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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 산티아고 면(面) 세워준

면 따라 걷다

by 푸시퀸 이지

나헤라 알베르게에서 나와 까미노 길 시작 지점에 이르니, 아기자기한 포토존이 나를 반겼다. 얼굴만 뚫려 있는 순례자 전신 조형물이었다. 나헤라는 중세시대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으니 그때 의상을 재현했나 싶었다. 오르막길 시작 부근이라 순례자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듯했다. 그 많은 왕과 왕비 대신 소박한 순례자 동상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모습이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 내 마음이 편안한 옷이었다. 27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맞는, 나다운 옷을 얼마나 걸치고 살았을까. 시작부터 또 회사 생각이 스쳤다. 그나저나 조각상에 가득 찬 내 얼굴은 어제 먹은 저녁의 만월이었다. 얼굴만큼, 마음도 충만하게 차올랐다. 태양도 어김없이 떠올랐다. 해는 넓게 퍼져 산을 고루 안았다. 혹은 산이 달걀노른자를 깨뜨리듯 햇살을 흐트려 놓은 것도 같았다.





오늘 구간은 나헤라(NAJERA)에서 산토 도밍고 델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까지 21km로 부담이 적었다. 시작부터 경치는 장관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좋으면 나중엔 어쩌려고! 자연이 부담을 느낄 판이었다. 살면서 복장 터질 일이 있었다면, 이곳에선 이처럼 가슴 터질 일이 많았다. 노란 밀밭이 끝없이 펼쳐졌고, 흙냄새와 거름 냄새가 함께했다. 80대로 보이는 외국 여성도 시작부터 함께 걸었다. '부엔 까미노' 미소 속에 비친 주름살에서 삶의 궤적 향기가 전해졌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입 뻥긋을 못 해 "당신의 보랏빛 티셔츠가 아름답다"는 뜻으로 엄지검지를 옷걸이로 만들어 내 옷을 끌어 올리며 엄지척과 하트를 보냈다. 외국어를 못 하니 손이 바쁘다.


시작을 알리는 경종처럼 이제 막 자라나는 초록 풀도 보였다. 어르신 여성과 새싹, 신구(新舊)의 조화로운 생명체가 느껴졌다. 집에 덩그러니 남겨 둔 엄마와 아들이 교차 했다. 출퇴근길에 흔하던 비둘기가 없어서인지, 새 한 마리가 그렇게나 반가웠다. 우체통처럼 생긴 노란색 조형물을 보니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현 위치를 알려주는 이 조형물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노란색의 연속을 기대하다가 초록 풀이 뜬금없이 나타나면 감동은 더했다. '끼리끼리'라는 틀을 깬 듯한 통쾌함이랄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 하고 좌절 한다. 시간이 약이듯, 누런 현실에도 초록 풀은 반드시 왔다. 바로 이어 갈색 풀이 또 치고 나왔다. 와플 기계로 찍어낸 듯 한 초록 밭과 어우러진 갈색 밭, 노릇노릇 바게트 빵을 구워낸 황금 밭, 넓적 당면이나 리본 띠를 두른 밭까지, '면' 줄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예쁜 마을이나 시골길에 있던 바(Bar)와 달리, 오늘은 세련되게 골프장에 있는 바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골프장을 스페인에 와서 구경했다. 골프장처럼 바도 널찍하고 시원시원했다. 내 뒤로 이번에 같이 참여한 60대 여성과 50대 남성이 줄을 섰다. ‘공간의 힘’인 건지 지 내 마음까지 트여 그들이 입맛 다시며 바라보는 카페 콘 레체(라떼)와 콜라를 내가 샀다. 봄에는 이곳에 유채꽃이 만발한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의 만족은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미련을 두지 않게 했다. 이거면 족했다. '비교'와 '다음'은 현재의 불만족에 기인 한다. 디자인도 색다른 교차로와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놀이터를 지나니 그 다음부터는 정말...





시루에나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산토 도밍고로 가는 길은 온 세상이 경작지로, 황금들판에 머리 가르마 같은 길만 존재했다. 좌우로 밀과 보리밭이 펼쳐졌다. 내가 무슨 단어를 자주 쓰는지를 보게 했다. 그것은 '황홀', '거룩', '고요'였다. 한국에서는 입 밖에 꺼내지 않던 말들이었다. 심장이 뛰어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다리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감탄으로도 부족했고, 아니 이 세상에 걸맞은 단어가 없는 것 같았다. 바빠서 주변을 돌아볼 새 없는 삶과는 반대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걱정하고 아파할 겨를이 없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할 말을 잃는다"고 한다. 자연경관에 할 말을 잃는 것과는 '결'이 다르고 '면'이 다르다. 자연이 '갑', 내가 평생 '을'로 살아도 좋을 만큼.


