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비어 간다!
- 5월 학교는 -
"아빠, 학교 너무 재미없어!"
"선생님, 학교 너무 재미없어요!"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참으라고만 했다.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더 자극적인 것으로 학생들을 일시적으로 달랬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재미"를 오해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오해가 진실처럼 되었다.
"왜, 재미가 없어? 니가 생각하는 재미는 뭐야?"
"재미는 당연히 즐거움이지. 그런데 교과서만 읽는 학교는 재미없어. 그리고 선생님도 못하는 걸 왜 우리 보고는 하라는 거야."
다시 그 즐거움이 뭔지에 대해 물어보려다가 말을 거두었다.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즐거움을 미학에서는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그것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감각적인 즐거움과 깨닫는 즐거움이다. 물론 생활 속에서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말하는 즐거움과 재미는 감각적인 것이다. 이미 컴퓨터 게임이 일상이 된 아이들에게 그 게임을 능가하는 감각적인 즐거움은 없다.
이미 자극적인 감각의 맨 꼭대기에 있는 학생들은 그 감각을 대처할 것을 현실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의 끔찍한 청소년 범죄이다. 그리고 찾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를 포기하거나, 자기 방으로 숨어버린다.
만약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게임을 무제한으로 제공한다면, 학생들은 학교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를 재미없어할 것이다. 왜, 학교이니까!
되려 학생들은
"학교에서 뭐 하는 거예요, 공부도 안 하고."
하며 교육청이나 언론에 신고, 제보할 거라고 큰소리 칠 것이다.
지금의 학교는 그런 곳이다.
학교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학교가 신념과 철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신념과 철학이 죽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비어 간다.
아이들의 자리가 비어 간다.
아이들의 마음이 비어 간다.
아이들의 희망이 비어 간다.
물론 개똥철학, 왜곡된 신념만 있는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비어 간다.
철학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극적인 재미와
이기적인 비교만이
자리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또 비어 간다.
"내 시간 뺏기기 싫어요,
왜 나만 봉사해요!"
"체험활동 대신 문제집 풀라고 했어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언하듯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
과연 우리는 이 학생(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또 어떤 반응을 해 줄 수 있을까!
"그래 맞다. 시험 점수가 중요하지 그깟 봉사가 뭐가 중요하겠어."
아니면
"진짜 공부는 말이야. 희생, 배려를 실천하고------?"
로 시작하는 교과서적인 설교!
그래도 한 때 학교는 아이들에게 큰 즐거움과 재미를 주었다. 학생들은 학교의 즐거움을 알고, 스스로 그 재미를 찾았다. 그 재미는 나는 물론 우리 모두의, 나아가 지구의 행복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다. 그 꿈이 있었기에 학생들은 극도의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그 꿈의 시작은 헌신적이고, 공동을 위한 철학정신이 바로 선 교사였다. 그런 교사는 학생들에게 롤모델이었다. 학생들은 그런 교사를 보면서 꿈을 알았고, 또 꿈을 배웠으며, 더 나아가 더 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지금 학교에는 공동을 위한 신념과 철학을 말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아니 교사에게 우리를 위한 신념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 줄 학교가 없다.
자극적인 재미와 이해타산, 극단적인 자기중심만 존재하는 학교에 그런 교사만 존재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학생들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비어 간다는 것이다.
오늘도 학생들은 학교와 교사의 친절한 가면 아래에서 비어 간다.
특히 2023학년도 첫 정기고사가 끝나는 5월,
학교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더 많은 학생들이 비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