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를4세가 발견한 신비의 온천
까를로비 바리는 아들을 보러 프라하까지 오신 어머니를 위해 휴양을 즐기러 계획하고 간 곳이다. Karlovy Vary를 직역하면 까를왕의 온천으로 까를왕이 사냥을 나갔다 부상당한 사슴이 온천수에 낫는 것을 보고 자기 이름을 붙여 만들어진 곳이다. 동양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유럽인들에게는 휴양지와 국제 영화제로 많이 알려져 있다. 운이 좋게도 마침 국제영화제 기간이라 까를로비 바리를 제대로 느끼고 올 수 있었다.
항상 기차를 타고 다녔지만 카를로비 바리는 버스로 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에 체코의 고속버스 격인 Student Agency(스튜던트 에이전시)를 타고 갔다. 스튜던트 에이전시는 체코의 대표적인 고속버스 회사로서 비행기처럼 각 자리에 영화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화면과, 스튜디어스 그리고 무료 커피까지 제공되는 버스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편해서 체코에 있는 동안 자주 이용했다. 까를로비 바리 까지는 대략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오랜만에 어머니와 이러저러한 얘기도 나누고 서쪽 보헤미아 지역으로 향하는 바깥 풍경을 보며 가니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느낌이다.
카를로비 바리는 지금에야 이렇게 기차와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이 잘 연결되어있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과거 교통수단이 마차밖에 없던 시절, 온천 여행은 그 당시의 신분을 상징했다. 평민들은 상상하지도 못했고 귀족이나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만 치료차 들리는 고급 휴양지였다. 특히 예술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곳이었는데, 베토벤, 쇼팽, 모차르트와 같은 음악인들부터 괴테, 푸시킨과 같은 작가에 이르기 까지, 치료나 환기 차원에서 많이 다녀갔다. 그래서 과거에 화려하게 지어진 건물이 많이 남아있어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이다.
과거서부터 유명한 고급 휴양지다 보니 그간 갔었던 그 어떤 근교보다 도시의 규모가 컸다. 버스정류장에서 시내까지는 20분정도 걸었는데, 마침 국제 영화제 기간이라 관광객이 프라하에 버금갈 정도로 북적북적했다. 참고로 이번 까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2015년)에는 한국 영화도 초청을 받아 다른 나라의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비록 모르는 영화였지만, 동양인 하나 없는 이곳에서 크게 프린트된 한국 영화 포스터를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어머니와 호텔에 짐을 풀고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도 여행하기 딱 알맞아 온천을 즐기러 천천히 걸었다. 온천을 찾아가면서 어머니께 까를왕이 이곳을 발견하게 된 일화를 소개시켜드렸다.
과거 중세유럽시대에는 사냥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자 귀족들의 취미였습니다. 보헤미안의 왕이자 로마황제였던 까를4세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그는 집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사냥으로 풀곤 했는데, 프라하에서 가까웠던 Karlštejn(까를슈테인)과 Křivoklát(크르지보크라트)의 숲에서 사냥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ore mountains(에르츠 산맥) 아래있는 Loket성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업무가 끝나자 성의 영주가 왕에게 사냥을 나갈 것을 청했습니다. 왕은 기뻐 이를 받아 들였고 그들은 동이 틀 무렵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어스푸름한 새벽에 사냥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소득 없이 정처 없이 숲을 헤맸습니다. 왕의 시종과 사냥개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사냥감을 추적했지만 찾지 못하자 왕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중천에 이르기 시작한 시간, 사냥꾼으로 나선 하인 앞에 갑자기 거대한 수사슴이 나타났습니다. 수사슴의 뿔은 마치 왕관과 같았고 거대한 몸집은 빛나는 털로 덮여있었습니다.
