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느낌일기5)

다시 1일

by 이주형

느낌 일기

- 다시 1일 -


마음이 무너진 지 100일째 되는 날

바다와 나란히 누운 내 안에

동해의 파도가 자리 했습니다.


파도가 말합니다!


내 몸이 부서지는 걸

겁내지도,

두려워 하지도 말라고!

부딪혀라고

깨어 있으라고

멈추지 말라고

백년도 못 사는 인생에

그 어떤 일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고!


내 안으로, 더 깊은 내 안으로

도망치듯 방파제에 누운 나를

파도가 세차게 때립니다


파도가 만든 하얀 물거품이

다시 시작하라고 내게 준

내 유골 가루 같습니다


지난 9년의 시간은

나를 알아주고

격려해준 사람들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는 건 관계라고,

그 관계의 연결고리는 신뢰라고 믿으며,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난 9년 동안 정말 죽을 힘으로

시간을 건너왔습니다.

그러면서 내 시간은 우리의 시간이 되었고

우리의 시간은 우리에게 신명을 주었습니다.


그 신명으로 우리는 버텼습니다.

그 신명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신명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우리는 더 신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신명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이상 없습니다.

이젠 우리는 없고 나만 있습니다.

그 나도 온전한 내가 아닙니다.


비록 모든 게 신기루가 된 지금이지만

더 이상 우리를 믿어 줄

더 이상 우리를 지지해 줄

리더가 없는 지금이지만


정말 싫지만

그래도

정말 그래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일상부터 다시 세우려 합니다!

9년동안 집에서 혼자의 시간을 견딘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보입니다

그 아이가 잃어버린 시간부터 어떻게 하든

보상하려 합니다.


그와 동시에 잃어버린 우리와

우리의 신명을 찾으려 합니다.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가 있기에

우리를 믿어 준,

또 우리를 믿는 믿음이 있기에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한 번 해보려 합니다.


내 안의 파도가 나를 부숩니다

약했던 숨이 하얀 포말을 내 뿝습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나와 우리를 믿는 관계가 있는 한

설령 그 관계가 모두 없어졌다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놓았던 그 신뢰의 대교를

추억하며 숨길을 만들겠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파도가 밀어올린 오늘

나는 다시 살아보겠습니다,

아니 다시 살겠습니다!

비록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 연연치

않겠습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참회하고

더 많이 느끼면서!


설사 내일 또 내 삶이 다시 무너지더라도

오늘부터 저는 1일의 삶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