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교회 옥탑방,
아래층 공용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머리를 빗고 학교에 가야 했던 5학년 여자아이.
신도시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던 초등학교라 전교생의 99.9%가 아파트에 살던 환경 속에서 차마 우리집은 교회 옥탑방이라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시절.
학교에 다녀오면 벼락같은 환청에 두 귀를 틀어막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고, 미친 폭염을 기록했던 1994년 한여름에도 강한 햇볕을 있는대로 받아들이는 옥탑방에서 선풍기 하나로 세가족이 버텨야 했던 모질었던 시간이 있었다
학교 미술 숙제로 종이 보석함에 한지를 발라 가야 했는데 혼자 하는게 버거워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엄마는 있는대로 화를 내며 내 숙제 재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묵묵히 나를 위로하며 망가진 재료를 수습하고 숙제를 도와주었다.
이듬해 아빠가 다른 직장을 구하고 옆동네에 지하 단칸방을 얻어서 더이상 교회에 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누구에게도 침해 받지 않고 초라해도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감사했다
어느 날 아침엔 갑자기 단수가 되어 (미리 예고했어도 엄마가 물을 받아놓는다거나 할리 만무했기에) 아빠가 새벽부터 도덕산 정상에 물통을 들고 올라가
약수물을 떠와 내 머리를 감겨주고 학교에 가게 해 주었다.
그 집은 화장실이 딸려 있지 않아, 볼일을 보려면 주인집을 크게 돌아 큰 개가 묶여 있는 곳을 지나면 있는 작은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놈의 크고 하얀 개가 내가 지나갈 적마다 어찌나 사납게 짖던지, 화장실 가는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고 쿵덕쿵덕 떨려댔다
그 무렵부터 나는 상상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면, 모든 사람들이 커튼을 젖히고 나와 ‘이 모든 것은 연극이었어!!’라고 웃으며 말해주는 상상 말이다
엄마가 몹쓸 병에 걸린 것도. 그래서 우리가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히 힘든 것도. 매일매일이 불안한 것도. 사실 다 연극이었어 진주야.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다 끝이야. 연극은 끝났어.
누군가 내 손을 잡고 그렇게 말해 주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어린아이의 동화같은 상상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른이 된 나에게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회상하듯 아픈 과거가 아득하게
편집되어 오늘의 감사와 위로와 행복의 재료가 되어주고 있다.
연극이기를 바랬지만, 결코 연극이 아니었던 그 아픔과 상처들은 지금 내 안의 어딘가에서 어떤 모양의 흉터가 되어, 어떤 것은 서툴게 아물고, 어떤 것은 때때로 피를 내며 이따금 통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굳이 끄집어내어 직면하고, 연극이 아니어서 매순간 실망했던 어린 여자아이에게, 이제 시간이 지나 그 연극이 진짜로 끝났다고 말해주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모든 것은 한 편의 연극처럼 지나갔단다
강물이 흐르듯, 시간이 흘러
모질었던 현실이, 기어코 연극처럼 끝을 내었단다.
가만히 두 어깨를 부여잡고 1994년의 진주에게 가서, 그때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이제서야 건네주려 한다.