‘이 수사슴은 왕을 위한 사냥감이다!’ 라고 생각한 하인은 즉시 왕에게 가서 아뢰었습니다. 까를왕은 이미 멀리서 보고는 사냥감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그의 개를 풀어 왕을 돕도록 했고 그들은 수사슴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사슴의 힘은 마치 마법과 같아 그의 발 구름 한 번에 발밑에 있던 돌이 산산조각 날 정도였습니다. 그 순간 왕의 기수가 그의 말을 몰고 수사슴에게 돌진하여 절벽의 끝으로 내몰았습니carlsbad다. 까를왕과 치열하게 싸우던 수사슴은 돌연 날카로운 경사의 절벽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사냥개가 도약해보았지만 이미 수사슴은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왕의 신하들이 말을 타고 찾기 시작했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울음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찾지 못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져가고 안개가 산을 메우기 시작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말을 돌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산이 가팔랐던 탓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천천히 내려가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소리를 따라 절벽을 내려갔습니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그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구름 속에 있는 듯, 자욱한 안개 안에서 밝게 빛나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런 굉장한 곳이 다 있다니!” 까를왕이 감탄을 하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이런 굉장한 온천을 본 기억이 없다. 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의 나라에 사람을 낫게하는 온천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온천은 그런 능력이 있을 것 같구나!”
까를왕은 신하들에게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얘기를 하고는 본인이 직접 온천수에 몸을 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가지고 있던 오래된 병이 나은 것을 느껴졌고 왕은 곧 자신이 했던 말에 만족하며 1350년 이곳을 독어로 bathroom을 뜻하는 bad를 붙여 Carlsbad, 체코어로 Karlovy vary라 명명했다.
지금의 카를로비 바리의 시청은 전해져오는 옛 이야기에서 까를왕이 몸을 담궜던 바로 그 온천 위에 지어졌고, 거대한 수사슴이 뛰어올랐던 절벽은 현재 Jeleni skok(사슴의 도약)이라고 불리며 거대한 수사슴 동상이 세워져있습니다.
이야기 마지막에서 알 수 있듯, 이렇게 온천을 발견하게 된 까를왕은 이곳이 맘에 들어 자신의 이름을 넣은 지명을 만들었다. 또한 이곳을 찾게 해준 사슴은 동상으로 만들어져 현재 까를로비 바리의 상징으로서 마을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위에 세워져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까를로비 바리의 온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까를로비 바리의 온천은 우리가 아는 온천과 조금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온천은 온천수에 몸을 담가 피로를 푸는 게 목적이지만, 여기는 특이하게도 온천수를 마셔 몸을 낫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까를로비 바리 군데군데에는 온천수를 받아 마실 수 있는 장소가 존재한다. 이를 체코어로 kolonáda(콜로나다), 영어로 colonnade(콜로네이드)라 하며, 카를로비 바리에는 수많은 곳에서 온천이 나지만 현재 약수로 사용되는 콜로나다는 총 12개가 있다. 그중 유명한 곳은 4곳이다.
1. Sadová kolonáda(Park Colonnade)
사도바 콜로나다는 정상적인 루트로 까를로비 바리에 들어온다면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온천이다. 바로 옆에는 드로브작 공원이 있어 경관도 예쁘고 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Snake Spring으로 온천수가 나오는 부분이 뱀의 형태를 하고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2. Vřídelní kolonáda(Hot Spring Colonnade)
Vřídlo(브르지들로)는 까를로비 바리의 상징이라 할 정도로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기본적으로는 로컬 스파에 이용되는 수원지이자 미학적으로는 가장 높이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곳으로 그 광경이 일품이다. 72도의 뜨거운 미네랄 온천수가 12미터의 높이로 1분마다 약2000리터의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브르지들로의 솟아오르는 온천수는 직접 먹진 못한다. 대신 이곳에는 각자에 맞게 온도별로 나오는 곳이 정해져있어 본인에 맞게 온천수를 섭취하면 된다.
3. Tržní kolonáda(Market Colonnade)
트르즈니 콜로나다는 까를로비 바리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가이드북이나 여타 까를로비 바리를 홍보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다. 옛날 이야기에 따르면 까를4세가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된 온천으로, 이곳에는 ‘까를4세의 온천(The Charles IV Spring)’이라 이름 붙은 곳과 이외에도 The Market Spring과 The Lower Castle Spring가 함께 있다.
4. Mlýnská kolonáda(Mill Colonnade)
믈린스카 콜로나다는 까를로비 바리에서 가장 긴 콜로나다로, 악천후를 대비에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지어졌다. 이곳 역시 온도 별로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다른데, 천천히 걸어 다니며 하나씩 시음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인적으로는 높은 온도의 온천수가 그나마 먹을 만했다.
