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상처투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테러 때문에 큰 슬픔에 잠겼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에티오피아, 미국 등이 자연이 보내는 엄중한 경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치 거울이라도 비춰 놓은 것 같이 전 세계는 놀란 토끼가 되었다. 강진과 화산폭발, 18호 태풍 차바와 괴물 허리케인 매슈! 이들은 어디 한 번 막아 볼 테면 막아 보라는 듯이 작정을 하고 인간을 실험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대결? 인간의 방패는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
개발 지상주의 늪에 빠진 인간들은 그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착각하며 살았다. 자신들이 계획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착각에 빠진 인간은 자연을 무참하게 파헤쳤다. 그 결과 인간은 편리(便利)를 얻었다. 그 편리는 중독(中毒)을 낳았고, 중독은 다시 내성(耐性)으로 이어졌다. 내성이 생길 대로 생긴 인간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인간은 자연을 더 심하게 파헤쳤다.
그런데 파헤쳐진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은 몰랐다, 자연이 파괴되는 것에 비례하여 자신들도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자기부정은 자연보다 자신들을 더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 힘은 인간에게서 인간성(人間性)을 지워버렸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많은 인간에게는 인간성이 없다. 언론은 인간성 상실이 불러일으킨 끔찍한 사건 사고 소식을 매일 인간에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받는 충격은 잠시 뿐이다.
내성 강한 인간은 그 충격을 이겨내는 처방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망각(妄覺)이다. 그 망각은 충격의 강도를 계속해서 높였다. 이제 인간은 웬만한 사건 사고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는다. 그런 인간에게 역사는 더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는 단순한 물리적인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했다. 이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는 아름다운 인생이 있었고, 그들 때문에 역사는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이젠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흐르고 있다. 왜 그렇게 단정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중에서 최소한의 기본(基本)이라도 지켜지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 사회는 기본이 없는 사회다. 정치, 경제, 교육 등 그 어디에도 기본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말만 하는 정치에서 우리는 절대 기본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볼모로 잡고 진행 중인 여러 파업(罷業) 현장에서도 우리는 기본을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학생 인권(人權)과 교권(敎權)을 두고 싸우는 교육계에서는 기본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기본이 가장 우선 시 되어야 할 가정, 국방, 스포츠 등에서 제일 먼저 기본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기본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기본이 바뀌었다고, 그 바뀐 기본은 바로 돈이라고, 철도가 멈춰 선 것도 돈 때문이고, 정치가 섞은 것도 돈 때문이라고.
저성장과 경제 불황에 빠진 이 나라를 다시 발전의 대열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거울을 비춘 것처럼 사회 모든 분야가 똑같이 어렵다.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갈 색동다리를 놓아야 한다. 더 이상 이기적인 마음으로 만든 부실한 색동다리는 안 된다. 우리 민족 모두가 희망으로 건너갈 색동다리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본 중 기본인 공자의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君子 求諸己(군자 구제기), 小人 求諸人(소인 구제인). (군자는 자신에게서 과실이 있는지를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그 잘못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