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머니 언어 집

밥 사전

by 이주형

어머니 언어 집

- 사전 -


"천천히 먹어라!"


고향집 밥상 앞에만 앉으면

어머니께서는 반찬을

올려주시듯 늘 이 말만

하십니다


당연함에 길든 입에는

밥의 온기를 잊듯

부끄러움도 잊고

생쌀 같은 퉁명함만

가득 합니다


하지만 50년 넘어서

그 말의 의미를 안 건

서둘러 밥 한 술 뜨고

급하게 일어서는 나를

물끄러미 보시는 어머니의

빈 눈을 본 다음입니다


모든 것이 빠져나간

그 눈에 마지막으로 담긴

그것은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는 팔순 노모의 마음이

지은 언어였습니다


몇 주만에 찾은

고향집 밥상에는

오늘도 어머니의 그리움이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을

넘치게 합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어머니의

그리움에도 숟가락은 멈출 줄

모르고 밥그릇은 금세

비워집니다, 그때


나직이 들리는 한 마디


"좀 천천히 먹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무정한 등짝을 갈기는

설산 바람이 사정없이

들어옵니다, 어머니는

다시 나를 나으시듯

온몸으로 그 바람을 막고

계셨습니다


밥은 어머니의 모든

시간과 마음이 담긴

세상에 없는 어머니만의

언어 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