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생의 버킷리스트

이해인 ‘10월의 기도’

by 이주형

어느 학생의 버킷리스트

칼럼 다시 읽기 (21.10.11)

- 이해인 ‘10월의 기도" -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퇴근하는 내 귀를 의심케 하는 요란한 소리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들렸다. 나는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고, 그다음에는 자정이라는 시간을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분명 자정을 몇 분 남기지 않은 시간이었다.


혹여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가 해서 집 대신 놀이터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나는 상대가 놀랄까 봐 인기척을 내며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와 인접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하나둘 불을 켜고 베란다 앞으로 모였다.


다행히 놀이터에서 나는 소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일상 수준의 소리만 들렸다. 내가 마주한 사람은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나를 보자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놀이터를 떠났다. 그들은 죄송함을 알고 있었다. 떠날 때는 주변 정리까지 했다. 그래서 그들이 더 궁금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갔다. 학생들이 향한 곳은 집이 아닌 아파트 인근의 독서실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있었다. 괜한 미안함에 학생들이 들어간 독서실 입구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독서실은 학생들로 문전성시였다.


학생들이 떠나고, 놀이터는 자정의 모습을 되찾았다. 나는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놀이터 벤치에 잠시 앉았다. 괜히 학생들을 독서실로 몰아넣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학생들이 남긴 죄송하다는 말에서 나는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학생들은 나에게 큰 화두를 던졌다. 그 화두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죄송한 사람은 누구인가’이다.


집으로 가려고 일어서려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손을 짚은 벤치에서 종이 한 장이 내 손을 따라왔다. 활짝 펼쳐진 종이에는 큰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정말, 정말 꼭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비록 어두웠지만,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아닌 종이에 적힌 글 전체가 한눈에 확 들어왔다. 글들은 살아서 외치고 있었다. 그 외침에 마음이 먹먹했다.


“친구랑 얼굴 보며 마음껏 이야기하기! (중략) 교과서가 아닌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기!”


물론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다. 버킷리스트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기원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평범한 일들! 하지만 지금은 당연함을 읽어버린 시대! 시대를 이렇게 만든 죄송함의 당사자인 우리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학생의 버킷리스트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연함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시 한 편을 바친다.


“(……)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 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

10월에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더욱 넓은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살게 하시고

조금 넉넉한 인심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 주소서”

(이해인 ‘10월의 기도’)


※ 경북매일신문 2021년10월11일 연재글


<2023년10월7일 오늘 생각>


학생들에게 여전히 미안합니다,

그들의 배경이 되어주지 못해서!

그들이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해서!

대한민국은 또 시험기간입니다!


나의 버킷리스트를 어봅니다!

"를 슬픔에 맡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