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학생 시점
- 1인칭 학생 시점 -
요즘 모든 학교는 흡사 거대한 채용 박람회장 같다. 새로운 선생님을 모시기 위한 각 학교들의 채용공고가 교육청 채용정보 방을 도배하고 있다.
뽑는 숫자는 적게는 한두 명에서 많게는 20명을 훨씬 넘는 학교도 많다. 작은 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그 숫자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한 때 기간제 교사 자리가 참 귀하던 때가 있었다. 나 또한 그 자리를 구하기 위해 시공간을 초월해서 이력서를 넣었고, 서류 합격 전화를 받을 땐 정말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전화기 너머로 감사 인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간절함이었다. 직업에 대한 간절함보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간절함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음에 대한 간절함이었다.
그렇게 만난 학생들은 남달랐다. 마치 학생들도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난 학생들과의 시간은 남달랐다. 그 남다른 만남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때를 생각하고 지금을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바뀌었다. 어느 학교는 정교사보다 기간제 교사가 더 많은 학교도 있다. 정교사 뽑기보다 기간제 교사 뽑기가, 아니 모시기가 훨씬 더 어려운 시대다. 각 학교마다 기간제 교사 모시기 경쟁을 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 풍경은 교육청 채용정보 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월 중순이 지나면 각 학교에서 올리는 채용 공고 뒤에 숫자가 붙기 시작한다. 2차 공고, 3차 공고 등. 심지어 채용을 포기하는 학교도 있다. 교육청에서는 일선 학교의 어려움을 알고 2차 공고 후에도 지원자가 없으면 퇴직교원을 채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요즘은 합격 통보를 했다고 해서, 아니 합격 채용 서류를 받았다고 해서 그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3월 신학기가 되어서 수업을 시작할 때까지는 학교 측에서는 절대 안심할 수가 없다. 개학 전날에 채용을 포기하는 일도 더문 일이 아니다.
좀 더 나은 근무 환경의 학교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당연함에 학교는 극도의 불안감에 빠진다. 합격을 통보한 전화번호로 학교에 다시 전화가 오면 그것은 100%로 다른 학교에 합격해서 채용을 포기하겠다는 전화다.
이제는 학교가 기간제 선생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제 교사가 학교를 선택하는 시대다. 그래서 이직률이 높은 곳 중 한 곳이 학교다.
다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진짜 아픈 이유는 학생 때문이다. 최근 채용 면접에서 한 질문이다.
"학생이 선생님께 받는 상처 중 가장 큰 상처는 무엇일까요?"
차별, 불공평, 불신, 무관심 등 여러 말이 나왔다. 역시 다 맞는 말이다. 면접 끝에 어느 학생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기 초 어느 선생님께서 유난히 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이 있다며 교장실로 찾아왔다. 자신은 최대한 마음을 열고 학생에게 다가가지만 학생은 마음을 전혀 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학생을 교장실로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어보았다.
학생과 이야기하는 내내 나는 죄인이 되었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고 있음을 알았다. 학생이 말했다.
"교장 쌤! 이번에 새로 오신 쌤들도 곧 또 가실 거잖아요. 괜히 친해 봤자 가실 거면서 왜 친한 척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쌤은 다른 데 가시면 그만이지만, 남아 있는 우리는요!"
학생의 말에는 섭섭함이 가득했다. 정확히 말해서 섭섭함을 넘어 서러움, 원망과 분노 등이 넘쳤다. 내가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 말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남들은 방학이라고 좋겠다고 하지만 1년 중 가장 괴로운 달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1월과 2월이다. 어제 또 합격 통보한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가기로 했습니다."
채용공고를 다시 내면서 환청이 들렸다. 3월 개학식도 하기 전에 교장실로 뛰어와 쾌재를 부르며 외칠 어느 학생의 말이!
"교장 쌤! 보세요. 제 말이 맞았죠. 우리를 두고 가셨잖아요!"
과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다 시계를 봤다. 새벽 4시 14분. 3월이 또 하루 앞당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