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수기 4

같은 학교, 다른 교무실 (下)

by 이주형

독일 연수기 4

같은 학교, 다른 교무실(下)


"한국에는 컴퓨터가 없으면 학교 업무가 마비됩니다. 컴퓨터 없이 어떻게 학교 업무를 처리합니까?"


잠깐의 쉬는 시간에 독일 선생님들과 즉석 대화 시간이 마련되었다. 궁금함이 가득한 어느 교장 선생님이 빠르게 질문하였다. 모든 연수생의 관심이 질문이 전해진 독일 선생님께로 집중되었다. 그런데 독일 선생님께 질문이 전해지기 전에 가이드가 먼저 말했다.


"저는 교장 선생님께서 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 이해합니다. 물론 통역을 할 겁니다. 그런데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아마 이 선생님은 지금 하신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이드의 암호 같은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연수생 모두의 호기심 지수는 최고에 달했다. 독일 연수 중 가장 최고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개인행동을 하지 않고 가이드의 답만 기다렸다.


여러 번의 해외연수 중 질문과 답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빠르고 정확한 소통을 하는 가이드라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래서 연수단은 금방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 가이드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양한 표정, 더 다양한 추임새와 함께 독일선생님과 가이드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가이드의 시선이 연수단으로 돌아왔다. 약 10분 정도를 연수단은 아주 흥미로운 연극을 보듯 숨죽인 채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관람객의 입장으로 보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이드의 입이 열렸다. 표정에서 먼저 읽을 수 있는 문맥은 자기는 최선을 다했지만 답은 먼저 이야기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음!"


잠시 침묵이 흐르고, 드디어 가이드가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입을 열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 학교에는 없는 상황을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답변 또한 상황을 가정한 답변이었기에 독일 선생님께서 답변하시기가 힘드셨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더 이해하지 못하는 쪽은 연수단이었다. 이곳이 아무리 독일이어도 같은 학교인데 어떻게 상황이 다를 수 있는지 연수단은 순간 집단 혼돈에 빠졌다. 그 혼돈은 갑갑증으로 이어졌고,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은 한숨으로 표현되었다.


수업 종이 울리고 독일 선생님은 모두 수업에 들어갔다. 독일 학교 교무실엔 집단 멘붕에 빠진 우리 연수단과 우리를 달래려는 가이드의 의미 없는 위로만 남았다.


분위기의 심각함을 감지한 독일 교장 선생님께서 티타임을 제안하셨다. 갑갑한 마음에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우리 연수단은 커피를 물처럼 마셨다.


가이드의 마지막 말이 지금의 상황에 마침표를 찍었다.


"독일에서 선생님은 오로지 학생 지도에만 전념합니다. 물론 가벼운 행정 업무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행정 업무는 행정 부서에서 합니다. 그러니 독일 선생님 앞에 행정 업무를 위한 컴퓨터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들고 다니시는 컴퓨터 또한 행정 업무용이 아니라 수업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흐르고, 다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신 독일 선생님들은 역시 서로 모여 이야기를 하였다. 그 모습에는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어떤 억지스러움도 없었다.


컴퓨터와 행정 업무를 걷어낸 독일 교무실에는 그렇게 이야기가 살아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학교에 출근한 첫날,컴퓨터의 포로가 된 교무실 모습에 독일에서 경험한 두통보다 훨씬 더 심한 두통이 왔다. 그 두통이 겨울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6학년도 교육과정을 짜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도 교무실에서 컴퓨터와 가림막을 치우면 교육이 살아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