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일
- 다시 1일 -
마음이 무너진 지 100일째 되는 날
바다와 나란히 누운 내 안에
동해의 파도가 자리 했습니다.
파도가 말합니다!
내 몸이 부서지는 걸
겁내지도,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부딪혀라고
깨어 있으라고
멈추지 말라고
백년도 못 사는 인생에
그 어떤 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내 안으로, 더 깊은 내 안으로
도망치듯 방파제에 누운 나를
파도가 세차게 때립니다
파도가 만든 하얀 물거품이
다시 시작하라고 내게 준
내 유골 가루 같습니다
지난 9년의 시간은
나를 알아주고
격려해준 사람들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는 건 관계라고,
그 관계의 연결고리는 신뢰라고 믿으며,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난 9년 동안 정말 죽을 힘으로
시간을 건너왔습니다.
그러면서 내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 되었고
우리의 시간은 우리에게 신명을 주었습니다.
그 신명으로 우리는 버텼습니다.
그 신명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신명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우리는 더 신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신명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이상 없습니다.
이젠 우리는 없고 나만 있습니다.
그 나도 온전한 내가 아닙니다.
비록 모든 게 신기루가 된 지금이지만
더 이상 우리를 믿어 줄
더 이상 우리를 지지해 줄
리더가 없는 지금이지만
정말 싫지만
그래도
정말 그래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일상부터 다시 세우려 합니다!
9년동안 집에서 혼자의 시간을 견딘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보입니다
그 아이가 잃어버린 시간부터 어떻게 하든
보상하려 합니다.
그와 동시에 잃어버린 우리와
우리의 신명을 찾으려 합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가 있기에
우리를 믿어 준,
또 우리를 믿는 믿음이 있기에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한 번 해보려 합니다.
내 안의 파도가 나를 부숩니다
약했던 숨이 하얀 포말을 내 뿝습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나와 우리를 믿는 관계가 있는 한
설령 그 관계가 모두 없어졌다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놓았던 그 신뢰의 대교를
추억하며 숨길을 만들겠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파도가 밀어올린 오늘
나는 다시 살아보겠습니다,
아니 다시 살겠습니다!
비록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 연연치
않겠습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참회하고
더 많이 느끼면서!
설사 내일 또 내 삶이 다시 무너지더라도
오늘부터 저는 1일의 삶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