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경훈 Aug 06. 2019

응급실 일기

하나의 사실, 두 가지 해석


 1.
 사실은 하나라도 해석은 다양하다. 이렇게 하나의 사실에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들 때도 있는데 의료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가 지그시 눈감고 침대에 누워 의료진의 물음에 재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의식 상태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명료한 의식이 아니라면 다양한 질환을 떠올릴 수 있다. 수면제 남용, 음주로 인한 주취 상태, 당뇨병 환자의 저혈당 혹은 당뇨병성 케톤산증이나 고삼투성 혼수, 뇌경색, 뇌출혈, 저혈량성 쇼크, 패혈증 쇼크, 급성 심근경색, 다양한 감염으로 인한 고열 가운데 신속하게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만약 의식이 명료하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의식이 명료할 뿐 아니라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 같은 생체 징후가 정상 범위에 있다면 침대에 누운 환자가 지그시 눈감고 의료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가능성은 두 가지다. 우선 명료한 의식과 정상 범위에 있는 생체 징후에도 불구하고 심한 통증과 불편감을 동반하는 중증 질환이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두번째는 경증 질환이나 다소 예민한 성격의 환자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다. 두 해석 모두 그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첫번째 해석을 내려야할 상황에서 두번째 해석을 따른다면 재앙이 발생한다. 그래서 언제나 첫번째 해색을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첫번째 해석이 맞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어야 두번째 해석을 따를 수 있다. 

 2.
 119 구급대가 이송한 흉통 환자의 생체 징후는 정상 범위였다. 쉽게 말해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이 정상 범위였다. 특별한 과거력이나 병력이 없을 뿐 아니라 6개월 남짓 전 '혹시나'하는 걱정에 심장내과 외래를 찾아 EKG, 흉부 CT, 심장 초음파를 시행했는데 모두 정상이었다. 환자의 의식은 명료했고 전형적인 왼쪽 가슴 통증이 아니라 명치 부분 통증을 호소했다. 다만 양상은 쥐어짜는 양상(squeezing nature)이다. 나는 환자에게 왼쪽 어깨나 왼쪽 윗팔에도 통증이 있는지 물었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같은 질환은 왼쪽 목, 왼쪽 어깨, 왼쪽 윗팔로 이른바 방사통(radiaitng pain)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자의 대답은 애매했다. 원래 어깨가 좋지 않은데 오늘은 좀 더 아프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재차 흉통과 함께 왼쪽 어깨 통증이 악화되었는지 물었는데 눈을 지그시 감은 환자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일단 우선적으로 감별해야 하는 질환은 심근경색 같은 관상동맥 질환이다. 아울러 발작성 빈맥이나 심방세동 같은 부정맥도 감별해야 해서 즉시 심전도를 시행했다. 다행히 심전도 결과 별다른 이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나는 보호자에게 급성 심근경색 가능성은 매우 낮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흉부 X-ray를 시행했다. 흉부 X-ray는 기본 검사에 속하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중요 정보다. 특히 심비대(심장은 손상받아 기능이 약해질수록 커진다)가 있다면 몇달 동안 심징질환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했고 종격동 확장(mediastinal widening)이 확인되면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 심장과 바로 연결되는 가장 큰 동맥인 대동맥이 찢어지는 중증 질환)를 의심해야 한다. 물론 환자는 6개얼 전 시행한 흉부 CT와 심장 초음파에 이상이 없어 두 질환 모두 가능성이 높지 않았고 실제로 흉부 X-ray에는 심비대와 종격동 확장 모두 관찰되지 않았다. 

