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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훈 Aug 08. 2019

응급실 일기

지나치게 서글프고 씁쓸한 여운


1.
'한국드라마는 결국 모두 멜로드라마'라는 농담이 있었다. 물론 '붉은 10월(the Hunt for Red October, 잠수함 영화의 고전으로 등장 인물 대부분이 남자다)' 같은 영화를 제외하면 영화와 드라마에서 멜로가 빠지기는 어렵다. 다만 실제로 과거 한국드라마는 '수사반장' 같은 예외와 사극을 제외하면 장르적 구분이 모호하고 장르에 따른 전문적인 내용도 결여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주인공의 직업이 의사인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오랫동안 본격적인 의학드라마는 없었다. 아마도 1994년 방영된 '종합병원'이 최초의 의학드라마일 가능성이 높은데 2년 남짓 방영되어 '장수드라마'는 아니었으나 초중반에는 제법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내 또래(참고로 나는 97학번) 가운데 '종합병원을 보고 의과대학에 지원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물론 그들이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를 깨닫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런데 1994년 미국에서도 획기적인 의학드라마가 방영되었다. 1994년 전에도 의학드라마는 미국과 영국 드라마 시장에서 스테리셀러였으나 아주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고 의학용어를 가감없이 사용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러나 NBC의 새로운 의학드라마는 응급실을 배경으로 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었고 일반인이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의학용어도 거침없이 사용했다. 또 '쥐라기 공원'을 적은 SF작가인 동시에 의사였던 마이클 크라이튼이 기획했으며 '일반 시청자가 이해하기 힘들어서 시청율이 저조할 것이다'는 우려와 달리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0년 이상 제작되었다. 그 드라마는 응급실에서 제목을 빌려와 'ER'이라 불렸는데 1994년부터 제작되었으나 한국 방영은 1997년부터 시작했고 그 무렵 의대생이던 나는 'ER'에 빠져 들었다. 물론 그때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리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류학자나 의료 윤리학자가 되고 싶었고 임상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응급실의 긴장이 느껴지는 드라마 'ER'은 재미있었고 특히 소방서에서 '중환자를 이송하고 있다'는 연락이 오면 평온하던 응급실이 순식간에 전투 직전 같은 상태로 변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그러나 10년 남짓 시간이 흐른 2008년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가 되자 응급실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드라마 'ER'에서는 대량으로 중증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은 당연하고 심정지나 쇼크(의학적으로 쇼크는 단순히 놀란 것이 아니라 혈압이 위험할 만큼 떨어지는 증상이다) 같은 경우에는 1명만 환자가 발생해도 소방서에서 응급실에 연락했다. 그래서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응급실 의료진이 기관내삽관, 인공호흡기 연결, 심폐소생술 같은 처치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수련받은 4년 동안 그런 전화 연락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119 구급대는 별다른 연락없이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데려왔고 119 구급대 간에도 소통이 없는듯 각각 다른 소방안전센터에 소속된 구급차가 동시에 중환자를 데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광역시'란 명칭이 붙은 대도시였는데도 '주먹구구'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가 많았는데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다른 '광역시'에서 근무하면서 비로소 '심정지 환자를 이송하고 있습니다'는 119 구급대의 연락을 접했다.

물론 아직도 드라마 'ER'처럼 연락이 자세하지는 않다. '심정지', '의식 없음', '호흡 없음'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 전해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응급실 의료진에게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기관내삽관, 인공호흡기 연결, 심폐소생술 같은 상황을 미리 준비할 수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 그 차이는 작지 않기 때문이다.

2.
멀리서 들리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사라지자 회전하는 붉은 불빛과 함께 119 구급차가 응급실 앞에 도착했다. 나는 수술 장갑을 낀 채 119 구급차의 뒷문이 열리고 재빨리 내린 구급대원이 이동식 침대를 내리는 것을 지켜봤다.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응급실 맨 앞 침대는 비워진 상태였고 침대 옆에는 심전도와 산소포화도 모니터, 기관내삽관과 중심정맥 확보를 위한 도구, 인공호흡기, 그리고 심폐소생술에 필요한 약물이 담긴 수레가 늘어 섰다. 간호사들 역시 긴장된 표정으로 침대 주위에 있었고 원무과 직원도 환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접수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119 구급차에서 빠져나온 이동식 침대는 응급실을 향했다. 그 와중에도 구급대원은 심장압박(cardiac compression)을 계속했다. 구급대가 도착하기 전 받은 연락의 내용은 '40대 심정지 환자'였으나 이동식 침대에 누운 환자는 60대나 70대처럼 보일 만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구급차에 보호자가 동승하지 않았다.

