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로 걷다
일주일 지났다고 고새 는 건 '새벽잠 설치는 일'이었다. 도둑질도 하면 는다고 별 게 다 루틴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기보다 '루틴 자체가 적응하는 생물' 같았다. 8일차인 오늘은 로그로뇨(LOGRONO)에서 나헤라(NAJERA)까지 29.4KM 구간이다. 밥 먹고 사진 찍고 돌아다니다 보면 오늘도 얼추 30km다. 바람은 어제보다 쌀쌀 맞았다. 늦은 밤까지 내장에 눌러 담은 타파스를 핫팩 삼았다.
눈치 없이 해는 또 늑장이었다. 어둠을 업고 걷다 보니 뒤가 켕겼다. 날 선 바람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이래서 앞만 보고 가면 큰코다친다. 잔뜩 차려입은 해를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어찌 본단 말인가. '아침마다 뜨는 해'는 내게 '매일 새로운 해'로 개념이 바뀌었다. 해는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다고 했다. 내가 걸친 옷도 겉은 똑같을지언정 속옷 만큼은 매일 달랐다.
로그로뇨 시내외곽을 빠져 나갔다. 산미겔 공원을 지나 다리 건너 그라헤라 저수지까지 아침운동 하는 남성들이 많았다. 단체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젊은 열기가 그나마 찬공기를 막아 주었다. 자갈길을 걸어오다 포장도로를 걸으니 길을 내어준 조상에 감사했다. 피레네산맥에서 보던 소나 양도 이 길 한 번 걸으면 발에 흙 묻히기 싫을 듯. 포장도로는 흙길보다 확실히 지면반발력이 좋았다. 흙길에서보다 뒷발질을 덜 힘차게 해도 되었다.
지금 내가 편히 사는 건 먼저 닦은 선구자 덕분이었다. 모든 물건과 모든 상황이 그랬다.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란 '무(無)에서 유(有)'가 아닌 '유(有)와 유(有)의 결합'이기에. 인간은 그저 길을 걷고 경험을 쌓는 존재일 뿐, 세상을 컨트롤하는 자가 아닌 게다.
야고보 성인이 걸은 길에 노란화살표도 감동인데 가리비 표식 또한 포장도로다웠다. 가리비가 복주머니 같기도, 갓 쓴 할아버지 같기도 한, 나만의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세상이 좋았다. 감사와 오감은 페이스 조절에 특효약이었다. 나의 최대 적인 추위, 졸림, 배고픔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이런 게 사랑일까. 첫 눈에 반했다. 마주칠 때마다 가슴 뛰는 꽃이 생겼다. 모두들 그냥 지나치는데 그 앞에서 난 봉오리 터진 설렘을 추스렸다. 노랑, 보라, 빨강, 파랑 꽃을 스쳤지만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엉겅퀴였다. 메마른 땅과 하나 된 색, 꼿꼿이 선 여린 몸, 부드럽게 드러낸 가시얼굴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화려함으로 주목받기보다 후대를 위한 껍데기 인생이 엿보였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엉겅퀴는 죽어서 자태를 남겼다. 나는 갈색을 가장 싫어했었다. 내 얼굴에 받지 않는다는 타인의 말 이후로. 엉겅퀴는 내게 '나'를 쉽게 단정 짓지 말라는 끝인사를 건넸다. '남'과 '상황'에서도.
철조망 갓길을 지났다. 철조망을 보면 저 너머에 시선 두기 마련인데 철조망 자체에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끼운 것도 흐뭇했다. 어제는 다리가 빨강이더니 오늘은 파랑이었다. 파랑은 빨강보다 강렬했다. 우리나라 육교와 남모르게 비교 했다. 찻길을 건넜다. 바닥에 'STOP'이 크게 써 있었다. 드러누운 STOP은 세운 STOP보다 선명 했다. 일단 멈춰 심호흡을 하게 했다. 인생 들입다 내달리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시골길로 안내했다. '천천히'는 순례길에서 한참 떨어진 모퉁이 집까지 시선을 멈춰 세웠다. 굴뚝 안테나의 잔근육까지 보였다. 유명세에 거대한 목표보다 무심코 지나친 작은 것 하나가 위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라헤라봉까지 나름 오르막도 있고 짧지 않은 거리인데 역풍에 이동된 듯 힘이 들지 않았다. 위장과 다리는 반비례 했다. 위장이 비면 다리가 무겁고 위장이 가벼우면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어제 타파스 투어를 했으니 내 다리는 새털인 게다. 일주일만 하면 입이 뚫린다는 영어처럼, 일주일만 걸으면 다리도 뚫어뻥이 되나 보다. 수 년째 신경 거슬리게 했던 왼발도 일주일 지나니 내 다리 맞나 싶을 정도로 사라졌다. 왼쪽 고관절 이상으로 다리를 높게 못 들어 출근 때마다 왼발이 보도블럭에 걸려 누가 떠민 것처럼 휘청대기 일쑤였다. 삐그덕 대던 오른쪽 무릎 슬개골도 덜그락 대지 않고 부드럽게 슬라이딩 했다. 근육이 자란 건지, 연골이 닳은 건지 좀 더 걸어보자.