이처럼 각 콜로나다에는 관광객들이 직접 온천수를 마실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온천수를 마시기 위한 컵만 준비하면 되는데, 온천수를 마시기 위한 이곳만의 특이한 온천수 컵이 있다. 카를로비 바리의 특산품 중 하나인 온천수용 컵은 Lázeňský pohárek(라젠스키 포하렉)이라 하며, 콜로나다 근처의 상점에서 100~300kc내로 구입할 수 있다. 디자인과 크기가 모두 달라 고르기 쉽지 않은데, 우리는 관광객이고 깨지기 쉬운 컵이니 기념품정도의 조그마한 컵으로 고르도록 하자.
참고로 체코어가 된다면, 까를로비 바리 들어오는 길에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기를 추천한다. 진찰을 받게 되면 병원에서는 그 사람의 상태를 파악하여 어느 장소에 있는 온천수를 얼마만큼 마시면 되는지 소견서를 써준다. 사실 하루 만에 앓고 있는 병이 낫거나 호전이 될 일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본인에게 맞는 온천수를 음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아쉽게도 체코어는 정말 기초밖에 하지 못하는 까닭에 그냥 관광 목적으로 하나하나 마셔보기로 했다. 온천수를 마실 수 있는 대표적인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온천수가 나오는 식수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되어있다. 처음에는 그저 많은 사람이 나눠져서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놓은 줄 알았는데, 그런 이유보다는 각 식수대에 따라 온천수의 온도가 다르다. 드디어 컵을 하나 사고 맛을 보기 위해 온천수를 담아 한 모금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몸에서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철분 성분이 많아서 그런지 피맛 그대로였다. 더군다나 따듯한 온천수라 정말 피를 먹는 느낌이었다. ‘치료를 위해서는 이 온천수를 몇 리터를 마셔야 한다는데...’ 정말이지 못할 ‘짓’ 같았다. 한 번쯤은 경험으로 마셔볼 순 있지만 정말 두 번째 부터는 손이 가질 않았다.
온천수에 실망을 하고는 국제 영화제를 즐겨보기 위해 움직였다. 티켓은 1,3,5일 권과 모든 날짜에 참여 가능한 티켓이 있었는데, 목적이 영화제가 아니었기에 그냥 무료로 상영해주는 것들을 즐겼다.
체코 애니메이션을 상영해주는 곳이 있어 자리를 잡고 잔디밭에 앉았다.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애니메이션 자체가 어렵지 않아 같이 웃으며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먹을거리도 잘되어있어 굳이 비싼 레스토랑에 가지 않고 노점상에서 파는 수제 햄버거와 감자튀김으로 저녁을 대신 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이 슬슬 질려갈 때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만화라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이 시간이 이렇게 나와서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선 평일에 이게 가능할까란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많은 추억을 쌓고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 긍정적인 마인드로 산다는데, 체코란 나라 자체가 금전적으로 풍족하고 선진국처럼 잘 사는 나라는 아니지만 그와는 별개로 가족단위의 행사가 많고 국가적 지원이 많아 나라의 근간이 되는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이 부러웠다.
자리를 다른 가족에게 양보하고 까를로비 바리를 관통하는 Teplá(테플라) 강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강에는 국제영화제 포스터가 하나하나씩 설치되어 있어 무엇을 상영 하는지 광고를 하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그 근처에서 사진을 찍거나 벤치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 마을 바깥쪽으로 가다보니 일반 상점부터 시작해서 명품을 파는 가게가 하나씩 나타났고 그렇게 크지 않은 작은 마을에 BMW 전시장 까지 있어 이곳이 부유층들이 오는 휴양지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머니와 까를로비 바리를 여행하는 동안 잘 왔단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앞서 까를슈테인, 쿠트나 호라, 크르지보크라트, 리토미슐을 소개했었는데, 부모님과 휴양차 여행하기에는 까를로비 바리 만한 곳은 없다. 천천히 여유있게 산책하기에도 좋고 다른 곳에서는 즐길 수 없는 마시는 온천을 즐길 수도 있고 여러모로 좋은 휴식을 즐기고 돌아가는 느낌이다.
과거 교통수단이 마차밖에 없던 시절, 까를로비 바리는 귀족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2시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까를로비 바리이다. 과거 예술가들의 정취와 까를왕의 휴양지를 체험해보고 같은 것을 느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