앞에 혼자 가는 여성(대만인)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걷다가 고개도 까딱까딱, 어깨도 씰룩씰룩 했다. 그녀 뒤를 바짝 따라붙어 나도 흔들거리며 걷는데, 그녀가 갑자기 뒤를 홱 돌아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헌데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들판을 배경으로 셀프 카메라를 찍었다. 이 길이 이렇다. 오로지 나만 보인다. 프랑켄슈타인이 "내가 가진 언어가 내가 보는 세계"라더니 나의 언어 그릇이 우주 속 소주잔처럼 느껴졌다.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를 코앞에서 만났다. 나는 지식창고에 든 게 없어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졌다. 땅에 발 붙여 사는 이는 하늘을 동경 한다. 하늘에 사는 새들은 하늘이 '길'이라 우리가 길을 걷는 것처럼 무감각 할 테지만. 바다 한 번 보는 게 대단한 일이고 위대한 경치였거늘 이젠 바다보다도 하늘이 좋아졌다. 고개 쳐 들고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걷고 있는데 응원차 또 순례자 동상이 나타났다. 거의 다 왔나 보다.


나는 가성비가 있을 때, 계획대로 실행될 때 성취와 스릴을 느낀다. 산토 도밍고에 다다를 즈음 <Dia> 마트가 있었다. 스페인 체인 마트인데 저렴하면서도 맛은 월등해, 이 마트가 보이면 무조건 들렀다. 점심식사로 쓴 비용이 3유로인데, 맛, 건강, 양 삼박자가 들어맞았다. 알베르게에 들어와 전병에 싸 먹는 샐러드를 먹었다. 5천 원의 행복이었다. 알베르게는 공립이라 저렴하면서 크고 깨끗하고 친절하며 아름다웠다.




배가 차니 주변이 눈에 들어오고 알베르게 천지가 다 예뻤다. 산토 도밍고, 이 마을은 도밍고 성인이 순례자들이 하도 힘들어해 직접 도로, 다리, 병원 등을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닭의 기적'과도 관련 있어 알베르게 안에도 닭이 있었다. '닭의 기적' 이야기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앞 생략) 당신 아들이 살아 있다면 식탁 위 닭이 살겠다"는 말과 함께 교수형에 처한 아들이 풀려났다는 이야기였다.


빨래를 널어놓는 알베르게 마당 잔디밭은 절로 운동하고 싶게 했다. 포르투갈 남성은 요가 매트까지 준비해 먼저 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 다가가 함께했다. 빨래를 마치고 해가 저물자 두 발은 절로 근처 바를 향했다.




점심에 이어 저녁 식사도 대만족이었다. <닭의 기적>에 걸맞게 치킨버거를 시켰다. 바게트 빵, 닭, 치즈, 달걀 프라이의 조화야말로 기적 같은 맛이었다. 하지만 다 좋을 수는 없었다. 황홀 맥을 끊은 건 햄버거 속 머리카락이었다. 다시 만들어주겠다는 걸 괜찮다고 했다. 햄버거가 이 정도 맛인데, 나의 루틴인 또르띠야는 어떨까 싶어 다시 말했다. "괜찮은 건 햄버거이고, 대신 또르띠야를 주십사"고. 흔쾌히 내주었다. 가격에 음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와인 한 잔이 아니라 병째 나왔으니 안주가 더 필요했다. 역시 짜장면을 잘하는 집은 짬뽕도 잘하는 법이었다.


"실수는 얼마든지 해도 된다. 두 번은 안 된다"는 게 성공철학인데, 또르띠야에서도 머리카락이 나왔다. 아, 그런데 머리카락 위생을 싹 잊게 하는 그윽한 맛을 어쩌란 말인가. 수술 집도의처럼 머리카락 부분만 도려내고 접시를 싹 다 비운 나도 정상은 아닌 듯했다. 다른 손님을 위해 이 사실을 알려주었더니, 그 즉시 직원들을 모두 소집해 회의까지 했다.




내 몸에서 술 냄새는 나겠지만, 마음만큼은 뭐든 용서할 기세로 성당에 갔다. 저녁 8시 미사에 참여했다. 도밍고 신부 묘지 위에 세운 성당이라 이름 그대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대성당'이었다. 스페인 르네상스 조각의 아름다운 장식이며 성당 안을 지키는 닭이며, 다른 성당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성당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좋은 일이 생기거나 산티아고까지 순조롭게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미사를 마치고 내부를 구경하기까지 아무래도 닭은 속으로 울음을 삼킨 듯했다. 성당 종탑도 올라갈 수 있었는데, 돈을 내서라기보단, 내일 순례를 위한 준비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닥다닥 붙은 고층 건물과 사무실에 숨이 막힐 때가 있었다. 탁 트인 황금 들판에 내 가슴도 트였다. 마치 어질러 놓은 책상 위를 말끔히 치운 듯했다. 밭은 색과 높이로 다양한 면을 이루었다. 밭이 채운 그 면상(面相)에서 포근했던 하루가 드러누으니 천장에 그려졌다. 또 다른 미래로 찾아올 현재의 단면이 코 고는 소리도 품는 밤이었다. 이제까지 걸은 길 중 최고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면을 제대로 세워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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