나바레테 마을. 예쁘면 다 인가. 어째 편하다 했다. 골목 골목에 계단까지 오르내리며 길을 또 헤맸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아줌마 눈엔 장바구니 든 여성이 보였다. 까미노 길을 물었다. 그녀는 스페인 말로 동네가 떠나갈 듯이 손짓 몸짓을 써가며 길을 알려 주었다. 그녀의 손가락 지휘봉대로 가니 첫 바(bar)가 보였다. 바는 성당을 거쳐 간다. 하도 춥고 배가 고파 배부터 채웠다. 그러니 순교자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또르띠야를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성당이 보였다.
다시 돌아가 '성모승천성당'에 들어갔다. 등 따시고 배 부른 직후라 그런지 십자가 지고 가는 예수님 눈빛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책, 수많은 문장 중 꽂히는 단 하나의 키워드처럼. 아들 키우는 엄마라서 아기 안은 성모상 앞에서는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초에 불을 켰다. 어제는 성당 앞에서 5유로를 줍더니 오늘은 가방 속 다 뒤져도 잔돈이라고는 초 값 0.5유로가 전부였다. 우연과 기적, 잘은 몰라도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 좋다.
어젯밤 짜디짠 타파스 투어를 거하게 치르고는 물을 안 챙겼다. 혀는 메마른 땅과 같고 입술은 썬텐을 했다. 포도밭은 줄기찼다. 신포도 쳐다보는 여우로 한참 걸었다. 앗, 땅에 한 송이가 떨어졌다. 주워서 허겁지겁 먹었다. 원래 더러운 인간이었는지 순례길이 결벽증을 씻은 건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이거늘, 흙 묻은 포도가 뭐 대수인가.
오늘 목적지인 나헤라까지 가는 길은 두 개였다. 다들 갈등인지 경로 표지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왼쪽은 돌아가는 정통길 <벤토사>, 오른쪽은 <나헤라>까지 직진코스 대안길이었다. 아침에 아스팔트 맛도 봤겠다, 그래도 왼쪽! 정통길은 시골길인 데다 바가 있다. 도로를 깔아 준 선구자보다 길을 먼저 밟은 선구자를 따르자! 직진코스에도 바가 있었다면 동공이 흔들릴 뻔 했다. 오른쪽을 택한 사람들이 많아 왼쪽은 마치 나를 위해 깔아 놓은 길 같았다. 살다 보니 빨리 가려다 돌아가는 경우가 참 많았다. 직진코스에서도 놓치고 지나친 게 많아 돌아가기 일쑤였다. 아름다움은 인생 우회로에 있었다. 길에도 전시작품이 있었다.
배꼽시계보다는 휴대폰시계에 입각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올드팝이 팡팡 터지는 곳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마당 현관까지 나왔다. 음악에 리듬 타니 반기며 라벤다꿀 한 숟가락을 건넸다. 직접 만든 꿀이라며 한창 설명하는데 또르띠야를 시켰다. 대신 직접 담근 술인 후르츠레몬비어와 함께. 기나긴 여정에 물 한 통 준비 안 했으니 뭐든 마셔야 했다. 파인애플비어도 소주잔에 담아 맛을 보여 주었다. 역시 리듬 아는 자 치고 센스 없는 사람은 없다.
후르츠레몬비어, "죽인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람 잡을 맛이었다. 애써 한 잔으로 끝내고 계산하는데 후르츠레몬비어는 돈을 받지 않았다(2.5유로). 들어올 때 댄스를 보여 준 게 이유란다. 빌리지 피플의 'Y.M.C.A.' 노래를 듣고 가만 있기가 더 힘들 텐데. 이왕 공짜인 거 술도 깰 겸 꿀 한 번 더 달라 했다. 여러 종류의 꿀을 통째로 주었다. 한결같은 센스쟁이. 한 숟갈 더 퍼먹었다. 아무래도 스페인 모든 음식이 까미노 천사인 듯.
