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마음이 뭉클해지는 걸 가장 잘 아는 건 눈이다. 눈은 신호수답게 마음의 상태를 나에게 가장 빨리, 그리고 너무도 정확하게 전달한다.
일 하다가도 일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일의 밀도가 낮아지거나, 심지어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것도 눈이다.
그 상태를 무시하고 지나치거나, 그 상태를 방치하면 저 마음 깊은 곳에서 보낸 더운 숨이 훅하고 나를 때린다. 그러면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은 나를 송두리째 뽑거나,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꺾어버린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포기(抛棄)밖에 없었다. 모든 걸 포기하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극단적 선택을 이해한 적도 수없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눈이 가닿은 곳에 내가 먼저 가 있은 적이 있었다. 그곳은 개망초가 일가를 이룬 잡초지였다. 나를 조르던 손이 개망초를 휘어잡고 있었다. 나를 뽑을 힘이 개망초를 뽑고 있었다. 눈물에 갇혀 뿌연 세상밖에 보이지 않던 눈에 땅의 속살이 들어왔다. 개망초가 없어지고 잡초지가 정원의 모습을 갖출 때 과호흡으로 숨밖으로 넘어가려던 숨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미안해, 얘들아!"
모음이 만드는 흐느낌밖에 없던 입이 완전한 문장을 만들었다. 땅이 제모습을 찾을수록 포기(抛棄)만 무성하게 자라던 마음에, 포기가 뽑혀나간 자리부터 조금씩 새로운 말들이 싹을 틔웠다.
그러면 눈은 나를 다시 내 자리로 이끌었다. 내 몸은 눈의 안내로 내 자리에 앉아 중단된 일을 이어갔다.
그러기를 서너 번, 눈은 골든타임이 찾아오면 나를 어김없이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렇게 가꾸기 시작한 정원이 이제는 학교의 분위기는 물론 학교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물론 나도 바꾸어 놓았다.
눈은 내 골든타임을 잘 알고 있다.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눈은 나를 정원으로 데리고 간다. 아니 이젠 골든타임을 떠나서 없는 시간도 만들어 정원으로 간다.
혹시 숨이 더운 사람이나, 숨 넘어가는 시간의 끝에 서 있는 이가 있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정원으로 가보시라! 그러면 정원의 숨으로 새로운 숨을 마중할 수 있다.
정말 모든 여건이 안 되면 내 앞에 작은 화분이라도 이주시켜라. 그러면 그 화분은 분명 새로운 화분을 불러 올 것이며, 그러면 그곳이 곧 데이블 정원이 될 것이다.
삶의 정원(定員)을 두지 않은 정원(庭園)에서의 시간은 매시간이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