"보호자는 택시를 타고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119 구급대원의 말에 나는 환자에게 특별한 질환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냐고 물었다. 말기암 환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전신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19 구급대원은 '10년 전 당뇨병을 진단받았고 다른 질환은 없다고 했습니다'고 대답했다. 일단 환자는 자발호흡과 맥박이 없었다.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자동제세동기(Automatic external defibrillators)를 부착하자 심실세동이 확인되며 1차례 전기 충격이 가해졌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맥박과 호흡은 없었으나 응급실 도착 직후 심전도 모니터를 붙이자 역시 심실세동(VF, ventricular fibrillation)이 확인되었다. 119 구급대가 환자를 현장에서 응급실까지 이송하는데 소요된 시간을 감안하면 최소 10-15분은 심정지 상태가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나 급성 심근경색으로 막 심정지가 발생한 경우에도 심실세동은 나타난다. 그래서 일단 심폐소생술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제세동기를 이용해서 200J의 전기 충격을 가해 심실세동을 바로 잡았다. 곧이어 간호사가 심장압박(cardiac compression)을 지속하는 동안 나는 신속하게 기관내삽관(endotracheal intubation)을 시행했다. 다행히 환자는 3분 만에 심장 박동을 회복했다. 자발호흡은 돌아오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연결했으며 여전히 혈압은 60/40 정도로 매우 낮아 승압제와 수액을 안정적으로 투여하기 위해 쇄골하정맥을 통해 중심정맥관을 삽입했다.

이제는 심정지의 원인을 밝힐 차례였는데 그때 보호자가 도착했다. 일반적으로는 응급실 문턱을 넘어서자 말자 '아이고, 우리 OO을 좀 살려주세요'라고 말하거나 갑작스레 닥친 재앙에 울부짖기 마련인데 보호자가 내게 건넨 말은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돈이 없어. 그래서 알아서 병원에 안 갔다니까. 우리는 장례치를 돈도 없으니 그냥 죽여주시오."

물론 '이제 그냥 환자를 보내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다만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고생했으니 이제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가 보호자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일반적 이유'다. 그러나 응급실에 도착하자 말자 '장례치를 돈도 없으니 그냥 죽여달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안 됩니다. 단순히 돈이 없으니 치료하지 말고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하는 부탁은 들어줄 수 없습니다.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고 현재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자 보호자는 '돈이 없다', '장례치를 돈이 없다'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다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서류를 꺼냈다.

"그럼 이 돈 안에서 치료하시오. 남는 돈으로 장례도 해야하오."

보호자가 건넨 서류는 시청의 '긴급 의료비 지원'을 받기 위한 서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10년 전에 당뇨병을 진단받은 환자는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고 최근 몸 상태가 악화되었으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보다못한 이웃 사람들이 '시청에 얘기하면 병원비를 준다'고 얘기해서 그 서류를 준비한 상황이었다.

"이 서류는 원무과 직원과 상의하면 됩니다. 저는 의사라 진료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했고 다행히 3분만에 심장을 다시 뛰도록 만들었으나 어디까지나 약물의 힘으로 심장을 되살렸을 뿐 완전히 소생한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말했다. 이제는 심정지가 온 원인을 찾아야 하며 갑작스런 심정지의 원인은 뇌출혈과 심근경색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뇌 CT를 시행해서 뇌출혈을 감별하고 만약 뇌출혈이 아니라면 심장내과 의사를 불러 심장 문제를 감별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물론 보호자의 나이와 교육 슈준을 감안해서 실제로는 훨씬 쉽게 얘기했다.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는 여전히 '돈이 없고 아까 그 서류에 나오는 돈으로 장례도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일단 뇌 CT부터 시행했다.