술로 알딸딸, 꿀로 달달한데 그늘, 바람 한 점 없었다. 자연에만 심취하다 알코올까지 들이 부어 취기가 올라왔다. 다행이다. 길은 여전히 한적했다. 태양 때문에 뒤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갑자기 외국인 남성이 말을 걸었다. 스페인 말이라 ‘What’ 표정을 지으니 손가락으로 내 신발을 가리켰다. 언제부터 바닥을 이리 저리 쓸고 다닌 건가. 끈이 풀렸다. 정신줄도 같이 풀렸던 것. 다른 순례자들이 보여 준 30만원대 등산화가 부럽지 않았었다. 유독 끈이 잘 풀려 멈춰 서기를 반복한 10만원짜리 아식스 운동화가 오늘은 거추장스러웠다. 영어도 못하는데 같이 걷자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럼 그렇지. 잘생겼으니 됐지 뭐.
수평선보다도 멋진 지평선이 나를 에워쌌다. 드넓은 곳에 덩그러니 혼자, 행복한 고독 속에 파묻혔다. 혼자 잘 지내는 특기생인데 여기서는 자꾸 사치로 느껴졌다. 분에 넘치는 행복감일 터였다. 20대 신규 때부터 중년인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쏟은 상임이사님과 본부장님이 생각났다. 응원을 아낌없이 베풀던 20-30대 직원들도 떠올랐다. 해외여행은 옆집 이야기인 가족이 생각났다. 한 명 한 명에게 페이스톡을 눌렀다. 자연풍경을 들이밀었다. 동서남북으로 휴대폰 휘두르며 "잘 보이느냐" 소리만 지르다 끊은 것 같다. 그들은 기대 이상으로 감탄했다.
결심했다. <벤토사> 한 토막에도 이리 기뻐하는데 부지런히 실어 날라야겠다. 산티아고 풍경에 배달의 민족이 되기로 했다. 카메라와 걸음이 재바르진 않지만.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가 용기를 주었다. "시작하기 전에 두려우면 하지를 말라"고, "결심 했다면 두려워 말라"고. 큰 나무도 만나고 액자 같은 굴다리도 지났다. 꼬챙이 꽂힌 케익 땅도 보고 구석진 자리에서 남 모르게 뿜는 향기 꽃도 만났다. 전화에 담지 못 한 이야기는 카메라 셔터로 대신 했다. 돌아가는 길이기에 그리움과 설렘이 동행할 수 있었다. 때로는 돌아가다 무언가를 '얻어 걸리기'도 하지만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대가 없이 보상을 기대하지만, 뇌의 충동에 지배당하거나 일방적인 바람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Give and Take' 야말로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벤토사 길 역시 길고 오르내렸지만 힘들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일은 결과가 어떻든 힘들지 않았다. 어느새 <나헤라>에 도착했다. 산 주안 오르테가 다리를 건너니 오른쪽에 알베르게가 모여 있었다. 마을과 알베르게 모두 아름다웠다. 왼편은 바가 모여 있었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일찌감치 문 연 바로 향했다. 저녁식사로 샐러드를 시켰다. 세숫대야 만 한데 이 많은 걸 혼자 어떻게 다 먹나, 생각을 무시한 채 욕망은 또르띠야 들은 샌드위치를 외쳤다. 남은 건 포장해 달라고 말해 놓고는 나갈 때 인사는 "뱃 속에 포장해 가요"라니. 즉석에서 이리 맛있는 걸 먹으니 1200년 전부터 걸어 온 선구자들이 생각났다. 잘 챙겨 잡쉈나.
도로, 마을, 숙소, 음식, 갈고 닦은 순례길이 감사했다. 우회로와 직진코스의 갈림길에서 하늘은 왜 내게 직선코스 놔두고 돌아가는 길을 주었을까 생각했다. 돌고 돌아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인간은 그저 길을 걷고 경험을 쌓는 존재일 뿐, 세상을 컨트롤하는 자가 아닌 게다. 길이 내게 물었다.
"넌 누구의 선구자로 살 거냐"고.
"누구를 깨우는 사람이 될 거냐"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릴지 이제라도 기회가 되어 다행이다.
* 이 노래 듣고 안 흔들 자 어디 있을 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