 따라서 환자의 질환은 협심증(angina,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힌 심근경색과 달리 좁아진 질환)과 식도염(esophagitis)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식도염보다는 협심증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고 진료를 진행해야 했다. 경증 질환과 중증 질환이 모두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중증 질환임을 전제하고 진료하는 것이 경증 질환이라 생각하고 진료하는 것보다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119 구급대를 통해 도착했을 때부터 그때까지 불과 10-15분 경과했으나 그 동안 환자가 계속 지그시 눈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명료한 의식이며 명확하게 대화가 가능한 상태임에도 환자는 지그시 눈감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예민한 성격이라면 대수롭지 않은 통증에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으나 '생체 징후, 심전도, 흉부 X-ray가 정상이나 심각한 질환이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혈압을 몇 차례 측정했는데 환자의 양 팔 혈압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른팔에서 측정한 혈압은 60/40, 70/50으로 저혈압인데 왼팔에서 측정한 혈압은 120/80, 110/70으로 정상 범위였다. 나는 즉시 심장내과 당직의사의 위치를 확인했고 그는 아직 병원에 있었다. 그래서 즉시 그를 호출했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흉통을 호소하며 119 통해 내원한 환자로 의식이 명료하고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는 정상 범위였습니다. 흉통은 명치 끝이 쥐어짜는 양상이며 왼팔과 왼쪽 어깨의 방사통은 명확하지 않으며 심전도와 흉부 X-ray 결과 특이 소견은 관찰되지 않습니다. 환자는 6개월 전 심장내과 외래에서 흉부 CT와 심장 초음파를 시행했으나 정상으로 확인되어 이런 사안과 임상 증상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만 통증이 지속되고 양쪽 팔의 혈압이 120/80과 60/40으로 달라 대동맥 박리를 감별해야 할 듯 합니다. 바로 대동맥 CT를 고려했습니다만 현재 원내에 계시니 간이 심장초음파로 심근의 움직임에 이상없음을 확인하고 이상이 없다면 대동맥 CT를 시행해도 될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심장내과 당직의사는 이동식 초음파 기계와 함께 나타났다. 그가 응급실에 도착하는 2-3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보호자에게 확실하지 않으나 대동맥 박리일 가능성이 있고 대동맥 박리라면 응급 수술이 필요하나 수술해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질환임을 설명했다. 예상대로 간이 심장초음파에서는 이상이 관찰되지 않았다. 나는 즉시 대동맥 CT를 처방했다. 불안한 마음에 CT실에 따라가 실시간으로 CT를 확인했는데 조영제가 주입된 화면을 보는 순간 안타까운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환자의 대동맥은 심장에서 나오는 첫 부분부터 복부 아래까지 찢어지는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상행 대동맥(ascending aorta)부터 복부 대동맥(abdominal aorta)까지 진행된 대동맥 박리였고 수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다. 

 우리 병원에서 가능한 수술이 아니었기에 급히 인근 대학병원들에 연락했고 다행히 어렵지 않게 응급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환자를 전원했다. 

 3.
 환자는 심각한 대동맥 박리가 있었으나 전형적인 증상을 호소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대동맥 박리는 '등 뒤에서 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그러나 환자는 명치 끝의 쥐어짜는 듯한 통증만 호소했다. 심전도는 당연히 정상일 수 있으나 흉부 X-ray에서 종격동 확장도 없었고 6개월 전 외래에서 시행한 흉부 CT와 심장 초음파도 정상이었다. 대동맥 박리를 의심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양쪽 팔에서 측정한 혈압이 서로 다르다는 부분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혈압을 측정한 이유는 의식이 명료함에도 환자가 지그시 눈감고 질문에 지나치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단순히 예민한 환자의 심리적 불안정으로 판단했더라도 결국에는 대동맥 박리를 진단했을 것이다. 다만 그랬다면 진단이 너무 늦어 응급수술을 시행할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환자의 혈액 검사는 정상 범위였다. 그러니 '의식 상태, 혈압, 맥박, 체온, 호흡수, 심전도, 흉부 X-ray, 혈액 검사 등 루틴 검사가 정상 범위에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는 믿음은 적어도 응급실에서는 대단히 무모하고 어리석은 판단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응급실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