청을 다시 만나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녀는 사진을 같이 찍고 싶어 했다, 나는 길에 감탄하는 그녀의 모습을 어제 몰래 찍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오히려 내게 길을 즐기는 모습이 좋다며 계속 그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다. 까미노 천사 쓰리(III) 임명!


배가 부르면 뇌는 그날 할 일을 다 한 줄 아는 모양이다. 다리가 무거웠다. 피자집은 알베르게이기도 했는데 그저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다리를 질질 끌고 나오니 저 멀리에서 양떼 목 방울소리가 바람 따라 흘러왔다. 방울소리는 피레네산맥에서 듣던 포르테 연주와는 또 달랐다. 이제껏 내가 가진 방울소리는 기찻길에서 나를 멈춰 세울 때였는데 나의 세계를 넓혀 주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풀도 응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풀, 보는 건 좋지만 난 이리저리 흔들리고 싶지 않다. 그게 이 길을 걷는 목적이기도 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아헤스 마을이 보였다.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했다. 알베르게도 깔끔했다. 주인 성격은 깔끔과는 거리 먼 까칠함이 있었지만. 눈칫밥까지 먹으며 고생한 두 다리를 위하여 순례자 메뉴로 닭의 다리를 시켰다. 피자 두 판은 다리가 먹었는지 빠에야(볶음밥)까지 위장은 한껏 허용했다.


자연 냄새 풀풀, 사람 향기 폴폴 나던 길, 그 많던 향기는 다 어디 갔을까. 밤은 가혹했다. 새벽 1시부터 뜬눈 신세였다. 낮에 30km 넘게 걸어 지칠 만도 한데, 코 고는 소리와 후덥지근한 기온이 잠을 방해했다. "코 고는 게 심해 양압기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코골이 순례자의 첫인사가 떠올랐다. 말을 말지, 몰랐다면 이 곳 생활이 엄청 피곤했겠거니 원망이 덜 했을 텐데. 얼마나 무겁길래 내가 매일 양압기를 모시고 다니고 싶었다. 수십 명도 아닌 네 명이 자는 방이라 기뻐했는데 ‘소리의 분산’이냐, ‘선택과 집중’이냐의 선택일 뿐 귀는 그거나그거나 였다.




빛나는 목욕탕과 화장실이 방 안에 있어 세상 쾌적해도 최후의 심판은 늘 귀가 내렸다. 1시부터 5시 사이 복도 계단을 오르내리다 결국 맨 아래 계단에 쭈그려 앉았다. 휴게소는 없고 식당은 문을 걸어 잠궈 1인용 계단만이 나를 받아 주었다. 새벽바람은 유독 차가웠다. 현관문 앞 화장실이 그나마 따뜻했다. 예민한 나 자신이 못나 보이고 참 싫었다. 자연과 사람 향기에 그토록 취했는데 과연 나는 어떤 향기를 지닌 인간일까. 지금 컨디션으로는 향기고 자시고 땀 냄새 안 나면 다행이고 매서운 바람 같은 신경만 아니길 바랄 뿐.






흔들리는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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