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기억 2

맡기는 삶(숲 숨)

by 이주형


마중 기억 2

맡기는 삶 (숲 숨)


간혹 마음을 툭 건드리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때론 하염없이 펑펑 울기도 한다.


며칠 전 아침, 책을 읽다가 그만 눈에 힘이 풀려버렸다. 놀랐다. 시간에 맡길 뿐 닦는다고 닦아지지 않았고, 막는다가 막아지지 않았다. 그냥 아침 비오시듯 그렇게 한동안 비와 함께 울었다.


나를 그렇게 만든 말은 "다시 태어나다"이다. "다시"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또 한참 비가 내렸다.


그러다 한 편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황인숙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첫 행)


시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지! 분명한 건 다시 태어나서 또 교사를 해야 한다면 수백만 번은 다시 생각할 거라는 것이다.


한 참을 비에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있는데, 라디오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내가 내 힘으로 사니까 힘들지요!"


어느 목회자의 말씀이다. 그 말씀에 나는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맡기는 삶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는 지금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 안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숨이 달랐다.


"맡기세요, 그냥 힘든 것은 맡기고 힘나게 사세요! 맡아 주신다잖아요. 어떤 고난도, 어떤 슬픔도 다 받아 주신다잖아. 그냥 맡기시면 되잖아요!

그분께요!

그리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힘내서 다시 사시면 되잖아요!"


온종일 비내리시는 그날 내 마음에도 진종일 비가 내렸다. 눈물은 마음의 언어다. 내가 내 마음의 말에 귀 닫고 살아온 시간이 울하기도 하고, 너무 서러웠다.


위로와 위안, 그리고 용기가 뭔지를 몸과 마음이 알았다. 말씀을 믿고 살지는 않지만, 말씀의 힘을 오랜만에 느꼈다. 몇 년 전 학교와 학생, 마을을 살리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신부님 앞에 앉았던 것이 생각났다.

말씀도 모르면서 그때는 신부님께 온전히 맡겼다. 그리고 해야 일을 했다, 즐겁게, 신명 나게!


가을을 건너는 나무가 힘 있는 이유를 알았다.


나무는 자신의 힘으로 살기보다 하늘과 땅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산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더 분명히 알고 그 일에 집중한다. 이게 나무가 천년을 사는 이유임을, 그 이유를 내 안에 들이는 가을이다.


말씀과 나무가 내 기억에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다시"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