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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형 Dec 12. 2024

나무는 동사다 (3)

나무 허물

나무는 동사다 (3)

- 나무 허물 -


나무도 허물을 벗는다. 뱀이나 매미 등 허물을 벗는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나무는 자신의 허물을 안으로 벗는다. 그리고 그것을 안에서 둥글게 둥글게 간직한다.


그 허물에는 봄부터 겨울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무가 한결같을 수 있음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절대 부정하거나 잊어버리지 않고 속으로 간직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허물 속에는 허물도 있음을 안다. 그 허물 앞에서 나무는 언제나 겸허하다. 그 마음으로 나무는 매일 뿌리에서부터 우듬지까지 지난 이야기를 되새김한다.


나무는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가장 안쪽에 저장한다. 나무는 오래된 이야기에 더 마음을 기울인다. 그 오래된 이야기가 중심을 잡을수록 나무는 더 단단해지면서 유연해진다. 그 유연함이 나무를 키운다. 나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이 유연함 때문이다.


나무가 조급하지 않고 자신의 리듬대로 움직이는 것 또한 지난 이야기에서 다음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다. 나무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 하나는 경거망동이다. 나무는 바람 한 잎 들일 때도 신중하다.


그 신중함으로 나무는 매일 하늘을 이고 지구를 돈다. 나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나무가 지난 곳에는 나무의 숨이 길을 낸다. 그 길 또한 처음 있던 곳의 모습을 헤치지 않고 그곳에 동화된 모습이다.


허물 가득 한 사람 세상에 나무는 자신의 허물을 보라며 오늘도 안으로 허물을 벗으며, 허물 속에 허물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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