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心)으로 이름값 지불

성당 주보 글

by 푸시퀸 이지


“이름이 뭐예요?”


산티아고 순례길, 메세타 고원에 들어서기 직전이었습니다. 마을 귀퉁이의 작은 성당(라 베가 데 라스 칼사다스)에서 만난 노수녀님이 제게 건넨 첫마디였습니다. “에메렌시아나”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이게 전부였고, 이어지는 안수와 목에 걸어주신 ‘기적의 패’가 다였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찰나는 성당을 나선 뒤 그날 밤까지 제 마음속에 장마를 몰고 왔습니다. 현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눈물은 그날의 사진을 다시 열 때마다 그치질 않았습니다. 전날 모두가 극찬하던 부르고스 대성당의 웅장함 속에서도 느끼지 못한 뜨거운 감정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전례단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저는 혹여 틀릴까 봐 ‘글자’를 읽기에 급급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순례길을 걷고 난 후, 이제는 주님이 무엇을 전달하시려는지 그 ‘맥락’이 가슴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마주합니다. 순례를 마치고 묵주 축성을 받던 날, 주임 신부님께서 “800km를 어떻게 다 걸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자연의 힘으로 걸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거대한 대자연에 압도되어 창조주 주님을 온몸으로 느낀 뒤 내뱉은 고백이었습니다. 그날 신부님의 강론 역시 “나는 피조물이고 당신만이 창조주이심을, 우리는 끝이 있는 존재임을 고백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동안 입과 뇌로만 읊던 사도신경의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고백이 미사 중에 입체적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1월, 저는 성마태오 성당에서 처음으로 영명축일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지난 27년간의 직장 생활은 저와 가족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2026년 1월, 저는 ‘이지(智)영’이 아닌 ‘이지(芝) 에메렌시아나’로서 축일을 맞이합니다. 조직 생활이 품은 돈과 명예, 권력을 벗어 던진 채, ‘가치’라는 새로운 제복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합니다.


이전 이름에 담겼던 ‘지혜(智)’는 피조물로서 하늘에 끊임없이 구해야 할 덕목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이름인 ‘지초(芝)’를 통해, 푸르게 나아가는 불로초의 마음을 되새깁니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에메렌시아나’와 대자연의 영원함을 제 이름이 불릴 때마다 느낍니다. 주님은 이지영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지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훈계하거나 훈수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메세타 고원 수녀님의 입을 빌려 저를 “에메렌시아나”라고 다정히 불러주셨을 뿐입니다. 그 부르심에 저는 “네,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눈물로 응답했습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회사, 세상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던 ‘이지영’은 이제 주님이 좋아하실 일, 그리고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이지 에메렌시아나’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름값 하며 산다’는 것, ‘(주님이) 부르는 게 값’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봅니다. 부디 저를 그 값어치 하는 도구로 써 주소서.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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