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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의 보물창고 까를슈테인(Karlštejn)

까를슈테인의 악마와 왕의 비밀문

by 인선규

오늘의 목적지는 체코의 전설을 접하기 전부터 체코 친구들에게 워낙 많은 추천을 받아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과거에는 까를 4세의 보물 창고로, 현재는 현지인들의 주말 가족 나들이나 봄 여행을 가는 곳으로 사랑받은 까를슈테인은 기차를 이용한다면 프라하에서 편도로 40분밖에 걸리지 않아 여행자 또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마침 날씨도 선선하고 여름이 다가 오기 전 산뜻한 봄 날씨를 즐기자 싶어 피크닉겸 다녀오기로 했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까를슈테인역 까지는 40분밖에 안걸렸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프라하에서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날씨가 도착할 때쯤 되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오늘은 날씨 때문에 여행을 망쳤네..' 라고 생각했겠지만, 까를슈테인 역의 시골적인 향취와 근처 자그마한 강이 소설 <소나기>에 대한 향수가 불러일으켜 오히려 설레었다. 다행히 소나기는 금방 그쳤고 잠깐 온 소나기에 젖은 몸이 햇빛에 말라가는 느낌이 산뜻하니 참 좋았다.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낌이랄까? 나긋나긋해지는 기분이었다.

IMG_3574.JPG 시골정취가 느껴지는 까를슈테인 역

까를슈테인 성이 있는 마을은 까를슈테인 역에서 조금 걸어와 강을 끼고 있는 다리를 건너가면 보이기 시작한다. 성에 다다르기 위해선 짧은 하이킹을 해야 하는데, 다행이 올라가는 길 주변으로 기념품, 아이스크림, 소세지를 파는 가게들이 많아 심심하지 않게 올라 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에 먹었던 소세지와 맥주는 하이킹의 피로를 한 번에 씻어주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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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슈테인 성으로 향하는 길

군것질을 하다보며 올라오니 어느새 성 입구에 다다랐다. 성내부 투어를 먼저 하기보다는 성을 올라 주변 경관을 먼저보기로 했다. 마침 아까 내렸던 소나기 때문에 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져 올라가는 광경이 정말 장관이었다. 구름 속에서 우아하게 솟아 올라있는 성탑을 보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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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슈테인 성은 보헤미아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카를 4세가 1348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365년에 완성했다. 까를슈테인 성의 이름은 황제의 이름(karl)에서 따온 것이며 각종 보물과 왕의 물건 등을 보하기 위해 축성되었다. 당시 까를슈테인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후스 전쟁을 포함한 약 200년간 체코의 중요 보물들을 지켜냈다. 까를슈테인성은 1480년 이후로 후기 고딕 양식, 16세기에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가 19세기 네오 고딕 양식으로 최종 완성되었다. 요새이자 왕의 별장, 그리고 황실의 금고로 사용되었던 까를슈테인 성에는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까를슈타인의 악마

새로운 성을 짓기 위해 투입된 많은 사람들이 까를슈테인으로 몰려왔다. 프랑스 건축가인 마티아스(Mathias) 계획에 따라 석공들은 기초를 다지고 성벽을 쌓아 올렸다. 목수들은 도끼를 사용해서 지붕 기초를 다지고 석수들은 지붕을 덮을 돌을 준비했으며, 기와공들은 지붕에 진흙을 발라 단단하게 했다. 그리고 대장장이들은 문고리와 잠금장치 등을 만들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성을 지었고 서서히 완성되어 갔다. 보헤미아의 왕이자 로마의 황제인 까를 4세는 종종 까를슈테인에 들러 그의 명대로 성이 지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기간동안 모든 노동자들은 물품들을 쉽게 공급받기 위해 베룬카(Berounka)강 근처에 나무 오두막을 지어 생활했다. 하지만 강 근처 협곡에 두 악마가 짐을 실은 마차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곧 공포에 휩싸였다. 소문은 소문을 낳아 결국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까를4세는 궁여지책으로 악마를 죽이기 위해 상금을 내걸었지만 왕의 기사 조차 악마와 싸우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금빛 머리의 젊은 기사가 왕에게 찾아왔다. 그는 왕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며 얘기했다.

“로마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이신 까를 4세 왕이시어 제가 악마를 죽이고 이곳의 평화를 되찾아 오겠습니다.”

기사의 당당한 모습을 본 황제는 대답했다.

“좋다. 내가 드디어 악마를 물리칠 용사를 찾았구나! 말해보거라 너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겠다.”

이에 젊은 기사는 답했다.

“황제 폐하 저는 특별한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마른 콩 한 자루와 두 마리의 말 그리고 소금 한 포대면 충분합니다.”

황제는 미심쩍었으나 그가 요구하는 것들을 제공해줬다.