다행히 CT에는 뇌출혈을 비롯한 이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생각이 복잡해졌다. 뇌출혈이 아니니 환자는 이른바 '내과 질환'으로 심정지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앞서 말했듯 내과 질환 가운데 갑작스레 발생한 심정지의 원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심근경색이다. 그러나 다른 질환도 심정지를 초래할 수 있고 특히 환자의 건강 상태가 아주 불량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떤 종류든 감염이 서서히 진행해서 패혈증 쇼크(septic shock)에 빠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더구나 환자는 10년 전 당노병을 진단받고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고 간이 혈당계로 측정한 혈당이 600 이상이었다. 동맥혈 가스 검사(ABGA, Arterial Blood Gas Analysis) 결과 심한 대사성 산증(metabolic acidosis)도 확인되었는데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정지, 패혈증, 고혈당으로 인한 당뇨병성 케톤산증(DKA, diabetic ketoacidosis), 급성 신부전 (acute renal failure) 모두 심한 대사성 산증이 나타난다. 가운데 급성 신부전은 가능성이 가장 낮았다. 혈액 내 칼륨 수치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고칼륨혈증이 급성 신부전에서 심정지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인데 칼륨수치는 정상 범위였기 때문이다. 당뇨병을 치료하지 않아 케톤이 생성되면서 나타나는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그 자체가 심각한 질환이나 종종 급성 심근경색이 동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환자는 당뇨병성 케톤산증에 동반한 급성 심근경색과 패혈증 쇼크, 이 두 가지 질환 가운데 하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당뇨병성 케톤산증에 동반한 급성 심근경색'이 환자의 최종 진단이길 바랬다. 왜냐하면 시청의 '긴급 의료비 지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략 150-300만원 정도인데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 충분한 액수는 아니다. 다만 급성 심근경색으로 확진되어 '중증 질환'으로 분류되면 본인 부담금이 줄어들어 150-300만원으로도 꽤 오랫동안 진료비를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환자의 심정지 원인이 '당뇨병성 케톤산증에 동반한 급성 심근경색'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심장내과 당작의사를 호출했다.

그러나 심혈관조영술 결과 환자의 관상동맥은 상당히 좁아져 협심증(angina)에 해당했으나 심정지를 일으킬 병변은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확인한 혈액 검사 결과 800 정도의 심각한 고혈당 외에도 C-반응단백질(CRP, C-reactive protein, 감염이 있으면 증가한다) 수치가 크게 증가했다. 결국 환자의 최종 진단은 '패혈증 쇼크로 인한 심정지'였다.

3.
심혈관조영술을 위해 심혈관센터로 환자를 옮기는 순간까지도 보호자는 '돈이 없다', '집세를 내고 나면 병원비를 낼 수 없다', '시청에서 나올 돈으로 장례까지 치러야 한다'고 외쳐댔다. '어차피 살지 못할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여달라'는 얘기까지 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환자의 예후가 매우 좋지 않으리란 것을 의료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사례였고 실제로도 환자는 집중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다행히 입원 기간이 길지 않아 시청에서 지급하는 '긴급 의료비 지원'으로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었으나 보호자는 '돈이 없다고 그냥 죽여달라 했는데 끝까지 이런 저런 검사하고 치료해서 돈을 받아 챙기는 나쁜 병원 놈들'이라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는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 심정지 상태로 도착했으나 심전도 모니터에 심실세동이 확인되는 상태였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3분만에 심장 박동을 회복했다. 그 시점에 보호자가 나타나 '인공호흡기를 떼고 그냥 죽여달라'고 주장했다. 그 후 보호자는 뇌 CT를 찍을 때도, 심혈관조영술을 시행할 때도 '돈이 없다. 월세 낼 돈도 없는데 병원비가 웬 말이냐. 시청에서 받는 돈으로는 장례까지 해야하니 그냥 죽여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환자는 '연명치료 중단'에 해당하는 사례와는 거리가 멀었다.

덧붙여 뇌 CT를 확인하고 심혈관조영술을 시행하고 중환자실로 입원시켜 집중적으로 치료하지 않았다면 모든 응급실 의료인에게 악몽 같은 상황에 휘말렸을 지도 모른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치료, 뇌 CT 확인, 심혈관조영술, 중환자실 치료 가운데 하나라도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면 그걸 빌미로 '의료 사고'를 운운하며 소송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처음 환자가 병원에 실려왔을때 동행하지 않았고 심지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연락조차 없이 지낸 가족 가운데 한 명이 그렇게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이런 사안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조금 씁쓸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소위 '한국인의 낮은 민도'를 운운하며 '역시 한국은 이래서 안 된다', '다들 의료인의 고마움을 모른다'며 징징대거나 투덜거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따지면 온갖 이유로 의료소송이 빈번한 미국은 '민도 그러니까 시민의식이 더 형편없는 곳'으로 간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투덜거리고 징징대는 의사 대부분은 미국을 '의사의 유토피아'로 묘사한다. 또 그들은 NHS의 영향력이 큰 영국을 '무상의료가 만든 지옥'으로 묘사한다) 그런 일은 한국의 의료 환경에서만 특별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저 그 일이 남기는 여운이 지나치게 서글프고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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