용맹한 기사는 한 마리 말에는 소금에 절인 콩 한 포대를 싣고 나머지 한 마리는 본인이 탄 뒤 악마가 살고 있다는 협곡으로 향했다. 협곡에 들어서기 전, 그는 가지고 온 소금에 절인 콩 한 포대를 협곡 앞에 쏟은 뒤 근처 나무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콩 냄새를 맡게 된 두 악마는 '키익키익' 소리를 내며 협곡 아래로 내려와 콩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악마는 산양의 구부러진 뿔을 가졌고 빨간 눈과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새빨갛고 긴 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배가 고팠는지 떨어진 콩을 마지막 하나 까지 쉴 새 없이 주워 먹었다.

다먹고 난뒤 정신을 차린 악마가 다른 악마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형제, 내 생각에는 이 근처에서 인간의 냄새가 나는거 같애. 그리고 나는 아직 배고프다고, 생각해봐 말과 콩 자루가 있는데 사람이 없는게 말이 안되지 않아?”

“아니야 형제, 미안하지만 난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아. 난 지금 목이 매우 마르다고.”

배가 고픈 악마는 혼자 있기 싫었기 때문에 결국 둘은 같이 길 근처에 있는 연못으로 가서 물을 먹기 시작했다. 연못 만큼의 물을 다 마셨을 때 쯤, 그들의 배속에서 조금전 먹은 콩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엄청난 복통 전해져왔고 악마들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배가 터져서 죽고 말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젊은 기사는 만족한 듯 다가와 악마의 가죽을 벗겨내고 말에 실어 까를슈테인으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까를4세는 곧바로 젊은 기사를 찾아왔다.

"정말 성공했느냐?"

젊은 기사는 황제에게 악마의 가죽을 건내며 말했습니다.

“황제 폐하 제가 악마를 무찌르고 약속을 지켰습니다.”

죽은 악마를 본 황제는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용감한 기사로구나, 그대에게 내가 가진 성과 금은보화를 내리도록 하겠다. 내 곁에서 나를 지키는 기사가 되도록 하여라."

비록 다른 신하들이 못마땅한 못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으나 까를 4세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을 했다.

‘이런 젊고 용맹한 신하가 더 있다면 나라가 더욱 부강해지겠구나.’

다행히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악마는 나타나지 않았고 까를슈테인은 평화를 되찾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악마가 까를슈테인에 나타났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늘 같이 안개가 가득히 깔려있는 숲을 성위에서 보고 있자니 정말 이곳 어디엔가 악마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인 까를슈테인 성벽을 보고 있자니 '악마마저도 여길 넘을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까를슈테인성은 견고하고 빈틈이 없다.

IMG_5963.JPG 까를슈테인 성의 성벽

까를슈테인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전해져오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후스 전쟁이다. 체코 역사에 대한 책을 보거나 자료를 찾아볼 때 많이 언급되는 왕과 전쟁이 대표적으로 까를4세, 바츨라프, 후스전쟁, 30년 전쟁이다. 그 중 두 가지를 까를슈테인성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성 이름 자체인 까를이고 또 하나가 바로 후스전쟁이다.

후스 전쟁이란, 1419∼1434년 보헤미아의 후스파(派)가 종교상의 주장을 내걸고 독일황제 겸 보헤미아왕의 군대와 싸운 전쟁을 말하며 여기의 후스는 우리가 익히아는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있는 얀 후스상의 주인공이다.

까를슈테인성은 이러한 전쟁 속에서도 함락당하지 않고 끝까지 방어할 수 있었던 점을 높이 사 후스 전쟁이후 본격적으로 왕실의 금고역할을 하게 되었다. 내부투어를 하게 되면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 외에도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재미있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까를슈테인 성의 비밀문

까를 4세에게는 4명의 부인이 있었다. 부인들 중에 세번째 부인은 유럽에서 가장 예뻤고, 네번째 부인은 힘으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까를왕은 종교적 신앙심이 강했는데 까를슈테인 성을 지은 이유도 명상의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왕은 부인들이 자신의 방에 오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다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까를왕의 침소에는 여왕의 방으로 가는 문이 있는데 이 문은 까를왕의 방에서 여왕의 방으로는 문이 열리지만 반대로 여왕의 방에서 까를왕의 방으로는 문이 열리지 않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이를 까를슈테인의 비밀문이라고 한다.


까를슈테인성은 프라하에서 멀지 않고 기차로 한 번에 갈 수 있어 부담 없이 여행할 만한 곳이다. 실제로 프라하에 있으면서 카를로비 바리 외에 가장 많이 갔던 곳이기도 하다. 체코 일정이 짧더라도 잠깐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역사적으로나 관광 목적으로나 들러볼 가치가 있으니 꼭 한 번 가기를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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